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용규(한화 이글스)가 'KBO 역사상 최대 연봉 삭감'이라는 희대의 진기록에 주인공이 됐다. 한화는 20일 이용규와 4억 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받은 연봉 9억 원에서 약 56%에 해당하는 무려 5억 원이나 대폭 삭감된 수치다.

종전 기록은 2011년 당시 LG 소속이던 박명환의 4억5천만 원이었다. 당시 잦은 부상으로 하락세였던 박명환은 당시 전시즌 연봉 5억 원에서 무려 10분의 1로 깎인 5천만 원에 도장을 찍은바 있다. 최다 삭감률(90%)로는 여전히 박명환의 기록이 1위다.

이용규는 자타공인 KBO 정상급 톱타자다. LG, KIA, 한화를 거치며 KBO에서 14시즌간 1586안타, 316도루를 기록했으며 통산 타율이 .303, 출루율은 .386에 이르는 최강의 리드오프였다. 2013년 FA 자격을 얻었던 이용규는 당시 4년 총액 67억이라는 특급대우를 받으며 친정팀 기아를 떠나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바 있다.

하지만 불과 4년이 지난 지금 이용규의 상황은 '격세지감'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용규 스스로 권리신청을 1년 미룬 데 이어 역대급 연봉 삭감까지 감수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잦은 부상에 발목 잡힌 이용규

이용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잦은 부상이었다. 데뷔 이후 한번도 풀타임 출장이 없고 최다출장경기가 2010년의 129경기일 만큼 이용규의 '약한 내구성'은 이미 한화 입단 이전부터 고질적인 약점으로 거론된 바 있다. 미 기아 시절 말기에 어깨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그로 인하여 FA로 한화 이적 후에도 초반부터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3할대 타율과 4할대 출루율을 기록하며 경기에 뛰는 동안은 자기 몫을 다했지만 해마다 크고작은 부상으로 20~30경기씩 결장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실 여기에는 한화 감독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김응용이나 김성근 전 감독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이용규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부상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기에 출전시키거나 과도한 훈련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7년은 이용규의 야구인생에서 '최악의 한해'였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출전으로 일찍 페이스를 끌어올렸으나 대표팀은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고척 참사'의 수모를 당했다. 이용규는 WBC 후유증으로 고질적인 왼쪽 팔꿈치 통증이 악화하며 개막 엔트리부터 결장해야 했다.

  2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 5회초 2사 1루에서 한국 이용규가 1타점 2루타를 친 후 달리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 5회초 2사 1루에서 한국 이용규가 1타점 2루타를 친 후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간신히 1군에 복귀한 5월 초에는 SK 와이번스와 경기 중 오른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용규는 올시즌 무려 84일이나 1군 엔트리에서 빠졌고, 출장경기는 고작 57경기에 불과했다. 시즌 성적도 타율 0.263, 출루율 0.332에 그치며 데뷔 첫해인 2004년 이후 커리어 로우에 그쳤다. 소속팀 한화도 올시즌 10년연속 가을야구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이용규에게는 더욱 마음의 짐으로 남은 한해가 됐다.

의외로 이번 FA 취득 보류와 연봉 삭감은 이용규의 자발적인 의사가 상당히 반영된 결정으로 알려졌다. 올시즌의 성적이나 KBO 이적시장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설사 FA를 신청했더라도 불리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용규 정도되는 스타급 선수가 이렇게까지 몸을 낮추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프로에게 FA는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겨진다. 몸값을 선수 개인의 '자존심'과 연결시켜 협상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용규는 당장의 욕심이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일단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길을 택했다.

이용규의 '절치부심', 내년엔 '전화위복' 될까

이용규의 '육참골단(肉斬骨斷)' 전략은 당장 개인으로서는 큰 손해를 감수한 것이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름의 명분과 실리도 챙겼다. 올해 FA시장에서 일부 특급 대어들을 제외하면 준척급이나 베테랑 선수들은 대부분 협상에 고전하고 있다. 한화만 해도 잔류를 선택한 이용규를 제외하면 내부 FA인 정근우, 안영명, 박정진 등과 아직까지 계약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용규는 잦은 부상경력과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올해 FA 대박을 터뜨린 김현수(LG), 민병헌-손아섭(이상 롯데)같은 최대어 외야수들만큼의 계약은 어차피 기대하기 어려웠다.굳이 실익이 떨어지는 올해 FA에 무리하게 집착하거나 구단과 연봉 협상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기싸움을 벌이는 대신 일찌감치 거취를 결정하며 이용규라는 선수가 '돈보다 야구'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자신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성적에 합당한 연봉을 받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장면은, 최근 KBO 시장의 '오버페이'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선수들과 대조를 이룬다.

실리적으로 계산해도 만일 이용규가 다음 시즌 좋은 성적을 올려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당장 FA 대박은 내년에라도 다시 충분히 가능하다. 직전 연봉을 기준으로 보상금까지 줄일 수 있게 된 만큼 향후 타 구단으로 이적하더라도 부담을 줄이고 협상의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한화 구단으로서도 어차피 이용규는 다음 시즌 역시 테이블세터와 외야진에서 없어서 안될 필수전력이었다. 여기에 올시즌 한발 먼저 '통큰 희생'까지 감수하며 더 이상 FA에 큰 돈을 들이기 어려웠던 구단의 부담을 알아서 줄여줬다는 점은 내심 반가울 수밖에 없다. 설사 다음 시즌 다시 이용규와 FA 협상대에 앉더라도 구단이 어느 정도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이용규가 상당히 전략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용규는 아직도 30대 초반에 불과하다. 잔부상만 아니라면 야구선수로서 아직 한창 전성기를 맞이할 나이다. '건강한 이용규'는 여전히 공수주에서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자원이다. 당장 다음 시즌 절치부심한 이용규가 화려하게 부활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올겨울 이용규의 선택이 내년 이맘때는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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