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국가대표' 김희진(185cm·IBK)-양효진(190cm·현대건설) 선수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희진(185cm·IBK)-양효진(190cm·현대건설) 선수 ⓒ 박진철


물 밑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끓고 있는 프로배구 이슈가 있다. V리그 외국인 선수를 현행 팀당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자는 프로 구단들의 움직임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8일 각 구단 단장들이 참석한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내년 시즌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부터 2명 뽑는 안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구단의 강한 반대와 찬성 구단의 주장이 오가며 격론을 벌였다. 결국 다음 이사회에서 재논의키로 하고 결정을 보류했다.

KOVO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사회에서 결정을 보류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외국인 선수 2명 보유안을 내년 2018~2019시즌에 시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2월 초 이사회에서 통과되더라도 2019~2020시즌부터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구단의 핵심 관계자는 "2명 보유안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본다", "민감한 사안이라 만장일치 가깝게 의견이 모여야 뒤탈이 없는데, 일부 구단들이 강력 반대하고 있어 다음 이사회에서도 통과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2명 보유안에 찬성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다.

'유소년 투자' 외면한 구단들... 2년도 안돼 '트라이아웃 취지' 배반

기자는 찬성 구단과 반대 구단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들어봤다.

찬성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외국인 선수가 부상 등으로 교체하게 될 경우 해당 구단의 경기력과 성적이 크게 떨어지면서 전력 불균형이 발생하고, 리그 흥행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가 어렵고, 높은 이적료와 해외 출장 등으로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반대 이유도 적지 않다. 첫째는 트라이아웃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지난 2015~2016시즌에 최초로 도입된 트라이아웃은 국내 선수의 비중과 경기력을 높이고,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을 줄여서 유소년 선수 발굴·육성에 투자하자는 게 핵심 이유였다.

좋은 명분 때문에 배구계는 물론 팬들도 세계 정상급 선수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큰 반발 없이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프로 구단들이 당초 약속했던 유소년 투자는 외면하면서, 시행한 지 2년도 안 된 제도를 정반대 방향의 제도로 바꾼다는 건 명분과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외국인 선수 비중이 더 커지고 국내 선수의 입지가 축소되면서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이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유소년이나 부모들이 배구 선수 선택을 외면할 수 있다는 점, 수준이 떨어지는 외국인 선수 숫자만 확대하는 건 비용만 늘고 흥행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도 반대 이유이다.

외국인 확대하면 전력 평준화? '어불성설'

팀별 외국인 선수를 2명으로 늘리면, 찬성 구단들이 주장하고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날까. 현실은 부정적이다.

우선 외국인 선수를 2명으로 늘린다고 해서 모든 팀이 수준 높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전력 평준화가 이뤄질 거라는 가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V리그에서 특정 팀의 경기력과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는 외국인 선수의 공백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국내 선수 주 공격수가 부상 등으로 장기간 출장하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각 팀의 주전 선수들 실력 차이, 팀 내 불협화음, 감독의 전술과 능력 부족, 구단 프런트의 지원과 투자 부족 등의 이유로도 경기력과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봉인 터키 여자배구 리그는 12개 팀이 있고, 중국 리그는 14개 팀이 있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도 V리그보다 많다. 그러나 이들 리그도 시즌 중반을 지나면 상위권과 하위권 팀 간의 경기력과 성적 차이가 매우 크다. 외국인 선수만 확대한다고 전력 불균형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2명 보유로 전환하면서 외국인 선수의 연봉을 삭감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도 세계적 수준의 외국인 선수들은 낮은 연봉과 혹사 때문에 V리그 트라이아웃 신청을 했다가 초청 대상에 올랐음에도 한국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외국인 2명' 프로농구... 국내 스타·관중 감소, 전력 불균형 여전

국내 프로 종목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외국인 선수 2명 보유를 시행하고 있는 프로농구가 대표적이다.

전력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관중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일부 매체는 올 시즌 평균관중이 '역대 최저'를 기록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외국인 선수 확대가 리그 흥행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2명 보유에 그치지 않고 '2명 동시 출전'의 경우, 전력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한 명이라도 부상 등으로 이탈하면, 상대 팀은 외국인 선수가 2명이 뛰는데 해당 팀은 1명만 뛰기 때문이다. 둘 중 한 명의 실력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여자 프로농구도 그 점을 잘 보여주었다. 현재 외국인 선수를 '2명 보유 1명 출전에 3쿼터만 2명 출전'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팀들의 경우 외국인 선수 1명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자 연패에 빠지는 등 경기력과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또한 외국인 선수 비중과 의존도가 더욱 커지면서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급 국내 선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경기 출전 선수 자체가 줄어들면서 기량 차가 더 벌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타난다.

