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포스터.

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포스터. ⓒ (주)영화사 화수분


28일은 스페인 내전이 종결된 날이다. 1936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군부 쿠데타로 시작된 이 내전은 1939년 3월 28일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끈 군대가 마드리드를 점령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다. 파시즘 대 반(反)파시즘의 대결 구도로 국제전 양상까지 띠었던 이 내전은 공화주의와 자유를 신봉했던 세계 젊은 이상주의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대의를 품고 참전했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등은 이후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은 한국 전쟁과 상통하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이 다양한 영화와 소설, 논픽션, 사진 작품 등을 통해 이 사건을 접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스페인 내전이 끝난 날 이를 소재로 한 영화 한 편을 보게 됐다.

스페인 내전 속에서, 두 사람의 인생 역정

 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스틸 컷.

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스틸 컷. ⓒ (주)영화사 화수분


롤랑 조페 감독이 연출한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There Be Dragons)은 지난 2002년 성인으로 시성된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의 젊은 시절과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했다. 에스크리바 신부는 '오푸스데이'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푸스데이'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면서 이웃에게 봉사하고 사회 진보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가톨릭 자치 조직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비밀결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런 면은 소설에 이어 영화로 제작된 <다빈치 코드>에서 주요하게 다루면서 대중에게 널리 각인됐다.

실화에 근거해 만든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은 에스크리바 신부(찰리 콕스 분)와 그의 죽마고우인 마놀로 토레스(웨스 벤틀리 분)를 주인공으로 한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이들이 계급의 차이를 자각하고 성직자와 실업가의 길을 각각 걷게 되면서 멀어지게 된 사연, 이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 끝나던 시기까지 두 사람이 겪었던 판이한 인생 역정 등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에스크리바 신부가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믿음을 지켜내는 이야기, 그리고 파시스트 세력의 첩자로 공화군에 가담한 토레스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지만 결국 비극으로 전락하게 되는 이야기를 박애주의 대 이기주의라는 틀로 대비시킨다. 영화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다분히 서사에 중심을 둔 방식으로 풀어간다.

이처럼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이 있다. 소위 '좌파 감독'으로 유명한 켄 로치의 작품답게 당시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공화군 측에 가담했던 무정부주의자 그룹의 입장으로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찰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와 비교하면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은 주로 가톨릭의 시각에서 스페인 내전을 조망한 영화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화군 측의 만행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당시 공화군에 가담했던 여러 그룹 중에서 공산주의에 경도된 민병대와 일군의 노동자 계층이 성직자들을 조롱하거나 살해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 모습이 강렬하게 묘사됐다.

이에 대해 영화는 이들이 노동자들을 압제했던 구체제와 가톨릭교단을 동일시한 데서 기인한 일이라며 반성과 용서의 입장을 설파하는 에스크리바 신부의 반응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를 도와준 한 공화군 장교의 일화 등을 함께 보여주며 균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스틸 컷.

롤랑 조페 감독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 스틸 컷. ⓒ (주)영화사 화수분


하지만 <랜드 앤 프리덤>이 강조했던 공화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인상 깊게 봤던 관객이라면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이 묘사한 스페인 내전의 또 다른 면모에 정서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충격이란 잔혹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데 대한 당혹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의 상이한 입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닌 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또 사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

이런 측면 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를 꼽는다면, 단연 일디코를 연기한 배우 올가 쿠릴렌코의 매력이다. 일디코는 헝가리 출신으로 공화주의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강인한 여성이다. 쿠릴렌코는 우크라이나 태생 배우로 영화 < 007 퀀텀 오브 솔러스>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쿠릴렌코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에서 잊지못할 장면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영화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로서 결기 있고 아름다운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은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특히 호소력이 있을 법한 영화다. 2013년 한국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 한국전쟁과 기독교라는 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영화 <미션>으로 유명한 롤랑 조페의 팬들 역시 환영할 만한 영화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 역시 만만치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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