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바르셀로나에서 중국리그 허베이로 이적한 수비수 마스체라노. BBC가 보도한 화면 갈무리.

FC바르셀로나에서 중국리그 허베이로 이적한 수비수 마스체라노. BBC가 보도한 화면 갈무리. ⓒ BBC


수비형 미드필더의 표본이자 국내 팬들에게 '마지우개'라는 별명으로 익숙한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이적이 결정됐다. FC 바르셀로나(아래 바르사)를 떠나는 그의 새로운 행선지는 중국 무대다. 중국 슈퍼리그의 허베이 화샤 싱푸는 지난 24일(한국시간) 마스체라노의 영입 소식을 전했다. BBC 등 유럽 매체도 마스체라노의 이적 소식을 기사로 다뤘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올해 만 34세로 마스체라노의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까지 다다랐다. 과거보다 스피드는 떨어졌고 부상의 빈도가 잦아졌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경기에 나서면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제는 젊은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가 왔다. 마침 사무엘 움티티가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바르셀로나의 주전 수비수 자리를 차지했고, 장기간 전력에서 이탈해 있던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대주 예리 미나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팀에 합류했다.

마스체라노의 길었던 유럽 무대 정복기도 이제 끝났다. 2006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유럽 클럽 경력을 시작한 마스체라노는 13년 만에 유럽 축구 판에서 퇴장하게 됐다. 다시금 유럽 무대로 컴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바르사에서 이미 수많은 영광을 쟁취한 그가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는 유럽에서 총 3개의 클럽에 몸 담았다. 웨스트햄에서 데뷔를 했고 리버풀에서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으며 바르사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역시 바르사 유니폼을 입었던 8년 간의 시간이다. 그가 지난 7시즌 반 동안 남긴 족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마스체라노가 들어올린 18개의 트로피

마스체라노는 바르사에서 '꽃길'을 걸었다. 7시즌 반 동안 마스체라노가 입맞춤한 트로피 숫자가 18개에 달한다. 평균적으로 한 시즌에 두 개 이상의 트로피를 품었다. 바르사 데뷔 시즌인 2010-2011 시즌부터 트로피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라리가에서 유럽 무대 첫 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승전 상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는데 일조하며 웃었다. 리버풀 소속 시절 2006-2007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던 아픔을 씻어냈다.

사실 바르사 첫 시즌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인 마스체라노에게 바르사의 패스 축구는 어울리는 옷이 아니였다. 팀 전술상 본업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완전히 내줬다. EPL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스페인 무대에서 벤치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벤치 신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패스는 부스케츠에게 밀릴지 몰라도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마스체라노에게 당시 감독이었던 펩 과르디올라는 중앙 수비수 자리를 맡겼다. 이 변화는 바르사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마스체라노는 체력 저하, 부상 등의 이유로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던 카를레스 푸욜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패싱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중앙 수비수 파트너 헤라르드 피케가 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마스체라노-피케 조합은 유럽을 대표하는 수비수 콤비가 됐다. 뒷공간 수비와 대인방어에 다소 약점이 있는 피케의 단점은 '태클 장인' 마스체라노가 확실하게 메웠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등장해 팀의 실점을 막아냈다. 높은 수비 라인을 형성하는 바르사 축구 철학상 발생하는 위기 장면은 마스체라노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 마스체라노는 언제나 바르사의 주전 중앙 수비수였고, 우승이란 성과에 항상 주요 공신으로 꼽혔다.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 수비수로... 팀 위한 헌신

마스체라노는 '예술가'들로 가득한 바르사 동료들을 위해서 뒤에서 헌신했다. 피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바르사는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공을 잘 다루면서 공격적인 선수를 선호한다. 전술도 수비보다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자연스럽게 수비력이 떨어지는 자원들이 많다. 그래서 최후방에 홀로 남겨진 마스체라노의 수비 부담은 컸다.

이미 리버풀 시절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받은 선수에게 궂은 일만을 도맡는 역할은 굴욕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 동료들은 존중하고 나의 역할과 위치를 받아들인다는 말을 남겼다. 마스체라노는 불평 없이 헌신적으로 동료들이 비우고 나간 빈 공간을 채웠다. 다니 알베스와 호르디 알바와 같은 공격적인 풀백들은 마스체라노의 희생 덕에 부담없이 공격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점수 차이가 벌어진 경기에서도 마스체라노는 무리해서 공격 지역으로 올라가지 않고 묵묵히 수비 지역을 지켰다.

마스체라노는 바르사에서 대부분 중앙 수비수로서 출전했지만 종종 다른 포지션도 소화해야만 했다. 본래 본업이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는 부스케츠의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그는 심지어 오른쪽 풀백으로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오른쪽 풀백 선수들의 부상과 징계가 겹치면 그 역할은 마스체라노의 몫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낯선 자리에서도 그의 수비력은 놀라웠고, 바르사가 시즌을 치러내는데 힘을 보탰다.

모두가 포기할 법한 순간에 마스체라노는 끝까지 수비수로서 최선을 다했다. 2010-2011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아스날과 경기에서 니클라스 벤트너의 슈팅을 막은 이도, 2016-2017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파리 생제르망과 경기에서 디 마리아의 단독 찬스를 막은 선수도 모두 마스체라노였다. 그의 집요한 태클로 바르사는 2011년에는 '더블'을 달성했고 2017년에는 '캄프 누의 기적'을 일궈냈다.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기록한 1골

   마스체라노의 득점을 축하하는 동료들

마스체라노의 득점을 축하하는 동료들 ⓒ SPOTV 중계화면 캡쳐


마스체라노는 지난 7시즌 반 동안 344경기에 출장했다. 이번 시즌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40경기 이상을 소화했을 정도다. 그가 얼마나 바르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소화했는지 드러나는 기록이다.

빼곡한 경기 출장 횟수와 다르게 마스체라노가 남긴 기록 중에 초라한(?) 부분도 있다. 바로 득점 기록이다. 마스체라노는 344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단 1골 밖에 넣지 못했다. 수비수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현대 축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기록이다. 더욱이 마스체라노라는 세계적인 스타가 단 한 골에 그쳤다는 점은 새삼 놀랍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초라할지 모르는 '1골'이란 수치는 마스체라노라는 이름 앞에 놓이면 의미를 달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스체라노는 바르사에서 수비에만 전념했다. 환상적인 재능을 가진 공격 자원이 즐비한 바르사에서 공격에 가담하는 것은 사치였다. 물론 가끔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득점보다는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목적이 더 컸다.

마스체라노가 무득점에 그치고 바르사 유니폼을 벗어도 그를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동료들과 팬들은 그의 득점을 바랐다. 모두의 염원은 지난 시즌에 이뤄졌다. 지난 시즌 라리가 34라운드 오사수나전에서 마스체라노는 팀의 여섯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바르사 입성 후 7시즌 만에 데뷔골의 감격을 누렸다. 마스체라노의 득점을 위해 동료들이 패널티킥을 양보한 결과물이었다. 과거 동료들의 패널티킥 양보를 두 번이나 거절했던 그는 '삼고초려'에 결국 패널티킥 지점 앞에 섰다. 자신보다 더 기뻐하는 동료들과 잠시 기쁨을 나눈 마스체라노는 묵묵히 수비 라인에 복귀했다.

바르사의 거대한 방파제가 이제 축구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허나 아직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스체라노는 이번 여름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중국 리그를 택했다. 바르사에서는 전설이 됐지만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그의 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마스체라노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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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체라노 바르셀로나 전설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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