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수교 130주년 행사 로고

한불 수교 130주년 행사 로고 ⓒ 문화체육관광부


 지난 2017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문화예술인들

지난 2017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문화예술인들 ⓒ 성하훈


한-불 수교 130주년 상호교류의 해였던 2015-2016년은 블랙리스트가 총체적으로 작동한 해였다. <남영동 1985><변호인><설국열차> 등 11편은 상영할 수 없는 영화였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집행위원장을 맡은 허진호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사업배제 조치를 당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조사위)가 10일 '한-불 수교 130주년 상호교류의 해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에 다르면, 2015~2016 한불수교 130주년 기간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문체부, 국가정보원, 프랑스해외문화원 등은 블랙리스트를 적극 활용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한-불 130년의 외교적 신뢰를 무너뜨린 국가범죄"였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공개했다.

1981년 작품 <난쏘공>도 상영 불가

블랙리스트는 전시, 공연, 문학, 영화 등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됐는데, 영화는 2013년부터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들은 2015년의 경우 <변호인><그때 그 사람들><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상계동 올림픽><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5편이었고, 2013~2014년까지 <남영동1985><설국열차><관상><지슬><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다이빙벨> 등은 파리한국영화제에서 배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1980~1990년대 제작된 영화들까지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상 문화 말살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원세 감독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인 1981년 제작돼 개봉된 영화였음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의 작품으로 1988년 제작됐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장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장면 ⓒ 한진흥업


박광수 감독이 연출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에 대한 영화로 1995년에 개봉했고, 문성근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다. 2005년에 개봉한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를, 2013년에 개봉한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 5편의 영화들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행사로 두 달 동안 85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포럼데지마주(Forum des Images)' 행사 프로그램에 포함됐던 작품이다. 그러나 2015년 9월 경 한국 측으로부터 지원금 지급과 상영 프린트가 오지 않자 '포럼데지마주' 측 프로그래머와 예술 감독이 프랑스한국문화원을 방문하여 문제를 제기했고, 당시 한국 측 예술 감독의 설득으로 5편의 영화를 상영작에서 배제한 후 예산이 집행되면서 행사가 개최될 수 있었다.

<변호인> 배제에 프랑스 프로그래머 항의도

특히, <변호인>은 2014년 파리한국영화제에서도 상영 불가 대상에 올라 당시 프랑스 프로그래머로부터 항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 프로그래머는 <변호인> 상영 불가에 "이건 명백한 검열 아니냐", "한국에서 1천만 명이 본 영화를 왜 상영 못하게 하느냐"며 항의했다고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밝혔다.

 블랙리스트 조사위가 공개한 파리한국문화원장의 이메일 내용

블랙리스트 조사위가 공개한 파리한국문화원장의 이메일 내용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남영동1985><설국열차><관상><지슬><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다이빙벨> 배제 사실은 당시 이OO 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이 보낸 이메일을 통해 확인됐다. 이 원장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 조직위 영화전문위원, 예술 감독, 해외문화홍보원,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 '영화 행사 프로그램 관련(보안요망)' 제목의 메일을 보내 "한불행사 영화 프로그램 리스트 중 현재 정국에서 상영돼서는 안 되는 작품들이 있다"면서 7편의 영화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가 공개한, 2014년 3월 21일 작성된 '문체부, BH에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방안 보고 예정'이라는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에는 구체적 지침이 기록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문체부는 '해외문화원 행사 주최 및 후원 시 문제성 단체 참여 및 이념갈등 유발 행사를 지양', '문화원 주최 및 후원영화 상영시 문제성 영화 배제 조치'. '영화 선정 시 영진위를 거치지 않고 해외문화홍보원을 통해 영화 선정을 일괄 점검하는 모니터링 체제를 정비'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와 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 내용에는 없지만 2013년 런던한국영화제에서도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관상>이 돌연 취소됐는데,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영화제 관계자들은 "<관상> 제작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활동했던 아름다운 재단에 수익금을 기부한 것 때문에 박근혜 청와대서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시국선언 9473명, 실제 블랙리스트였다

 2014년 제천영화제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 참여한 영화인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14년 제천영화제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 참여한 영화인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제전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주관하려던 시네마콘서트 역시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허진호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된 사실도 확인됐다. 허진호 감독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594인에 명단이 올라있으며,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가 엑셀파일로 관리한 영화인 블랙리스트에도 포함돼 있다.

블랙리스 조사위원회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업 추진 현황 보고' 문건 및 한불 수교 행사 관련 담당자들 사이의 문자메시지 중 '제천: 위원장이므로 무조건 사업 미승인'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에 대한 지원 배제 결정은 청와대를 통해 내려왔으나, 제천국제영화음악제가 먼저 사업 취소를 요청해 시네마콘서트는 무산됐다.

영화계는 제천영화제 사업 배제에 2014년 영화제 기간 중 열린 '디렉터스 컷 어워즈' 행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 제작자 등은 포토월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구호를 들었고, 이를 단체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한편,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시국선언에 참여한 9473명 명단이 실제 블랙리스트였다고 밝혔다. 문체부 예술정책과 사무관은 "블랙리스트 선별이 필요할 때마다 각 과에 시국선언 명단을 전달했다"고 진술했고, 문체부 소속기관 직원들도 "시국선언 명단을 토대로 블랙리스트 예술인 지원사업 배제"를 시인했다고 공개했다. 이중 영화인은 모두 2665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리스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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