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여파가 영화제로 확산되면서 국내 주요 영화제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몇몇 영화제에서 핵심 집행부나 스태프 성추행·성희롱·성차별 논란이 제기되면서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영화단체도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자 즉각적으로 관련자 징계에 나선 상황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집행위원장 공석 상태가 됐다. 집행위원장이었던 조재현 배우와 박재동 화백이 각각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사의를 밝힌 것. 부천영화제와 전주영화제는 수년 전의 성추행 사건과 스태프의 성희롱·성차별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부천영화제, 전 프로그래머 미투 지지하며 사과했지만

 미투 여파로 안팎으로 논린이 불거진 국내 영화제들

미투 여파로 안팎으로 논린이 불거진 국내 영화제들 ⓒ 성하훈


부천영화제는 5일, 미투 운동 지지와 함께 최근 논란이 된 전직 프로그래머 성추행과 2차 가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앞서 유지선 전 프로그래머는 지난 2월 언론을 통해 2013년 10월 당시 영화제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현재 부천영화제 간부에게 2차 피해를 입었다고 공개했다.

부천영화제 측은 "위계의 상부에 있는 전 고위간부에 의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폭로에 나서게 된 유지선 전 프로그래머의 용기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또 그간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음에 죄송한 마음을 보냅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유 전 프로그래머에게 피해를 입힌 간부는 2015년 12월 퇴임한 상태였기에 2016년 제20회를 기해 새롭게 출범한 현재의 영화제 집행부는 이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면서 현 집행부와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2차 가해와 관련해서는 "2차 피해의 가해자로 언론에 보도된 현 임원에 대해서는 유지선 전 프로그래머가 명예훼손으로 민사 및 형사 소송을 제소한 상태로서, 영화제의 개입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언급을 자제해왔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명예훼손 관련 형사소송은 2017년 4월 27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불기소(혐의 없음) 결정된 후, 원고의 항고에 서울고검 항고기각결정(최종)으로 혐의가 없음이 확정된 사항"이라며 법적인 판단이 끝난 사안임을 강조했다.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재판의 진행 상황에 따라 사실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천영화제는 또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는 유 전 프로그래머의 주장도 일축했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한 해고무효소송과 관련해서는 2017년 11월 29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조직위원회의 정당한 계약해지임을 인정하여 유지선 전 프로그래머의 청구를 기각 결정한 후 유지선 전 프로그래머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라는 것. 

하지만 영화계 일부에서는 "현재 부천영화제에 있는 2차 가해 관계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인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불필요한 말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주영화제, 직원 성희롱 사실 드러나 곤혹

전주영화제도 부서 팀장의 성추행·성희롱 사실이 드러나 해당 직원을 문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너무 형식적으로 처리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제 측과 피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A 팀장은 상습적으로 여성 스태프의 외모를 비교하거나 불쾌함을 주는 발언을 일삼았고 어깨에 손을 얹거나 얼굴을 만지는 등의 추행을 반복했다.

직접 피해를 겪었다는 전직 스태프는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건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며 "'예쁜 스태프를 뽑지 왜 못 생긴 애들을 뽑냐"는 식의 발언을 되풀이했고, 여성 스태프들이 불쾌해 하는 행동을 하거나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상습적인 성희롱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전주영화제 측은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지난해 내부 징계를 내렸으나 피해를 겪은 스태프들은 형식적인 징계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당시에 내부에서 문제 제기를 하니 나온 대답이 '왜 일이 벌어졌을 때 이야기하지 않고 이제 와서 이야기를 하냐'는 식이었다"며, "여성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위에서 조용히 넘기려는 것 같다'는 말들이 나왔는데, 딱 그렇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주영화제는 "당시 규정에 따라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를 내린 것이고 이후에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다"며, "당사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그런 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협회나 단체도 성폭력 사건 논의중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지영


지난 11월에는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측 관계자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여성 스태프에게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측 관계자는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 여성 스태프들에게 '여자는 마른 것 보다 살집이 조금 있어야 섹시하다', '그래도 술이 한잔 들어가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스A, 미스B 등의 호칭을 사용했다. 또한 "결혼은 했냐, 나이는 몇 살이냐, 같이 온 OO분이 결혼을 안 하였으니 잘해보라"는 등 업무와 관련 없고 당사자들이 불쾌해 할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울구로어린이영화제 측은 정식 스태프가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며 영화제에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며 "성희롱은 아니었고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발언을 해서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 측에 대신 정중히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발언 당사자에게도 직접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으나 연락을 받지 않아서 영화제와 관계가 완전 끊긴 상태라며,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도 충분히 양해를 하고 마무리 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국독립영화협회도 최근 한 회원의 성폭력 가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성평등한 환경을 위한 규약 및 성차별, 성폭력, 인권침해 사건 처리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중앙운영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사를 결정했다. 결과에 따라 필요한 징계나 조치를 할 예정이다.

최근 한 영화단체도 회원으로 있는 영화인의 성추행 건이 드러나 중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하순쯤 관련된 내용이 단체 집행부에 전달됐고, 당사자가 이를 시인하면서 바로 제명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화단체 관계자는 "가해자가 유명인사도 아니고, 피해자도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문을 작성하겠다고 했고, 피해자 역시 이를 받아 보겠다고 해서 전달했다"고 말했다. 

"영화제 내부 성폭력 예방 교육 필요하다"

 지난해 서욱국제여성영화제 스페셜 토크 행사

지난해 서욱국제여성영화제 스페셜 토크 행사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투 운동의 여파가 국내 영화제 내부로도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내부에서 위계질서나 권력 관계가 작용하고 영화제라는 게 이벤트성 행사다보니 자원봉사자들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며 성폭력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프로그래머는 "여성영화제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으나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전문강사의 교육이 필요하다"며 "영화제 색깔에 맞는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도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성차별이나 혐오발언,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듯이 영화제들이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내부적인 책임감"도 강조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를 다녀온 이현정 감독은 "올해 선댄스의 키워드는 '#MeToo #TimesUp'이었다"며 "영화제 상영작 라인업에서부터 24시간 폭행이나 추행을 알리는 핫라인 설치 등등 영화제 쪽이 예민하게 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선댄스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설립자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제 남자의 역할은 듣는 것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여성 영화인의 목소리가 들리게 해야 할 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올해 "여성영화제서도 미투와 관련된 스페셜 토크 등의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고민 중"이라며  구체적으로 "성평등영화정책 포럼을 국제적인 포럼으로 크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는 "미투 운동의 고민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여성영화제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영화제들의 '고용조건'도 함께 고민해 볼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제 성폭력 예방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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