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감독 구속에 당혹한 KBL 프로농구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 수감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농구연맹(KBL)에서 한선교 KBL 총재의 긴급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날 한 총재는 "승부조작 사태에 관련된 당사자와 앞으로도 스포츠의 근본을 뒤흔드는 승부조작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관용의 원칙하에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농구연맹(KBL) ⓒ 유성호


김영기 KBL(한국농구연맹) 총재와 신선우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는 각각 현재 한국 남녀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수장들이다. 현역 시절에는 한국농구에 큰 족적을 남긴 '경기인 출신'으로서 행정 분야에까지 정상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농구인으로서의 위상만 본다면 충분히 원로로서 존경받았을 만한 전설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임기 말년을 앞둔 지금, 농구팬들 사이에서 두 총재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대단히 좋지 않다. 역시 경기인 출신인 방열 대한민국 농구협회 회장과 더불어, '농구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농구계 수장 3인방'으로 나란히 거론될 만큼 평가가 좋지 않다.

경기인 출신 수장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는 부분은 달라진 시대 정서나 팬들의 반응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불통'과 '독선'에 있다. 오히려 농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비전문가 출신들보다도 '일방통행식' 리그 운영과 여론 무시, 정책의 시대 역행 등은 더 심해졌다는 지적을 듣고 있을 정도다. 과거에 정치인-기업가 같이 외부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 비전문성으로 문제가 됐다면, 정작 해당 분야의 전문가 혹은 경기인 출신들이라고 해서 꼭 현장 사정에 더 밝거나 유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반면교사로 꼽힐 정도다.

김영기 총재는 최근 외국인선수 제도 개편을 두고 다시 도마에 올랐다. KBL 이사회는 지난 3월 차기 시즌(2018~2019시즌) 외국인선수 신장 제한을 기존 장신 무제한-단신 193㎝ 이하에서 장신 200㎝ 이하·단신 186㎝ 이하로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신 테크니션 영입을 장려하기 위한 김 총재의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80대 고령 총재의 시대착오적인 '다득점 제일주의'와 '단신 외인 사랑'은 뿌리가 깊다. 김 총재는 2014년 두 번째 KBL 총재 취임 직후 리그의 득점력와 볼거리 강화를 명분으로 외국인 선수 2인 동시 출전제와 신장제한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을 늘려 득점력을 끌어올리고, 기왕이면 정통빅맨보다는 빠르고 기술이 좋은 단신 테크니션의 영입을 장려하여 프로농구 흥행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구단이나 감독, 선수, 팬들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여론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KBL가 장기적으로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선수들이 지배하는 기형적인 리그 구조를 타파하고 국내 스타선수들을 더 발굴하거나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득점력을 높인다고 관중들이 즐거워할 것이라는 발상부터가 요즘 팬들의 눈높이를 무시하는 듯한 아이디어인 데다, 신장제한을 폐지하는 것은 국내 선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외국인 선수들을 경험할 기회를 상실하게 돼 국제 경쟁력에도 손해다.

'신장 제한' 정책에 '첼시 리 사태'까지...

작은 키가 이렇게 기쁘다니! 6일 오후 프로농구 KCC의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KBL 센터에서 키를 측정해 기준에 통과한 뒤 기뻐 하고 있다. 로드는 이날 측정에서 기존 200.1cm 보다 작은 199.2cm를 기록해 다음 시즌에도 한국 프로농구에서 뛸 수 있게 됐다. KBL 프로농구는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의 키를 200㎝ 이하로 제한할 예정이다. 2018.4.6

▲ 작은 키가 이렇게 기쁘다니! 6일 오후 프로농구 KCC의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KBL 센터에서 키를 측정해 기준에 통과한 뒤 기뻐 하고 있다. 로드는 이날 측정에서 기존 200.1cm 보다 작은 199.2cm를 기록해 다음 시즌에도 한국 프로농구에서 뛸 수 있게 됐다. KBL 프로농구는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의 키를 200㎝ 이하로 제한할 예정이다. 2018.4.6 ⓒ 연합뉴스


