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고 이영훈 작곡가

▲ 이영훈 고 이영훈 작곡가 ⓒ 영훈뮤직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 세종문화회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고 창조한다는 기쁨을 가지고 음악을 하게 하소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깨끗한 정서(기억)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이의 가슴에 숨겨져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1994년 고 이영훈이 자신의 작곡 노트에 적은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그의 노래가 주는 감동이 이토록 깊고 긴 '이유'이기도 하다. 가슴 속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많은 곡을 남기고 그가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다.

이영훈의 10주기를 기념하여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작곡가 이영훈>이란 이름의 콘서트가 열렸다. 많은 동료와 친구들, 가족, 3000명의 관객이 그 순간 그곳에서 이영훈을 다시 만났다.

윤도현 문 열고, 이문세 문 닫고... 이병헌 깜짝 등장

'추모'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콘서트 이름을 단지 <작곡가 이영훈>으로 지은 건 추모라는 단어가 주는 엄숙함이 아닌, 그의 음악이 갖는 따뜻한 서정성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이런 취지대로 이날 콘서트는 이영훈이 만든 노래의 멜로디, 가사, 곡에 담긴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깊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윤도현,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한영애, 한동근, 장재인, 뮤지컬 배우 차지연, 현대무용가 김설진, 배우 이병헌, 박정현, 김범수, 이문세.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총집합했지만 한순간도 '작곡가 이영훈'이 초점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매우 인상 깊은 점이었다. 공연의 문을 연 윤도현과 문을 닫은 이문세만이 노래가 끝난 후 관객에게 말을 건넸고, 다른 출연자들은 이영훈의 노래를 한 곡 혹은 두 곡 부르고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때문에 집중력 있게 이영훈이 남긴 노래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 진가를 깊게 새길 수 있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이 노래에 맞춰 몸짓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이 노래에 맞춰 몸짓을 선보이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주연을 맡았던 윤도현은 이문세의 3집에 실린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휘파람'을 부르며 막을 열었다. 전제덕은 하모니카로 '옛사랑' 연주했고, 장재인은 '가을이 오면'을 불렀다. 한영애는 '광화문 연가'와 '빗속에서'를 자신만의 개성이 짙게 밴 자유로운 창법으로 열창했다. 차지연은 '애수'를, 한동근은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을 시원한 가창력으로 선보였다.

이들이 노래하는 동안 노랫말이 무대 위의 전광판에 지속적으로 떴는데, 시와 다름 없는 가사의 아름다움이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창력 뛰어난 가수들의 노래로만 공연의 전부를 채우는 대신,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라든지 김설진의 현대무용 무대로 이영훈 노래가 가진 정서를 두드러지게 한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시를 위한 시' 노래에 김설진 무용가의 몸짓이 더해졌을 때 가사의 아름다움이 배가됐다.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말아요/ 내가 눈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이문세 5집 <가로수 그늘아래서면> 수록곡 '시를 위한 시' 가사)

이날 배우 이병헌이 깜짝 등장해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부르기도 했다. 관객은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환호했다. 이문세는 이병헌이 한 달 동안 자신을 괴롭히며 열심히 준비했다며 준비과정을 들려주기도 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가수 박정현은 이날 '사랑이 지나가면'을 열창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가수 박정현은 이날 '사랑이 지나가면'을 열창했다. ⓒ 세종문화회관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른 박정현은 영상을 통해 "이영훈 작곡가님은 영혼을 모두 담아서 곡을 쓰시는 것 같다"며 "저도 영혼을 담아서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김범수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불렀다. 어린이 합창단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무대도 인상 깊었다.

마지막은 이영훈의 동반자, 이문세의 무대였다. 그는 '소녀'와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열창했다.

"이영훈씨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25살, 이영훈씨는 24살이었다. 노래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니 우리가 얼마나 신났겠나. 작업실에 찌들어있는 그 시간조차도 정말 행복했다. 요즘 가요계에선 한 달, 짧으면 일주인 사이에 발표됐던 노래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를 만들었으니 이 사람, 참 뿌듯할 것이다. 아마 이 자리에 있었다면 관객에게 큰절을 올리지 않았을까. 제가 대신 인사드리겠다. 감사합니다." (이문세)

악보와 시집 출간 예정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한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진행됐다. 이날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은 '옛사랑'에 맞춰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 세종문화회관


"새벽에 아버지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담배연기가 생각난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헤드폰을 끼고 작업하셨는데 피아노 건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 어린데도 그 분위기가 엄숙하고 무겁게 여겨져서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영훈의 아들 이정환)

이날 8시 공연을 한 시간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는 공연의 취지를 설명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문세와 이영훈의 아내인 영훈뮤직 김은옥 대표, 이영훈의 외아들인 영훈뮤직 이정환 본부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영훈의 10주기를 맞아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일들을 밝혔다. 이영훈의 시집과 악보집을 각각 출간할 예정이며, 덕수궁 돌담길에 세워진 이영훈의 노래비를 리뉴얼할 계획이다. 또한 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이 외에 '이영훈 작곡상'을 제정할 계획도 간단히 밝혔다. 

이정환 본부장은 "이영훈을 사랑하는 분들께서 이렇게 합심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이란 세월 동안 힘든 일도 있었는데 치유가 됐다. 아버지가 바라셨던 대로 가슴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김은옥 대표는 "사랑도 감사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이영훈 헌정 공연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하는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열렸다.

▲ 이영훈 헌정 공연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 이영훈 작곡가의 10주기를 기념하는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이 열렸다. ⓒ 영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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