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호골' 터뜨리는 손흥민  독일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열린 도르트문트와의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H조 5차전에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오른쪽)이 골을 넣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1-1로 맞선 후반 31분 역전 결승 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2호 골이자 시즌 4호 골이다.

▲ '시즌 4호골' 터뜨리는 손흥민 지난 11월 22일 독일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열린 도르트문트와의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H조 5차전에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오른쪽)이 골을 넣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보다 더 완벽한 기회는 없었다. 손흥민의 9호골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볼은 허공을 갈랐다. 손흥민은 머리를 감쌌고,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 역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토트넘 홋스퍼는 완승의 기쁨을 맛봤지만, 손흥민은 마냥 웃을 수 없었던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었을까.

토트넘이 24일 오전 2시 30분(이하 한국시각) 영국 번리에 위치한 터프 무어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19라운드 번리와 경기에서 3-0으로 완승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승점 34점을 기록하며 번리와 아스널을 밀어내고 7위에서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손흥민은 이날도 선발로 나섰다.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와 함께 2선에 위치하면서, 스트라이커로 나선 해리 케인과 공격을 주도했다.

손흥민은 가벼운 몸놀림을 자랑했다. 지난 17일 맨체스터 시티 원정 완패로 상승세가 꺾일 것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전반 5분, 손흥민은 에릭센이 왼쪽 측면으로 넘겨준 볼을 폭발적인 스피드를 뽐내며 잡아냈다.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 슈팅으로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좌측면 뒷공간을 파고든 벤 데이비스에게 볼을 넘겨줬다. 이후 데이비스의 크로스가 아쉬웠지만, 손흥민의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확인한 장면이었다.

토트넘의 선제골이 터졌다. 에릭센의 패스를 박스 안쪽에 있던 알리가 잡았다. 알리는 드리블을 시도했고, 상대 반칙과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주포' 케인이 키커로 나섰고, 닉 포프 골키퍼가 손 쓸 수 없는 골문 구석으로 슈팅이 꽂혔다. 올 시즌 EPL 18경기에서 짠물 수비(12실점)를 자랑하던 번리 골문을 일찌감치 연 순간이었다.

전반 7분, 손흥민이 아크서클 부근에서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포프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지만, 손흥민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전반 14분, 손흥민이 헛다리 개인기로 수비수를 따돌린 뒤 다시 한 번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이번에는 수비에 막혔지만, 거침없는 모습이 시즌 9호골을 기대케 했다.

들쑥날쑥한 모습 보이던 알리, 컨디션 올라와

토트넘에서 손흥민만 돋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케인과 에릭센의 몸도 가벼웠다. 특히, 올 시즌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이던 알리의 컨디션이 올라왔다. 전반 16분, 케인과 알리가 아크서클 부근에서 좋은 연계 플레이를 통해 번리 수비를 무너뜨렸다. 케인의 마무리 슈팅이 골문을 살짝 벗어났지만, 훌륭한 공격 장면이었다.

전반 21분, 토트넘에 완벽한 추가골 기회가 찾아왔다. 번리의 코너킥을 손흥민이 걷어냈고, 재빠른 역습이 시작됐다. 알리가 전방으로 내달렸고, 정비되지 않은 번리 수비진 사이로 절묘한 침투 패스를 찔렀다. 무사 시소코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이 볼을 잡았고, 포프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했다. 하지만 시소코의 슈팅은 포프를 넘어서지 못했다. 첫 슈팅 이후 재빨리 두 번째 슈팅까지 시도했지만, 포프의 긴 다리에 막혔다. 

후반전도 토트넘의 분위기였다. 토트넘은 경기를 주도했고, 끊임없이 추가골을 노렸다. 번리가 전반전보다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주도권을 빼앗지는 못했다.

후반 1분, 서지 오리에가 우측면을 파고든 에릭센에게 볼을 전달했다. 에릭센은 곧바로 크로스를 올렸고, 빠르게 골문으로 달려든 케인의 슈팅으로 이어졌다. 골문을 살짝 벗어났지만, 추가골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2분 뒤, 손흥민의 발에서 결정적인 기회가 만들어졌다. 포프 골키퍼의 킥 실수로 토트넘의 빠른 공격이 시작됐고, 손흥민이 볼을 잡았다. 아크서클 부근으로 빠르게 드리블하면서 수비진의 시선을 끌었다. 손흥민은 틈을 놓치지 않았고, 문전 앞으로 달려든 에릭센에게 패스를 찔렀다. 그런데 포프 골키퍼와 마주한 에릭센은 슈팅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던 손흥민에게 이날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 후반 10분, 배후를 파고든 오리에가 수비수 2명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바로 옆에서 손흥민이 달려들었다. 오리에는 곧바로 볼을 내줬다. 손흥민의 앞으로 포프 골키퍼가 튀어나왔지만, 살짝 발만 대도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수비의 방해조차 없었다. 그런데 손흥민의 발을 떠난 볼은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후반 13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이번에는 에릭센이었다. 토트넘이 전방 압박에 성공했고, 케인이 문전 앞으로 내달린 에릭센에게 볼을 내줬다. 수비의 방해가 없었던 만큼 추가 득점이 기대됐다. 하지만, 케인의 패스가 길어지면서, 슈팅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손흥민과 에릭센의 몫까지 챙긴 케인

답답했을까. 케인이 나섰다. 후반 23분, 시소코가 중앙선 부근에서 볼을 가로챘다. 곧바로 침투 패스를 찔렀고, 뒷공간을 허문 케인에게 볼이 연결됐다. 케인은 포프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득점으로 마무리했다. 1골 차 리드에 불안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얼굴에 안도감이 드러났다.

케인은 멀티골에 만족하지 않았다. 손흥민과 에릭센의 몫까지 챙겼다. 후반 33분, 토트넘이 전방 압박을 통해 볼을 빼앗았고, 데이비스와 알리, 케인의 절묘한 연계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케인이 박스 좌측 부근에서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슈팅을 시도했고, 골망이 출렁였다. 해트트릭이었고,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EPL 득점 공동 선두(15골)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토트넘의 3-0 승리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알고 보면 대단한 성과다. 올 시즌 번리는 홈에서 치러진 리그 9경기에서 3골밖에 내주지 않았었다. 전체 실점도 적었지만, 홈에서는 더 막강했다.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앞세워 높은 홈 승률(5승 2무 2패)을 자랑할 수 있었다. 케인은 그런 번리 골문을 세 차례나 열었다.

알리의 몸 상태가 올라온 것도 고무적이다. 알리는 경기 시작 5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케인, 에릭센, 손흥민 등과 호흡도 좋았고, 폭발력을 보이면서 역습을 주도했다. 순간적인 문전 침투에 이은 슈팅, 남다른 패싱력을 자랑하며 도움도 올렸다.

손흥민의 활약상도 나쁘지는 않았다. 손흥민은 드리블과 패싱력이 물올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좌우 측면과 중앙 등 2선 전 지역을 활발히 누볐고, 슈팅도 3차례나 시도했다. 다만, 득점이나 다름없던 기회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자책할 필요는 없다. 토트넘은 목표였던 승점 3점을 챙겼고, 손흥민은 힘을 보탰다. 오는 26일에는 사우샘프턴과 맞붙는다. 하루를 쉬고, 또다시 경기에 나서는 강행군이다. 경쾌한 모습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면 이날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다. 기왕이면 이날 실수가 사우샘프턴전 멀티골 이상을 기록하는 계기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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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VS번리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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