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인터뷰

<신과 함께>와 < 1987 >에 출연한 배우 하정우 ⓒ 롯데 엔터테인먼트


[기사수정 : 21일 오후 3시]

배우 하정우 입장에선 이번 연말이 묘한 인연으로 엮여 있다. 우선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용화 감독과 하정우는 <국가대표>(2009)에 이어 다시 만나게 됐다. <국가대표>의 성공 이후 그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 고>로 특수효과 영화에 도전장을 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김용화 감독에 대해 하정우는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

그 뿌리로 보나 기획 의도로 보나 <신과 함께>는 <미스터 고>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 더해 하정우의 김용화 감독에 대한 각별함이었을까. 참패 직후 그는 "다음 작품에서 뭘 하시든 절 써 달라"는 나름의 '백지수표'를 썼고, 감독은 그 기회를 그대로 이용했다. <신과 함께>의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출연하게 된 것. 그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자홍(차태현)의 변론을 맡아 무사히 저승의 재판을 통과하게 돕는 차사 강림 역을 맡았다.

"<미스터 고> 참패 후 티는 안 내셨지만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덱스터 스튜디오(김용화 감독이 세운 영화 특수효과 전문 회사) 직원을 감원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 있었고, 반대로 난 <더 테러 라이브>가 잘 돼서 신나 있던 차였다. 학교 선배고 친하니까 위로라도 나누려 만났는데 나름 잘 지내시더라. 그러면서도 힘들어 하는 게 보였다. <미스터 고2>나 고릴라만 아니면 할 테니 절 써주시라고 말했다. 

그 이후 소식을 들으니 <신과 함께>를 한다더라. 그때까진 웹툰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봤지. 어? 이걸 또 왜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웃음). 농담이고 왜 최고의 웹툰인지 알겠더라. 드라마가 좋고 한국인 정서와 어울려 보였다."

 하정우 인터뷰

하정우 인터뷰 ⓒ 롯데 엔터테인먼트


 하정우 인터뷰

ⓒ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위한 변론

이 지점에서 하정우는 <신과 함께>에 대한 비판, 즉 강한 신파와 원작과 다소 다른 인물 설정 등에 대해 상당 시간을 할애해 답했다. 신파성은 김용화 감독의 전작을 보면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등에서 그는 특유의 가족주의와 신파적 이야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감독님이 원체 그런 삶을 사셨다. 어려운 형편에 겨우 영화를 하기 시작한 거니 감정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자라온 환경 자체가 신파다. 난 충분히 이해한다. 이 영화에서 신파를 빼면 과연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신파의 범위와 양을 측정해서 조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일이지. 연출을 해본 입장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허삼관> 때도 캐릭터의 감정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고민했었거든.

그리고 세 차사 중 내가 맡은 강림은 이야기의 문을 여는 역할이다. 감정 부분은 자홍, 수홍(김동욱)에 몰려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게 2부까지 한꺼번에 찍은 작품이지 않나. 1부에서 드라마가 살아야 관객들이 2부도 보시지 않을까? 물론 (저승 재판을 표현하기 위한) 특수효과 CG 등을 걱정 안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고>(고릴라가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해 각종 위기를 선수들과 헤쳐 나간다는 내용)가 <신과 함께>로 넘어오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는 의미도 있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벌>

영화 <신과 함께-죄와벌>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은 채 캐스팅권을 줬다고 하지만 하정우는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한 것에 대해 어떤 후회도 없어 보였다. 그는 "요즘 많이 나오는 시대물, 무거운 드라마 등 안정성이 보장된 작품으로만 이어가는 게 맞나 싶었다"며 "이런 판타지 장르에 대한 도전 자체가 흥미롭고 한계를 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산행>과 <곡성> 등 지난해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판타지 물의 예를 들었다.

"누아르에 나올 것 같은 이 얼굴이 판타지에 나오니 적응하시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웃음). 근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형님도 <아이언맨>을 정색하며 연기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판타지 장르와 거리감을 좁힐 수만 있다면 <신과 함께>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배우들도 처음엔 그린 매트(특수효과를 입히기 위한 녹색 바닥재)에서 연기하는 게 얼마나 민망했는데. 그 민망함은 곧 우리가 새로운 영화적 환경에 있다는 증거잖나. 시간이 지나면서 최대한 연기에 다들 집중해갔다." 

딜레마

좋은 가치관이지만 여기서 앞서 말한 두 번째 묘한 인연이 걸린다. 바로 27일 개봉할 < 1987 >에도 그가 출연했기 때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영화화한 해당 작품에서 그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나름 뚝심을 지키는 최 검사 역을 소화했다.

"저도 참, 어설프게 끼어서 의도치 않게 이성적이 돼 버렸다. 역사적 사실과 아픈 과거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상업영화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 1987 >은 상황이 잘 구성됐다. 솔직히, <신과 함께>를 홍보하고 있기도 하고 < 1987 >에 워낙 좋은 배우들이 나오셔서 제가 숟가락 얻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또 (제가 맡은 최검사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며 현재도 살아계시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가 좀 어렵다.

인터뷰 하기 참 어려운 작품이다. VIP 시사회 때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가족과 기념사업단 분들이 다 오셨다. 평소 같았으면 무대인사에서 '영화 재밌게 보시구요~' 이럴 텐데 그 말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 1987 > 이야기만 나오면 말 수가 줄어든다. 말문이 막힌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이 유족 분들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말 한 마디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이에 더해 그는 오랜 기간 제작을 준비 중이던 영화 <앙드레 김>의 무기한 연기사실을 언급했다. 사실상 제작 중단이다. 제작자이자 감독, 배우로서 겪는 딜레마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거절할 때가 가장 힘들지. 웬만하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참여하려고 했다. 최근까지도. 근데 <앙드레김>을 5년 간 준비하다가 중단하게 되니 가슴이 당연히 아프다. 준비하던 팀들이 다 흩어져 제 갈 길을 걷게 됐는데 '아, 1년이라도 더 일찍 결정을 말씀드렸어야 했나', '또 다른 작가를 섭외해 시나리오를 더 고쳐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여의치 않아 일단 제작이 중단됐다. 

전 10년 넘게 연기를 계속하고 있고, 그 사이 2작품을 연출했으며 3작품을 제작했다. 제가 뭘 노리거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것 같다. 여전히 전 영화인이 되고 싶은 배우다."

 하정우 인터뷰

ⓒ 롯데 엔터테인먼트


 하정우 인터뷰

ⓒ 롯데 엔터테인먼트


이렇게 폭 넓게 달릴 수 있는 비결로 그는 '호기심'을 꼽았다. "사람과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의 절 있게 한 동력 중 하나"라고 그가 설명했다. <신과 함께>와 < 1987 >로 그는 중요한 화두를 얻었다.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그는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다. 미학적으로 아무리 잘생겨도 매력이 없는 사람과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건강한 삶을 살면 조금이나마 그런 매력과 좋은 기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정우 신과 함께 1987 주지훈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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