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선수들이 똘똘 뭉친 현대건설이 '디펜딩 챔피언' 기업은행을 잡았다.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6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3-25, 25-22, 25-23, 25-22)로 승리했다. 엘리자베스 캠벨의 부상 이탈 이후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르고 있는 현대건설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행을 상대로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다.

현대건설은 이날 30%이상의 공격점유율을 기록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지만 주전 4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코트에 나선 모든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펼쳤다. 프로 데뷔전을 치른 루키 김주향도 3세트 승부처에 투입돼 잊지 못할 프로 첫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이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4개의 블로킹 득점을 기록하며 남녀부 최초로 1000블로킹(정규리그 기준) 고지를 밟은 '거요미' 양효진이다.

홍지연-장소연-정대영-양효진으로 이어진 여자배구 센터계보

 양효진은 홍지연-장소연-정대영으로 이어지던 한국여자배구의 센터 계보를 확실히 이어 받았다.

양효진은 홍지연-장소연-정대영으로 이어지던 한국여자배구의 센터 계보를 확실히 이어 받았다. ⓒ 한국배구연맹


1990년대 여자배구 최고의 센터는 단연 호남정유의 무적시대를 이끌었던 홍지연이었다. 당시로선 흔치 않던 187cm의 장신센터 홍지연은 호남정유의 92연승과 겨울리그 9연패,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다. 홍지연의 전성기가 저물어 갈 때 즈음엔 센터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동공격의 달인' 장소연이 한국여자배구 센터 계보를 이어 나갔다.

동갑내기 강혜미 세터와 함께 선경을 이끌던 장소연은 IMF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된 후 현대건설로 이적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건설의 겨울리그 5연패를 이끌었다. 장소연은 프로 출범과 함께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9년 전격 복귀해 2009-2010시즌과 2011-2012 시즌 KGC인삼공사의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장소연이 현대건설로 이적하고 1년이 지났을 때 현대건설은 청소년 대표 출신의 센터 유망주를 영입했다. V리그 초창기를 풍미했고 여전히 리그 정상급 센터로 활약하고 있는 정대영(도로공사)이 그 주인공이다. 정대영은 센터임에도 속공과 블로킹은 물론이고 후위공격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만능 센터였다. 정대영은 전성기 시절 후위에 위치했을 때도 후위공격을 하기 위해 리베로와 교체되지 않았을 정도로 팀 내 비중이 높았다.

장소연과 정대영으로 이어진 현대건설 센터의 계보, 그리고 한국 여자배구의 센터계보는 부산 남성여고 출신의 빼빼 마른 센터 양효진이 이어갔다. 양효진은 2007년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해도 190cm의 큰 신장을 제외하면 배유나(도로공사), 하준임, 김나희(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등 동기들에 비해 크게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양효진은 신장을 활용한 타점 높은 공격과 탁월한 블로킹 감각으로 놀라운 발전속도를 보이며 V리그 최고의 센터로 거듭났다.

실제로 양효진은 2009-2010 시즌부터 블로킹 부문에서 8시즌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현대건설이 우승을 차지한 2015-2016 시즌에는 기업은행과의 챔프전에서 득점(55점), 공격 성공률(51.61%), 서브(세트당 0.33개), 블로킹(세트당 0.44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대활약으로 챔프전 MVP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15년 한국배구연맹에서 선정한 V리그 10주년 올스타에서도 양효진은 '당연히' 센터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115경기 더 많이 소화한 이선규보다 먼저 1000블로킹 달성

 양효진의 세트당 블로킹 기록(0.83개)은 남자부까지 합쳐도 따라올 선수가 없다.

양효진의 세트당 블로킹 기록(0.83개)은 남자부까지 합쳐도 따라올 선수가 없다. ⓒ 한국배구연맹


양효진은 리그에서도 김희진(기업은행)과 함께 최고연봉(3억 원)을 받는 대스타지만 대표팀에서도 '여제' 김연경(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과 함께 절대적인 존재를 보여주는 선수다. 실제로 2012년 런던 올림픽4강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 8강 등 2010년대 여자배구 영광의 순간들엔 언제나 양효진이 있었다. 반면에 양효진이 허리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던 작년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4강에서 태국에게 덜미를 잡혀 3위에 그쳤다.

이재영(흥국생명)-이다영(현대건설) 자매를 비롯해 강소휘(GS칼텍스 KIXX), 고예림(기업은행) 같은 신예 스타들의 등장으로 V리그 여자부는 출범 후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양효진은 이번 시즌에도 올스타 투표에서 8만575표로 최다득표의 영예를 누리며 최고 인기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로 양효진은 2013-2014 시즌부터 최근 5번의 올스타전에서 네 번이나 최다득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번 시즌에도 블로킹(세트당 0.89개)과 속공(59.33%) 부문 1위를 달리며 현대건설을 이끌고 있는 양효진은 6일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남녀부 최초의 1000블로킹 달성이다. 2007-2008 시즌 프로에 데뷔한 양효진은 308경기 만에 정규리그 1000블로킹의 위업을 달성했다(V리그의 각종 공식 기록들은 정규리그를 기준으로 집계된다).

양효진은 V리그 원년부터 활약했던 남자부 1위 이선규(KB손해보험 스타즈)보다 먼저 1000블로킹 고지를 밟았다. 이선규가 프로 출범 후 통산 423경기에 출전해 997블로킹을 기록한 반면에 양효진은 308경기 만에 1000블로킹을 달성했다. 실제로 세트당 블로킹은 양효진이 0.83개로 이선규의 그것(세트당 0.68개)을 훨씬 능가한다. 노장 반열에 든 이선규에 비해 양효진은 아직 전성기 구간을 보내고 있어 앞으로 두 선수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전망이다.

양효진은 6일 기업은행전에서 통산 1000블로킹과 함께 개인 통산 4500득점도 달성했다. 물론 5000득점을 돌파한 팀 동료 황연주(5172점)와는 다소 격차가 있지만 양효진의 득점 적립 속도를 고려하면 훗날 양효진이 황연주의 기록을 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지금은 그저 친근하게 '거요미'로 불리고 있지만 이제 양효진을 'V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부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도드람 2017-2018 V리그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양효진 1000블로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