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거짓말쟁이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말끝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그런 거짓말쟁이는 아마추어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의 실수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만' 했다는 것에 있다. 뛰어난 거짓말쟁이는 90%의 진실에 10%의 거짓말을 섞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진실이, 특히 자신이 아는 진실이 섞여 있는 거짓말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가가 있을 법한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작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90%의 진실 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자가 10%의 환상을 즐길 수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화젯거리인 이유는 이 90%의 진실에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 jtbc


첫 번째, 리얼한 진실의 비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는 '시집가라'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는 삽십대 중반 여자다. 커피프랜차이즈 회사의 매장관리 직원으로 회사와 점주 사이에 치이며 사는 회사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회사생활이 꽤 리얼하다.

윤진아는 사무실에 앉아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하루의 절반엔 소위 '현장'을 돈다. 관리하는 매장을 돌아다니며 점주와 알바들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알바생의 복장 불량을 지적한다. 점주가 다른 커피콩을 섞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점주가 항의할 땐 술 한 잔 기울이며 고충을 달래주기까지 해야 한다.

밖에서도 고생이지만 회사 안에서 치이는 일도 만만치 않다. 능력 없이 아부에만 능한 이사는 자신의 잘못을 윤진아에게 뒤집어씌운다. 회사에서 이익이 많이 나면 직원에게 돌려주지는 않으면서 직원 실수로 인한 손해는 직원에게 개인 부담시킨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뜨거운 동료애를 상상했다면 옛날 드라마를 찾아보시라. 능력 있고 똑똑한 직원들은 적당히 개인주의다. 회사와 개인의 삶을 일치시키는 일도 옛말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 jtbc


그런 그녀에게 커리어우먼의 상징인 '하이힐'은 사치다. 손바닥만 한 클러치백도 언감생심이다. 예쁜 구두는 온갖 서류 뭉치가 든 커다란 가방 안에 넣고 외근할 때는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회사원이 주인공인데 정작 회사 장면은 나오지 않았던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윤진아는 서준희와 점심을 함께 먹거나 퇴근 후 회식 자리를 조인시키는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간다. 일은 언제 하는지 모르게 데이트 장면만 이어지던 로맨스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윤진아의 회사생활이 이렇게 리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윤진아와 나를 일치시키게 된다. 윤진아가 회사와 점주 사이에 끼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신입사원 때 '현장'으로 나가 30개의 점포를 담당하게 되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남의 밥그릇에 함부로 숟가락을 담그는 부장을 보며 떠오르는 특정인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윤진아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면 로맨스는 더 달달하게 느껴진다. 윤진아와 서준희의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할 때면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론 현실에 저런 잘생기고 능력 있는 연하 남자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 로맨스가 10%의 환상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 jtbc



두 번째, 10%의 달콤한 거짓말

리얼한 회사 생활 위에 휘핑크림처럼 올려진 달콤한 연애사는 시청자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어리고 잘생긴 데다 능력까지 있는 남자친구라니! 신데렐라 스토리가 간 지도 한참이고 연하가 유행인지도 오래인 터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차별화는 그곳에 있지 않다. '어리고', '잘생긴'보다 방점이 찍혀야 하는 곳은 '오랫동안 알아온'에 있지 않을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는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윤진아는 회사생활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로 뭐든 '적당히' 받아준다. 차장이 회식 참여를 안 했다고 타박해도, 회식 자리에서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려도 '적당히' 넘어간다. "저렇게까지 해서 살아남고 싶진 않다"는 다른 직원들의 불평을 들을 법도 하다. 이런 우유부단한 성격을 잘 아는 서준희는 열불이 난다. 서준희에게는 전 남친이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 것도 "여지를 남겨서"인 것처럼 보인다.

어려서부터 잘 알아온 둘은 서로의 치부뿐 아니라 성격에 대한 이해가 깊다. 소위 '역사'를 안다는 말이다. 윤진아가 '나도 20대 때는 귀엽다는 소리 질리게 들었다'고 말했다가 '네가 내 20대를 알지'하며 말을 취소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연애는 이렇게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말이다.

오래 연애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일부가 나 같고, 나의 일부가 상대방 같다. 상대방이 당한 억울한 일에 그렇게 화가 나는 것도 어쩌면 그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 연애하다 헤어진 연인이 힘든 건 '서로가 공유한 기억'이 사라지는 느낌 때문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기억이 곧 삶이므로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단 것이다.

예쁘고 착한, 어리고 능력 있는 이성을 좋아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연애는 단점 투성이인 상대를 사랑하는 일에 가깝다. '그러니까'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 jtbc


아마 두 사람의 연애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시청자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둘의 연애 재미가 덜해지는 건 아니다. 죽을 걸 안다고 해서 사는 게 덜 흥미롭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럴듯한 진실에 적당한 거짓말을 덧대어가며 '진짜 사랑'에 대해 은근하게 묻는다.

나는 통속드라마가 좋다.  통속通俗이란 세상과 통한다는 뜻이다. 이응준 작가의 <어둡고 쓸쓸한 날들의 평화>에 나왔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방송 작가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머리로 꼭 한 번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대신 써주면 돼. 삶이 반드시 기발할 필요는 없어. 통속은 아름다운 거란다. 중요한 건, 얼마나 진탕 울고 웃었느냐는 거지. 상아, 인생은 주말연속극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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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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