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프로농구가 또 외국인 선수제도를 뜯어 고쳤다. KBL은 5일 제23기 제3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외국인 선수 제도 변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KBL은 2018-2019 시즌부터 자유계약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이미 확정한 가운데, 외국인 선수의 신장 기준을 장신 2m 이하, 단신은 186cm 이하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KBL은 김영기 총재가 복귀한 이후 그동안 프로농구 인기 회복을 위해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표방했다. 팬들에게 더 박진감 넘치는 농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경기템포가 더 빨라져야하고 그러다보면 KBL이 권장하는 다득점 경기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다.

문제는 '경기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보다는 툭하면 외국인 선수 제도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용하려는 한심한 발상이다. KBL은 이전에도 외국인 선수 제도를 1~2년이 멀다하고 수시로 뜯어고치기 일쑤였지만, 유독 김영기 총재의 복귀 이후에 일방통행식 정책이 더 심해졌다.

팬들과 현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수 장단신 제도 부활을 밀어붙였던 KBL은 이번에는 외국인 선수의 신장제한 기준을 더 강화하면서 사실상 '테크니션' 영입을 유도하고 있다. 기존 프로구단들이 선호하던 정통 빅맨 보다 화려하고 기술이 좋은 포워드-가드형 선수들이 유입되면 KBL이 원하는 공격농구와 리그의 흥행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동안 부작용이 많다는 비판을 받던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하고 자유계약으로 변경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무늬만 자유계약일뿐, 실제로는 이런저런 조건이 늘어나며 선수영입의 제한이 더 커졌다는 우려도 있다.

2m 장신 제한, 국제 무대에서는 어쩌려고

 KCC 하승진은 지난 3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과도하게 팔꿈치를 휘두른 혐의로 6일 벌금 100만 원을 부과받았다.

KCC 하승진은 국내 농구 선수 중 가장 큰 221cm의 신장을 자랑한다. ⓒ KBL


KBL에서 그동안 안정적인 정통 빅맨은 성적의 보증수표로 꼽혔다. 기존의 외국인 선수제도에서 장신선수는 신장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2m 이하라는 규정이 추가되면서 프로구단들은 확실한 장신 빅맨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골밑이 약하여 외국인 빅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장신센터 하승진(221cm)을 보유한 전주 KCC처럼 특정 구단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했어야했다.

신장제한이 없었던 시대에도 KBL에서 장신 선수들이 넘쳐나거나 다 통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KBL에서 활약중인 외국인 선수중 가장 큰 로드 벤슨(원주 DB)의 신장이 207cm 정도이고 현재 리그 전체를 봐도 2미터 이상의 외국인 선수가 4명 뿐이다. 역대 한국농구 외국인 선수중 최장신은 2011-2012 시즌 서울 삼성에서 활약했던 피터 존 라모스(222cm)였지만 KBL의 빠른 농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퇴출되기도 했다. 빅맨의 기동력과 공수전환을 중시하는 현대농구의 특성상 KBL도 키만 큰 빅맨이라고 무조건 선호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오히려 그 정도 신장에 출중한 기량까지 갖춘 빅맨이라면 먼저 NBA로 가거나 더 대우가 좋은 해외리그로 간다.

외국에서 2m 이하의 선수들이라면 대부분 포워드-가드이거나 오히려 기술이 떨어져서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신장 때문에 선택이 폭아 제한되면서 구단들이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고르기라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KBL이 굳이 무리해서 신장제한을 폐지할 필요까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한국 농구도 이제 2미터 이상의 토종 빅맨이 드물지 않은 상황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신장이 낮아지면 단기적으로 국내 선수들이 프로리그에서의 경쟁은 좀더 수월해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보다 큰' 선수들이 즐비한 국제 무대에 나갔을 때의 적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단신제도가 한창 유행했던 프로농구 초창기에 한국 농구의 국제무대 경쟁력이 얼마나 급격하게 추락했는지를 연상하면 쉽다. 이제는 아시아 무대만 해도 중국, 뉴질랜드, 호주, 이란 등 2m가 넘는 장신 선수들이 넘쳐난다.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들을 상대하며 경험을 쌓아도 모자랄 판에, 고만고만한 선수들을 데려다 놓고 리그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국내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 어쩌나

슛하는 라틀리프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최근 귀화하며 대표팀에 합류한 라틀리프가 슛하고 있다.

▲ 슛하는 라틀리프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최근 귀화하며 대표팀에 합류한 라틀리프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단신 선수 제도 역시 문제는 마찬가지다. 단신 선수의 신장을 180대로 낮춘 것은 기존 장단신제에서 벌어지던 디온테 버튼(원주 DB)이나 마커스 블레이클리(울산 현대모비스)같은 190대 초반의 언더사이즈 빅맨들이 득세하는 것을 막고 전형적인 단신 가드형 선수들의 발탁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빅맨과 달리 KBL같은 리그에 오고싶어할 만한 단신 외국인 선수들은 넘쳐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국내 1, 2번 선수들이 직격탄을 맞을수 있다. 득점력이 뛰어난 외국인 가드들의 볼소유권이 늘어나게되면 정작 국내 선수들은 공도 몇 번 못잡아보고 들러리만 서는 상황이 심화될 수 있다.

또다른 문제는 KBL의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일부 외국인 선수들과 구단들이다. 새로운 규정대로라면 로드 벤슨을 비롯하여 버논 맥클린(고양 오리온), 찰스 로드(전주 KCC), 데이비드 사이먼(안양 KGC 인삼공사) 선수들은 신장제한에 걸려 다음 시즌 KBL에서 뛸 수 없게 된다.

벤슨, 로드, 사이먼은 한국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장수 외국인이자 국내 팬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선수들이다. 팬들은 팀에 오랫동안 헌신하며 프랜차이즈 못지 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과 하루아침에 강제로 작별을 해야하는 처지다. 리그의 구성원으로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존중, 팀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연속성에 대한 철학이 전무한 일방통행의 극치다.

KBL은 국내 선수 출전 비중 확대를 위해 외국선수 출전 쿼터를 현행에서 축소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KBL이 추구하는 외국인 선수 제도의 근본적인 방향성 자체가 기술과 득점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차세대 스타와 스토리텔링의 부재로 리그 인기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데,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외국인 선수 제도 땜질 처방과 미봉책에만 잡착하고 있는 KBL의 낡은 기획력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누구를 위한 외국인 선수제도인지 아쉬움만 깊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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