이겼다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4-4로 승리한 KIA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18.4.22

▲ 이겼다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4-4로 승리한 KIA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18.4.22 ⓒ 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는 '국민스포츠'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높아진 프로야구의 위상과 인기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프로의식과 팬 서비스는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난달 30일  KBS 스포츠뉴스에서 보도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인 거부 영상'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KBS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부족한 팬 서비스 의식을 지적하며 지난 시즌 우승팀 KIA(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이 경기 후 팬들의 사인 요청을 무시하는 장면을 담았다. 선수들은 자신들을 응원하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차에 올랐다.

특히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한 어린 소년이 사인을 받지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슬퍼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씁쓸한 여운까지 남겼다. 야구장에 찾아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도 보고 좋은 추억을 기대했던 어린이 팬과 그 가족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미 여러 번 지적된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 서비스

영상이 보도되고 난 후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야구 관련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해당 영상과 관련하여 프로야구 선수들의 미흡한 팬서비스를 비판하는 내용이 하루종일 쏟아졌다. 주로 팬들 앞에서 무성의하고 오만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태도 사례를 지적하면서 '누구 때문에 프로야구가 이런 인기와 대우를 누리는지 까먹은 것 같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사실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서비스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이 누리는 인기와 명성에 비해 팬 서비스가 소홀하다는 비판이 여러 번 제기됐다.

몇몇 선수들은 노골적으로 팬을 무시하고 사인 요청을 거절하는 행동으로 도마에 올랐다가 팬들의 집단 항의를 받자 사과했던 사례도 있다. 이번 영상을 통해 특정 팀과 선수를 떠나 그동안 야구 팬들 사이에서 누적된 불만들이 한꺼번에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틀 연속 '멀티 홈런' 끝내기 이대호 18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 12회 연장에 3점 홈런을 친 이대호가 홈에 들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18.4.18

▲ 이틀 연속 '멀티 홈런' 끝내기 이대호 18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 12회 연장에 3점 홈런을 친 이대호가 홈에 들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18.4.18 ⓒ 연합뉴스


유명 스타급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류현진(LA 다저스)이나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이승엽(은퇴) 등은 모두 기량과 인기면에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지만 의외로 '팬서비스가 나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류현진은 몇 년 전 팬들의 사인요청을 외면하고 전력질주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대호 역시 사인을 요청하는 어린이 팬을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어 쫓아버리는 장면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승엽은 심지어 자신의 사인볼이 중고 시장에서 판매된다며 "(사인을 많이 해주면) 희소성이 없어질까봐 안 해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단편적인 사례만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 서비스를 모두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팬들의 사인이나 사진촬영 요청을 일일이 다 받아주기 어려운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원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적어도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출퇴근하는 상황에서라면 팬서비스도 엄연히 업무의 일부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모든 팬들을 다 챙길 수 없다면, 최소한 어린 팬들만이라도 좀 더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설사 거절하더라도 좀 더 예의를 갖추고 팬들에게 양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보였더라면 그렇게까지 원성을 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수협 "팬 사인 강제조항 도입" 제안했지만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다 무례하고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경기장에서 강한 승부욕과 거친 플레이로 안티 팬이 많은 오재원(두산)은 평소 이미지와 달리 팬들의 사인이나 사진 촬영 요청을 잘 받아주는 반전 매력으로 화제가 됐다. 김상수(삼성), 박용택(LG) 등도 오랫동안 팬들의 호평을 받아온 몇 안 되는 선수다.

지금은 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생전 처음 보는 팬이라도 붙잡고 두시간 동안 길거리 토크쇼가 가능할 정도로 팬서비스가 몸에 밴 탓에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투머치 토커'라는 장난섞인 별명으로 통할 정도다. 이외에도 팬들을 상대로 친절한 매너와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인정 받은 선수들은 적지 않다.

하주석 잡는 오재원 두산 베어스 2루수 오재원이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회초 1사 주자 1루 한화 김회성의 땅볼 때 2루에 들어가던 하주석을 포스아웃으로 잡은 뒤 병살을 시도하며 1루로 공을 뿌리고 있다. 2018.4.17

▲ 하주석 잡는 오재원 두산 베어스 2루수 오재원이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회초 1사 주자 1루 한화 김회성의 땅볼 때 2루에 들어가던 하주석을 포스아웃으로 잡은 뒤 병살을 시도하며 1루로 공을 뿌리고 있다. 2018.4.17 ⓒ 연합뉴스


사인 거부 동영상이 논란가 된 후, 프로야구 선수협회는 1일 선수들을 대표해 공식적으로 반성의 의지를 밝히며 향후 '팬들에게 사인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도 각 구단별로 선수들에게 팬서비스를 독려하고 있지만 강제성을 지닌 규약은 구단에서 주최한 팬사인회 참가 의무만 명시된 정도다. 메이저리그처럼 연습이 끝나고 짧은 시간이나마 사인이나 사진촬영에 응할 수 있도록 팬들과의 소통을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엎드려 절받기'가 아니라 선수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의식변화다. 팬서비스에 대한 의무 조항을 강제하는 것도 당장의 효과는 있겠지만, 마지못해 끌려나와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식의 팬서비스는 팬들도 원하지 않는다. 선수들 스스로가 팬들의 존재 이유와 팬 서비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다면 이런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팬 없는 프로야구? 생산성 없는 공놀이일뿐

특히 스타급 선수들일수록 더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야구선수로서 높은 인기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몸값은 구단이 주는 것 같지만, 그 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결국 팬들이 지불하는 것이다. 단순히 야구를 잘하고 몸 관리를 철저히 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프로의식'의 전부는 아니다. 프로는 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 그들이 매일 손에 거머쥐는 배트나 글러브, 야구공보다 애지중지 해야 할 것이 바로 팬들의 존재다.

1990년대 농구 감독으로 유명했던 최희암씨(전 연세대 감독)의 어록은 팬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당시 국내 농구가 폭발적인 흥행을 보일 때였다. 특히 연세대는 우지원, 이상민, 문경은 등 꽃미남 외모의 스타급 선수들이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최희암 감독은 선수들의 겉멋든 스타의식을 질타하며 "너희가 볼펜 한 자루라도 스스로 만들어본 일이 있느냐. 너희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애들이 스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팬들 덕분이다. 항상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잘해야한다"고 질타했다.

최희암 감독의 어록은 지금의 프로야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야구가 사라져도 세상이 돌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팬들이 존재하지 않는 야구는 그저 '유치하고 무의미한 공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높은 몸값과 인기에 취해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지금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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