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vs. 스네이크: 니블러의 길고 비틀린 이야기>

영화 <맨 vs. 스네이크: 니블러의 길고 비틀린 이야기> ⓒ Playland Pictures


1984년 1월, 17세 소년 팀 맥베이는 아이오와주 오텀와에 위치한 게임의 성지 '트윈갤럭시 오락실'에서 열린 '니블러' 대회에 참가해 최초로 10억 점을 돌파한다.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오텀와는 세계 기록을 세운 일을 축하하며 기념일 '팀 맥베이의 날'을 지정한다.

대기록을 세운 지 약 25년이 흐른 후, 40대에 접어든 팀 맥베이는 이탈리아의 엔리코 자네티가 1984년 10월에 세계 기록을 깼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한다. 엔리코 자네티의 점수는 공식 기록으로 공인 받지 못했지만, 자존심이 상한 팀 맥베이는 다시 세계 타이틀을 찾기 위해 니블러 게임기 앞에 선다.

다큐멘터리 영화 <맨 vs. 스네이크>는 고전 게임의 최고 점수 달성에 도전하는 사람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고전 게임에 도전하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최고 점수를 '7대륙 최고봉 정복'에 비교하며 "에베레스트에 처음 오른 사람은 역사에 기록된다"고 설명한다.

최고봉 등정과 마찬가지로 최고 점수를 기록한 게이머는 세계 기록 보유자로 인정되어 게임 역사에 남는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 동키 콩 등 당시에 높은 인기를 구가한 게임이 아닌, 하필이면 이름도 낯선 니블러에 왜 도전했을까?

유명하지 않은 게임, 최고점 경신에 목매는 이유

 영화 <맨 vs 스네이크: 길고 비틀린 니블러의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맨 vs 스네이크: 길고 비틀린 니블러의 이야기>의 한 장면 ⓒ Playland Pictures


1982년 록-올라가 개발한 니블러는 정해진 시간 내에 뱀이 계속 길어지는 자신의 꼬리에 부딪히지 않으면서 미로에 나타나는 모든 점을 먹으면 한 판이 끝나는 규칙으로 전개되는 게임이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유독 몇몇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니블러는 점수판에 10억 점 이상이 나온 최초의 게임이다.

10억 점이 대단한 이유도 간단하다. 10억 점을 돌파하려면 어림잡아 계산해도 48시간 내내 게임을 해야 한다. 게임을 하면서 열심히 보너스를 모으고 그걸 소비하는 동안에 화장실도 가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야말로 게임의 마라톤이자 철인 3종 경기인 셈이다.

40대 중년에 접어든 팀 맥베이가 다시금 세계 기록 보유자의 자리를 찾기 위해 게임기를 잡는다. 게임의 감각을 되살리고 체력을 올리는 훈련 과정은 마치 전 세계챔피언이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링에 오르는 여정을 연상케 한다. <맨 vs. 스네이크>를 연출한 팀 긴지와 앤드류 세클리르는 영화 <록키>의 음악과 록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오르는 명장면을 익살스럽게 인용한다.

<맨. vs 스네이크>에 앞서 게임의 최고 득점을 겨루는 영화로는 동키 콩을 소재로 삼은 다큐멘터리 <킹 오브 콩>(2007)이 있었다. <킹 오브 콩> 보다 <맨 vs. 스네이크>의 드라마적인 재미와 흡인력은 훨씬 높다. 스포츠 영화에나 나올 법한 흥미 요소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은퇴한 과거의 챔피언, 새로운 강자, 악동을 연상케 하는 다른 도전자, 트레이너 또는 심판 같은 존재,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등 팀 맥베이를 둘러싼 인물들은 고전 게임의 링에 오른다. 모든 전개는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형성한 관계이기에 흥미롭다.

영화는 당시 뉴스 등으로 과거를 보여주지만, 자료량이 부족한 탓에 재현 영상과 애니메이션으로 시간을 복원한다. 1980년대 게임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은 마치 영화 <트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초대장이다. 애니메이션은 과거의 상황 또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기법으로 사용되어 흥미를 돋운다.

비디오 게임 세대 향수 자극하는 영화

 영화 <맨 vs. 스네이크: 길고 비틀린 니블러의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맨 vs. 스네이크: 길고 비틀린 니블러의 이야기>의 한 장면 ⓒ Playland Pictures


<맨 vs. 스네이크>는 1980년대 오락실 문화를 통과한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오락실은 별다른 놀 거리, 개인용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드물었던 당시의 어린 세대에게 8비트로 구현된 그래픽과 사운드로 놀라움을 안겨준 공간이다. 매뉴얼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게임 화면은 산교육이나 다름없었다. 영화는 그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재미있게 들추는 느낌을 준다.

<맨 vs. 스네이크>의 부제는 "The Long and Twisted Tale of Nibbler(니블러의 길고 비틀린 이야기)"다. 팀 맥베이는 '팀 맥베이의 날'을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의 삶은 "별 볼 일 없는 삶"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길고 비틀린'은 니블러 게임의 규칙을 함축한 표현이다. 누구나처럼 '길고 비틀린' 삶을 사는 팀 맥베이를 나타내는 문구 같다. 또한, '길고 비틀린 니블러'는 팀 맥베이가 상대하는 적(뱀)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라도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 '길고 비틀린 니블러'를 만난다. 그리고 싸워야 한다.

17세 시절 팀 맥베이는 기록이 깨진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몇 점을 따도 내가 다시 깨 줄 게요"라고 큰소리를 친다. 어릴 적과 상황이 다른 40대에 접어들어 과거의 호언장담을 현실로 실천하려는 팀 맥베이의 고군분투는 마음을 울린다.

처음엔 인기도 없는 게임의 최고 점수에 목매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던 동료는 10억 점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팀 맥베이를 보면서 "살면서 이렇게 대단한 건 처음 봐. 지켜보는 것도 영광이었어"라는 찬사를 바친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자신과 싸움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런 찬사를 건넬 것이다. 팀 맥베이를 비롯한 최고 점수에 도전하는 게이머들은 바보가 절대로 아니다. 진정으로 존경 받을 자격을 갖춘 위대한 도전자들이다.

<맨 vs. 스네이크>는 단순히 게임 문화를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뜨거운 삶의 이야기다. '열정'의 온도를 느끼게 해주고 '도전'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관객에게 가슴 뭉클한 가치를 전하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다. 극중에 나오는 게임계의 슈퍼스타 빌리 미첼은 실패를 거듭하는 팀 맥베이를 보며 말한다.

"몇 번을 시도했느냐는 상관없어요. 결국, 해낼 테니까요."

니블러 팀 맥베이 팀 긴지 앤드류 세클리르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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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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