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두 번 모두 이겼던 상대라 익숙했는지 경기 초반부터 정현의 스트로크는 자신감이 넘쳤다. 2017년 메이저 대회 기록만으로도 정현과 미샤 즈베레프의 대결은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미샤 즈베레프가 이 대회 8강에 올랐고, 윔블던 32강, US 오픈 16강까지 올라섰으니 프랑스 오픈 32강과 넥스트 제너레이션(ATP 투어 대회) 우승 기록까지 남긴 정현의 도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싱거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국 남자 테니스의 희망' 정현이 한국 시각으로 16일 오후 3시 43분 멜버른 파크에 있는 19번 코트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미샤 즈베레프(독일, 세계 랭킹 33위)와의 1라운드에서 두 번째 세트 게임 스코어 4-1 상태에서 기권승을 거두고 2라운드로 가뿐히 올라섰다.

고비 때마다 터진 정현의 '날카로운 서브'

 정현, 지난 4일 브리즈번 오픈 당시 장면

정현, 지난 4일 브리즈번 오픈 당시 장면 ⓒ EPA/연합뉴스


첫 세트 세 번째 게임, 즈베레프의 더블 폴트(서브 실수)로 브레이크 기회을 잡은 정현은 뛰어난 집중력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그리고 정현은 짧은 백핸드 크로스로 즈베레프의 포핸드 발리 실수를 이끌어내며 이 경기 처음으로 상대의 서브 게임을 가져와 승기를 잡았다.

이어진 자신의 서브 게임을 가볍게 러브 게임으로 따낸 정현은 내친 김에 즈베레프의 서브 게임을 또 하나 붙잡았다. 즈베레프는 여기서도 서브가 크게 흔들렸고 비교적 평범한 포핸드 스트로크 기회에서 네트를 넘기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렇게 정현의 상승세는 단 17분만에 게임 스코어를 4-1로 만든 것이다.

서브권을 쥐고 첫 세트 여덟 번째 게임을 시작한 정현은 자신감 넘치는 서브를 구석구석 뿌려대며 즈베레프의 발을 꽁꽁 묶어놓았다. 27분 만에 끝난 첫 번째 세트 포인트는 정현의 서브 포인트였다.

두 번째 세트 두 번째 게임에서 정현은 첫 고비를 만났다.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가 즈베레프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의 스트로크가 안정된 흐름을 보인 덕분이었다. 그래도 정현은 포기하지 않고 위력적인 서브 2개로 듀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긴 랠리에서 즈베레프의 스트로크가 오른쪽 옆줄 밖에 떨어졌다. 정현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을 기분 좋게 돌아선 셈이었다.

이어진 세 번째 게임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미샤 즈베레프는 서브 실수로 또 무너졌다.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은 정현은 네트 앞으로 달려드는 즈베레프를 향해 날카로운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을 성공시켰다. 즈베레프의 발리가 정현의 패싱 샷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만남도 정현의 완승

정현은 두 번째 세트 다섯 번째 게임에서도 즈베레프를 압도했다. 미샤 즈베레프는 서브권을 쥐고 있었지만 발로 뛰는 수비가 전혀 이루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현은 15-40으로 두 개의 게임 포인트로 밀렸지만 과감한 네트 앞 발리 포인트와 네트를 넘기지 못한 즈베레프의 스트로크 실수로 듀스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뜨거워진 정현의 라켓은 멈추지 않았다. 상체를 열고 때리는 정현의 포핸드 역 크로스는 미샤 즈베레프가 따라잡기 힘든 속도와 궤적이었다. 두 번째 세트 점수판도 4-1이 되자 고개를 숙이며 걸어들어온 미샤 즈베레프는 체어 엄파이어에게 기권 의사를 밝히고 정현에게 미안하다는 악수를 건넸다. 47분 만에 경기가 끝난 것이다.

이로써 정현은 2015년 휴스턴에서 2-0(6-3, 7-5) 승리, 2017년 파리에서 2-0(6-0, 6-2) 승리 기록에 이어 미샤 즈베레프를 또 한 번 주저앉힌 것이다. 정현은 이제 홈 코트의 코키나키스를 3-1로 물리치고 올라온 메드베데프(러시아, 세계 랭킹 65위)와 2라운드에서 만나게 됐다.

정현이 메드베데프를 이길 경우 더 흥미로운 대진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번까지 정현이 세 번 모두 완승을 거둔 미샤 즈베레프의 친동생 알렉산더 즈베레프와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대결은 한국 테니스 팬들은 물론 세계 남자 프로테니스계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세계 남자테니스의 진정한 유망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현으로서는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아직 벅찬 상대다. 메이저 대회 도전 4년차에 접어든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지난 해 윔블던 16강 성적도 모자라 현재 남자단식 세계 랭킹 4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ATP 투어 우승 트로피를 여섯 번이나 들어올린 진정한 다크 호스라 하겠다. 특히 지난 해 몽펠리에(프랑스)를 비롯하여 뮌헨(독일), 워싱턴(미국) 등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현이 3라운드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순우의 메이저 대회 첫 경험

정현 경기보다 앞서 오후 1시 30분 22번 코트에서 열린 남자단식 1라운드 권순우(한국)와 얀-레나드 스트루프(독일)의 경기는 메이저 대회 경험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 1시간 18분만에 3-0(6-1, 6-2, 6-4)으로 스트루프가 완승을 거뒀다.

권순우의 상대 얀-레나드 스트루프는 메이저 대회 도전 5년차이며 남자단식 경기만 21번째 경험자이기 때문에 이제서야 메이저 대회 첫 발걸음을 뗀 권순우로서는 모든 것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첫 세트에서 겨우 1게임밖에 따내지 못한 권순우는 큰 키의 스트루프가 휘두르는 스트로크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두 게임을 가져왔지만 스트로크 한계를 분명하게 느꼈다.

마지막 세트에 몰린 권순우는 그냥 주저앉을 수 없다는 듯 보다 과감한 스트로크로 스트루프를 당황하게 만들어 네 게임씩이나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랭킹 차이(스트루프 53위, 권순우 170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트의 주인도 스트루프였다. 그나마 세트를 거듭할수록 경기 운영 방법을 효율적으로 깨달아가며 자기 게임으로 만든 숫자를 조금씩 늘렸다는 점이 권순우가 메이저 대회 첫 경험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이라 하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2018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라운드 결과(16일 멜버른 파크)

★ 정현(한국, 랭킹 59위) 1-0[6-2, 4-1 기권] 미샤 즈베레프(독일, 랭킹 33위)

★ 권순우(한국, 랭킹170위) 0-3[1-6, 2-6, 4-6] 얀-레나드 스트루프(독일, 랭킹 53위)
테니스 정현 권순우 호주 오픈 미샤 즈베레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