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축구에 악몽으로 기억될 것이다. AFC 가맹국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4개국(한국, 일본, 호주, 이란)은 총 12경기 3무 9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며 모두 조기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아시아 팀들이 아예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한국, UAE 6전 6패) 이후 무려 24년 만이었다. 아시아 국가의 월드컵 티켓이 처음 4장까지 늘어난 1998 프랑스 대회 이후로는 가장 최악의 성적이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타 대륙은 유럽이 6개 팀, 남미가 5개 팀, 북중미 3팀이 고르게 16강에 진출했고, 아프리카도 나이지리아와 알제리 등 두 팀이 16강에 올라 체면을 세운 데 비하여 아시아만 여전히 세계 수준과 격차를 드러냈다.

월드컵 다가오는데... 아시아 팀들의 상황은 어떤가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명예회복이 절실하다. AFC 가맹국으로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이란, 호주, 사우디가 총 5팀이 월드컵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본선에 오른 사우디를 제외하면 나머지 4팀은 모두 지난 대회와 같은 라인업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 나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월드컵 '단골손님'이다. 한국이 9회 연속 일본이 6회 연속, 호주가 4회 연속으로 최근 꾸준히 월드컵을 노크하고 있다. 이란을 제외하면 모두 1회 이상 16강 이상 진출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현재로서는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의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5월 국가랭킹에서 한국은 지난 달과 같이 61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이란이 36위로 가장 높았고 호주가 40위, 일본이 60위였다. 가장 순위가 낮은 사우디아라비아는 67위에 불과하다.

이미 지난해 월드컵 조편성부터 피파랭킹이 그대로 반영되어 강팀과 약팀의 배분이 확실해지고 이변의 가능성이 예전보다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조의 한국이 독일-멕시코- 스웨덴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며 역대 최악의 대진운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B조의 이란은 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와 C조의 호주는 프랑스-덴마크-페루와, H조의 일본은 -세네갈-콜롬비아와 각각 한조에 편성됐다. 어느 하나 만만한 조가 보이지 않는다.

대진운도 대진운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4년간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아시아 5개국 모두 최근 몇 년간 부침을 겪었고 지역예선을 통과하는 과정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특히 이란을 제외한 4개국은 모두 1년 사이에서 성적부진과 내부 사정으로 감독을 교체하는 진통을 겪었다.

한국은 지역예선 과정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고 지난해 7월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여 간신히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경쟁력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신태용호는 월드컵을 앞두고 최정예멤버가 나선 3월 A매치에서 북아일랜드-폴란드를 상대로 2연패를 당했다. 유럽파 손흥민과 기성용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스타급 선수나 베테랑이 부족하다. 여기에 월드컵을 앞두고 김민재, 염기훈, 권창훈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낙마하는 악재도 겹쳤다. 최악의 대진운과 고질적인 수비불안 문제, 여기에 신태용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이 겹쳐 월드컵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각오 밝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7일 오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바히드 할릴호지치 ⓒ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의 행보는 더 '막장'이다. 사우디는 지역예선 통과를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재계약에 실패하며 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두아르도 바우사 감독을 영입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2개월만에 경질되고 월드컵 조추첨을 앞둔 12월에 후안 안토니오 피치 감독을 다시 영입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진출국인 벨기에에게 대패하는 등 무승에 그치며 부진하다.

일본은 월드컵 본선을 약 두달 남겨놓은 상황에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1감독 1월드컵' 체제를 고수하며 되도록 대표팀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던 일본 축구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다혈질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이고 선수단을 비롯한 일본 축구계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기술위원장이던 니시노 아키라 감독을 급하게 대타로 선임했지만 현장 공백기가 3년이 넘는데다 월드컵 같은 큰 무대를 선수로서나 지도자로서나 밟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사우디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던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에서는 호주의 지휘봉을 잡고 나선다. 호주의 2015 아시안컵 우승과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던 언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지난해 11월 사임하면서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부터 '재택 근무' 등 기이한 요구로 자주 물의를 빚었던 판 마르베이크는 호주에서도 월드컵 본선까지만 지휘봉을 잡는 단기계약 형태로 알려졌다. 월드컵 이후에는 그레이엄 아놀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4차전 경기가 끝난 뒤 이란 케이로스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4차전 경기가 끝난 뒤 이란 케이로스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란은 자국 사상 최초의 2회 연속 본선행을 이끈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7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이란은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특유의 끈끈한 수비력과 '늪축구'를 앞세워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이로스 감독은 거친 언행으로 이란 축구계와 갈등도 많았지만 몇 번이나 감독직 사퇴를 내건 밀당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양대 거함이 버틴 조편성은 어쩌면 한국보다도 최악의 조라는 평가를 받을만큼 운이 따르지 않았다. 사실상 모로코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 이란축구협회의 지원상의 한계로 월드컵을 대비한 강팀과의 평가전 기회도 마땅치 않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팀들이 풀어야 할 숙제

아시아가 월드컵 무대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기록한 4강이다. 당시 공동 개최국 일본도 16강에 진출하여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자국에서 열린 홈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었다는 의혹으로 아시아를 제외한 해외에서는 성과를 크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타 대륙 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에 배정한 월드컵 티켓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여론이 나올 때마다 '본선 경쟁력'은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현재 아시아의 월드컵 본선 참가 출전권은 4.5장이다. 심지어 출전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는 2026년부터는 아시아에 배정되는 티켓이 8장으로 늘어난다.

아시아가 월드컵에 나설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월드컵의 질적인 수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아시아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 셈이다.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 설명하는 신태용 감독 신태용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 설명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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