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 JTBC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날 <냉장고를 출연해>에 모습을 드러낸 혜민스님은 지난해 종영한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이하 <내 방 안내서>)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성직자가 특히 승려가 TV 예능에 자주 나오는 것은 낯설게 느껴진다.

혜민스님의 냉장고가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채식만 하는 스님들의 규율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종단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출가자를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광고를 내어 세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성직자 감소는 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불교와 같은 경우 승려가 되고자 하는 출가자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에도 다른 종교와 같이 성직자라면 지켜야 할 계율이 많지만, 그 중 육식금지는 '먹는 문제'와 연결돼 있는 터라, 쉽지 않은 선택일 것으로 보인다. 옛날처럼 고기가 귀했고 부유한 사람 아니면 자주 고기를 먹지 못했던 분위기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허나 지금처럼 고기가 흔하고 어릴 때부터 고기를 먹던 현대인들은 본인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각성하지 않는 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한국에도 채식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사방천지가 고깃집이요, 대부분의 음식, 하다못해 육수에도 고기가 들어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 

한때, 완전한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고기를 즐겨먹는 가족들에게 얹혀살고, 일을 하면서 회식자리에 참석하다보니 고기를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핑계라는 것이 잘 안다. 주위 사람들 때문에 먹기 싫은 고기를 억지로 먹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기를 먹었던 내 몸이 계속 고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되도록이면 육고기를 덜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딸의 건강을 생각해서 고기 반찬을 해주는 부모님을 향해 반기까지 들지는 않지만, 밖에 나가서는 될 수 있으면 고기는 안 먹으려고 한다. 그래도 가끔 돼지갈비나 치킨은 먹는다.

콩으로 만든 냉동 식품들로 가득했던 혜민 스님의 냉장고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 JTBC


이 모든 고충을 알고 승려가 된 혜민스님 또한 여전히 속세의 음식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서 혜민스님의 그런 솔직한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을 보며 지난해 본 뉴스가 떠올랐다. 지난해 8월 대한불교조계종 백년대계본부가 워크숍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는 다른 현안과 함께 육식이 토론 주제로 올라왔다.

기자가 존경하는 한 스님은 대만에서 성지순례를 하던 중 콩고기 요리에 반해, 자신도 콩고기를 사서 먹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육고기로 오인한 몇몇 신도들의 눈치가 보여 이제는 먹지 않는다고 하셨다. 라볶이를 좋아하는데, 라볶이 안에 들어가는 어묵이 고민이라는 혜민 스님의 냉장고 또한 콩으로 만든 냉동 식품들로 가득했다. 


육식을 하지 못하는 스님이 등장 하니 <냉장고를 부탁해> 셰프들의 요리도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자연주의 요리로 통일된다. 그간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서 매번 느꼈던 건데, 왜 채식주의자의 냉장고는 없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육고기를 먹지 않는 셀레브리티의 냉장고는 종종 소개 되었으나, 혜민스님처럼 해산물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의 냉장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육고기, 해산물 모두 배제되는 요리를 만들어야해서 평소보다 난이도가 높은 요리 대결이었지만, 이날 방송에 참여한 셰프들은 채식 어묵이 들어간 라볶이(정호영), 버섯 크림스프(샘킴), 한식파스타(유현수), 홍시연볶이(이연복) 등 맛과 건강 모두 잡은 요리를 내놓으며 혜민 스님을 감동시켰다.

지난 1일 방영한 <냉장고를 부탁해>는 시청률 7.6%(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을 기록하며, 2015년 9월 7일 이후 처음으로 7%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날 방송의 시청률이 대폭 상승한 것엔 '국민멘토'라 불리는 혜민스님의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셰프들이 만든 채식요리에 대한 관심도 한 몫 한 것 같다. 동물보호,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지만, 한국은 아직도 채식을 하기 어려운 나라다.

채식 전문 식당을 찾기도 어렵고, 고기 요리를 먹지 않더라도 찌개류 육수에도 기본적으로 고기가 들어간다. 대만 뿐만 아니라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요리가 각광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도 최근에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되고 있고, 베지테리언(완전 채식) 식당도 늘어나는 만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혜민스님 편 시청률 상승은 이와 같은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지난 1일 방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혜민스님 ⓒ JTBC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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