외국인 선수들도 일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KBL의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사이먼(안양 KGC), 로드 벤슨(원주 DB), 등 KBL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2m 이상의 장신 선수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음 시즌 리그에서 뛰기 어렵게 됐다. 이들은 단지 돈을 받고 '용병'만이 아니라 소속 구단과 KBL에서 많은 족적을 남기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선수들이었다. 외국인 선수를 리그의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가치에 따라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KBL의 천박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신선우 WKBL 총재는 2016년 부천 KEB하나은행에서 벌어진 '첼시 리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첼시 리는 혈통과 신분을 속이고 국내선수 자격으로 KEB하나은행에서 뛰었다가 당국으로부터 불법 행위가 적발되어 퇴출된 선수다. 이로 인해 당시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던 KEB하나은행의 2015~2016시즌 기록은 WKBL에서 완전히 사라지며 '흑역사'로 남았다.

당시 구단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계자가 사임하거나 문책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부실한 행정 절차로 첼시 리의 사기극을 가능하게 했던 집행부의 수장인 신 총재를 비롯한 연맹 차원에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후 사실상의 셀프 면죄부를 주고 여론의 비판에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신 총재는 WKBL 수장에 오르는 과정부터 의문을 자아냈던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부 남자 성인농구 감독으로 활약하며 전주 KCC-창원 LG 사령탑 등을 역임했던 신 총재는 2012년 WKBL 전무이사에 오르며 갑작스럽게 여자농구 행정가로 변신했다. 2014년에는 최경환 전 총재(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뒤를 이어 총재 직무대행을 거쳐 이듬해에는 정식 총재로 선임되며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 출신도 아니고 여자농구와 큰 연결고리도 없었던 신 총재가 하루아침에 여자 프로농구 수장까지 오르는 데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친박' 실세로 꼽혔던 최경환 전 총재와의 개인적 친분과 후광이 있었다는 게 농구계 일각의 주장이다. 정작 신 총재 본인은 부임 이후 뚜렷한 업적도 없는 데다, 첼시 리 사태나 리그 파행을 둘러싼 수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결국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무리수' 정책에 인기 떨어지고 평균관중도 줄어

경기인 출신 수장들이 비판을 받은 만큼 리그 부흥에 기여한 성과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KBL은 김영기 총재 부임 이후 인기회복은커녕 평균관중은 2000명대로 떨어졌다. 프로농구 방송 평균 시청률로 0.2%(2017년)대로 추락했다. 경기력 저하와 컨텐츠 부재, 판정 논란 등으로 KBL의 행정력에 대한 팬들의 평가는 '마이너스'에 가깝다.

여자농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가뜩이나 선수층과 인프라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데 올시즌 KDB생명이 구단 운영을 포기하며 WKBL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됐다. 국내에서도 경쟁종목인 여자배구의 인기가 밀렸고, 국제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 90년대 후반IMF 사태보다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여자농구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 총재의 임기가 끝나간다는 것이다. '구단주 총재' 시스템을 도입한 KBL은 올시즌이 끝나면 김영기 총재 후임으로 울산 현대모비스가 차기 총재를 맡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이 총재직을 맡는 것이 유력하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총재가 바뀌더라도 임기 말년에 김영기 체제 이사회에서 의결된 외국인 선수 정책 등을 순식간에 뒤집기는 절차상 어렵다. 김 총재가 물러나더라도 당분간 내부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선우 WKBL 총재의 임기도 6월 말이면 끝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신 총재가 연임을 원한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자농구계는 구단 해체를 선언한 KDB생명의 위탁 운영과 새로운 인수 기업 물색 등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있다. 결국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든 제대로 된 '리더'를 뽑아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한국 남녀프로농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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