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 반칙(왼쪽)과 주심의 캐치볼 선언 수신호... 지난 19일 한국전력-KB손해보험 중계 방송

캐치볼 반칙(왼쪽)과 주심의 캐치볼 선언 수신호... 지난 19일 한국전력-KB손해보험 중계 방송 ⓒ SBS Sports 화면 캡처


V리그 역사상 최악의 판정 사태에 대한 징계 결정이 나왔다.

프로배구 V리그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아래 KOVO)은 21일 오전 연맹 대회의실에서 지난 19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KB손해보험 경기에서 일어난 비디오 판독 및 심판 판정 오류에 대해 긴급 상벌위원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아래와 같이 징계 결과를 공개했다.

KOVO 상벌위원회는 경기 중 비디오 판독 규칙 적용 잘못과 운영 미숙으로 발생한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해당 경기의 주심(진병운)과 부심(이광훈)에게 '무기한 출장정지'를, 경기감독관(어창선)과 심판감독관(유명현)에게는 '무기한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했다.

또한, 추가적으로 경기운영위원장(신춘삼)과 심판위원장(주동욱)에게 관리의 책임을 물어 엄중 '서면 경고' 조치를 했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기 및 심판 운영 선진화 작업을 앞당겨 조속한 시일 내에 시행키로 했다.

KOVO는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도 표명했다. "상벌위원회 결과에 앞서 경기운영 미숙으로 인하여 실망감을 안겨드리게 된 점에 대하여 팬 여러분과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언제든 풀어줄 수 있는 '무기한'... '복귀 시점' 따라 징계 수위 판단

 코트에서 발생한 심각한 오심 논란에 휩싸인 프로배구 관계자들이 사상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은 지난 19일 열린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의 문제의 경기 모습.

코트에서 발생한 심각한 오심 논란에 휩싸인 프로배구 관계자들이 사상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은 지난 14일 열린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 경기 모습 ⓒ 연합뉴스


​조영호 KOVO 상벌위원장은 이날 언론과 인터뷰에서 "KOVO 역사상 최고의 징계를 내렸다"며 "무기한 정지 징계는 적어도 이번 시즌까지는 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징계인지 여부는 '무기한'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애매할 수밖에 없다. '무기한'의 징계 기간은 한 달 뒤도 될 수 있고, 이번 시즌까지도 될 수 있고, 10년 뒤도 될 수 있다. KOVO가 언제든지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완화하거나 아예 복귀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징계 당사자들이 다음 시즌에 V리그에 복귀한다면, 이를 중징계로 받아들일 배구팬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중징계인지, 솜방망이 처벌인지는 징계 당사자들의 복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징계가 이번 사태의 근원적인 해결책도 아니란 점이다. 이번 징계로 초대형 판정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9일 한국전력-KB손해보험 경기의 판정 논란은 '오심'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심은 심판진의 실수로 잘못 본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나온 판정들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명백한 상황들을 연속해서, 그것도 매우 중요한 순간마다 규정과 정반대로 적용한 '초대형 사태' 또는 '판정 참사'라고 규정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주심과 부심, 경기감독관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중재에 나섰던 경기위원회 위원장까지 '집단적 오판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능과 무지'에서 비롯된 '인재'다.

'오심'도 아니다... 무능·무지에 의한 '인재-참사'

이번 사태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심판감독관이다. 심판감독관만이라도 자기 본분을 다했다면, 그런 최악의 사태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V리그의 모든 경기는 경기감독관석 옆에 심판감독관이 배석한다. KOVO 규정에 따르면, 심판감독관의 핵심 임무는 경기 중 심판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 요청시 경기감독관·부심과 함께 비디오 판독·판정을 통하여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처럼 판정 시비가 나올 때 그 상황에 대한 규정 적용과 심판 판정의 오류 등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경기감독관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심판감독관은 V리그 규정뿐만 아니라 모든 배구 규정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상황 판단력을 갖춘 사람으로 배정돼야 한다. 심판감독관과 심판진은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규정상 V리그 심판감독관은 'KOVO 심판위원회 소속 심판위원'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결국 이번 같은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심판위원회 위원장부터 심판위원들까지 과연 그 자리에 걸맞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공정하게 선발했는지부터 되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심판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검증된 사람은 아니다.

때문에 KOVO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나, 외부 인사의 입김에 의해 심판위원회 인사가 결정되지 않도록 제도를 혁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회의적이다. 지난 시즌 한국전력-대한항공 경기에서 발생한 유니폼 규정 잘못 적용 사태를 겪고도 또다시 최악의 집단 오판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규정 적용 잘못 '재심 신청' 제도, 왜 없앴나?

타점 높은 공격 지난 2013년 3월 17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배구 2012-2013 플레이오프 1차전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경기. 현대 가스파리니가 강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 타점 높은 공격 지난 2013년 3월 17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배구 2012-2013 플레이오프 1차전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경기. 현대 가스파리니가 강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한 가지 KOVO의 패착은 지난 시즌까지 존재했던 '재심 신청' 제도를 없애버린 것이다.

KOVO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재심 신청 제도를 삭제해버렸다. 이 또한 이번 사태를 초대형 사건으로 키운 이유 중의 하나다.

재심 신청은 '심판의 판정이 규정·규칙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때, 감독이 현장에서 재심을 요청해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번 사태처럼 비디오 판독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경우가 해당될 수 있다.

이날 경기에서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이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번 시즌부터 그런 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재심 신청 대상에는 ​인-아웃, 네트 터치 등 사실 판정에 대한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기 중에 실제로 재심을 신청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KOVO가 '경기 지연'을 이유로 재심 신청 제도를 없앴지만, 결국 초대형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제거한 것이나 다름없다.

KOVO가 이날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밝힌 경기 및 심판 운영 선진화 작업도 말만 앞세울 일이 아니다.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일의 총책임자 자리를 맡기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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