프로농구도 한때는 '2명 보유-1명 출전' 방식이었다. 그러나 결국 2명 출전으로 바뀌었다. 비싼 돈을 주고 영입한 외국인 선수를 교체 멤버로만 잠깐씩 출전시키는 걸 좋아할 구단은 없다. 배구계와 배구팬들이 외국인 2명 보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국제대회 중요성' 입증... 여자배구 시청률·관중 '동반 급상승'

 '인산인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인기... 2017 월드그랑프리 대회 한국-폴란드전(7.23)이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 만원관중을 초과한 5000명이 입장했다.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관중도 많았다.

'인산인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인기... 2017 월드그랑프리 대회 한국-폴란드전(7.23)이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 만원관중을 초과한 5000명이 입장했다.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관중도 많았다. ⓒ 박진철


외국인 선수 확대는 이처럼 큰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팀당 외국인 2명 보유는 기본적으로 국내 선수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규정이 '2명 보유-1명 출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커지는 데 반해, 국내 스타가 줄어들면서 프로배구 자체에 대한 관심도를 점점 떨어뜨릴 수 있다. 이는 흥행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 피해는 결국 프로 구단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간다.

현재 구단들이 프로배구단 운영으로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은 광고와 홍보 부분이다. 금전적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V리그의 TV 시청률과 관중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게 구단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외국인 선수 1명 보유와 트라이아웃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프로 스포츠의 흥행 지표인 TV 시청률과 관중수에서 올 시즌 여자배구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자배구가 평일에는 취약 시간대인 오후 5시에 경기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가 크다.

여자배구의 1~3라운드까지 전반기 경기당 케이블TV 평균 시청률은 0.78%로 집계됐다. 지난 시즌 전반기(0.66%)보다 크게 상승한 것이다. 또한 V리그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던 2014~2015시즌(0.77%)보다도 높다. 케이블TV '대박' 기준인 1%를 넘긴 경우도 적지 않다.

남자배구와 비교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같은 날 치러진 경기에서 여자배구 시청률이 남자배구를 추월한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관중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올 시즌부터 여자배구가 남자배구와 경기장을 분리해서 단독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KOVO 기록을 토대로 개막 이후부터 지난 1일까지 총 49경기의 관중수를 집계한 결과, 여자배구는 지난 시즌 같은 기간보다 26.2%나 급증했다. 그러면서 경기당 평균관중이 2003명을 돌파했다. 지난 시즌 같은 기간 동안 평균관중은 1587명이었다.

특히 한국도로공사는 올 시즌 1위로 승승장구하면서 관중수도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평균관중이 3163명으로 지난 시즌 같은 기간 2290명보다 38% 증가했다. 이는 남녀 프로배구를 통틀어 현대캐피탈(3582명)에 이어 삼성화재(3163명)와 공동 2위에 해당한다.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관중 1위(5560명)와 2위(5467명)도 한국도로공사가 달성한 것이다.

IBK기업은행도 평균관중이 2287명으로 지난 시즌 1279명보다 78% 폭증했다. 새해 첫날인 1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는 4527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같은 날 열린 남녀 프로배구, 남녀 프로농구를 통틀어 최다 관중수였다. 최근 여자배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GS칼텍스도 평균관중이 1920명으로 지난 시즌보다 크게 증가했다. 한국도로공사, IBK기업은행, GS칼텍스는 이전부터 남자배구와 따로 단독 홈구장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자배구도 구단 프런트의 의지와 투자에 따라 독자적 인기몰이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준 것이다.

한편, 남자배구는 전반기 시청률이 0.88%로 집계됐다. 지난 시즌 전반기(0.75%)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관중수는 지난 시즌과 비슷한 수준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여자배구의 인기가 급상승한 핵심 원인은 '김연경 효과'가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올해 국가대표팀의 국제대회 선전과 역대급 흥행, 그에 따른 국내 선수들의 대중적 관심도와 인지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FA·트레이드 등 선수 대이동을 통해 각 팀별로 스타 선수가 고르게 분산된 것도 한몫하고 있다.

KOVO 홍보팀 관계자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그런 부분들을 잘 알고 있고, 100% 동의한다"고 말할 정도다.

국내 선수 고사시키는 '외국인 잔치'... 배구팬 멀어진다

반면, 트라이아웃 도입 이후 외국인 선수가 공격 득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지만, 수준이나 관심도는 자유계약 시절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와 비교해서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자유계약 시절에는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국내에서 뛰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의 활약상이 V리그 흥행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트라이아웃 이후에는 시청률과 관중 증가에 국내 선수의 기여도가 외국인 선수보다 높은 상황이다. 특히 여자배구가 그렇다.

따라서 국내 선수의 경기력 비중을 높이고, 신인 스타를 키우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 확대는 국내 선수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정반대 방향이다. 고교·대학 배구 등 배구계뿐만 아니라 배구팬들까지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프로배구의 주인인 배구팬들이 원하지 않는다. 과연 배구팬들이 외국인 선수가 경기 전체를 좌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V리그를 관전하고 TV로 시청할까. 구단이나 KOVO 관계자도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편에 외국인 선수 확대와 한국 배구 국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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