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스토브리그가 어느 때보다 우울하다.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기약해도 모자랄 시점에 구단, 선수, 팬들이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받는 혼돈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LG는 올해 리그 6위에 머무르며 가을야구 입성에 실패했다. 팀 자책점 1위를 기록한 마운드의 힘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타격과 젊은 야수진의 더딘 성장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의 상승세에 FA 차우찬까지 영입하며 기대감에 부풀었던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LG 구단은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삼성의 통합 4연패를 이끈 류중일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그런데 재계약이 무산된 양상문 전 감독이 돌연 단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묘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11월 2차 드래프트에서는 정성훈을 비롯한 베테랑급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대거 방출되거나 이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팬들의 여론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후유증은 깊어졌다.

 류중일 LG 트윈스 신임 감독이 지난 10월 1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양상문 단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류중일 LG 트윈스 신임 감독이 지난 10월 1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양상문 단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LG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분명했다. 양상문 감독 시절부터 이어오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리빌딩과 세대교체 노선을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것. 팀 사정상 포지션이 겹치는 베테랑 선수들의 정리는 불가피했고 정성훈에게는 이미 2차 드래프트 이전에 통보를 했다는 입장이다. LG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지는 이해해도 방식이 그리 좋지 못했다. 프랜차이즈스타는 아니지만 지난 9년간 LG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많은 공로를 세웠고 KBO의 레전드로도 꼽힐 만한 정성훈은 하루아침에 팀으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다. 정성훈은 아직도 새로운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LG에서는 '일단 나이가 들고 쓸모가 없어지면 베테랑에 대한 예우고 뭐고 설 자리가 없다'는 선례를 뚜렷이 남긴 셈이었다. 더구나 이미 이병규-김재현-이상훈 등 과거에 팀으로부터 버림받거나 강제 은퇴로 내몰린 LG 레전드들의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LG 팬들에게는 오랜 '트라우마'를 제대로 건드려버린 사건이었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리빌딩'에 대한 피로감도 한몫을 담당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가 아직 베테랑들을 확실히 대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 대상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정작 LG는 FA 외 외국인 선수시장에서 떠나간 선수들의 빈 자리를 메울 만한 전력보강 작업도 지지부진하며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팬들도 구단의 방침에 반발하며 행동에 나섰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하여 LG 구단의 행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쏟아져 나왔다. 적극적인 팬들은 잠실야구장 앞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시위까지 펼치기도 했다. 팬들이 적극적으로 구단 운영에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권리의 일부다.

그런데 양상문 단장에게 일부의 비난 여론이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사태의 본질은 또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일부 극성팬들은 양상문 단장을 사실상 모든 사태의 '흑막'인 것처럼 지목하며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다. 심지어 양상문 단장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아내 단체로 '전화 테러'를 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순수한 팬심으로 용납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선 행위였다. 양 단장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인신공격성 문자를 견디다 못해 결국 6년간 이용해온 전화번호까지 바꿔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LG, 상처가 '고진감래' 될까

사실 극성팬들과 양상문 단장의 갈등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극성팬들은 양상문 단장이 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사사건건 양 단장의 팀 운영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흔들기를 시도해왔다. LG가 후반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던 2015년 중반에도 일부 극성팬들이 양상문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며 소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최근의 리빌딩과 베테랑 구조조정 등을 비롯한 LG 구단의 팀 운영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가 충분한 논의 끝에 함께 결정한 사안임을 구단 측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극성팬들은 마치 양상문 단장이 구단 내에서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것처럼 매도했다.

양상문 단장은 비록 평가가 엇갈리지만 안정된 마운드 구축과 함께 2000년대 이후 유일하게 LG를 2번이나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등 감독으로서 나름의 업적도 분명히 남긴 인물이다. 여론몰이에 편승하여 특정인을 타깃 삼아 인신공격과 분풀이를 합리화하려는 일부 극성팬들의 구태는, '베테랑 홀대' 못지않은 LG만의 또 다른 '적폐'이기도 하다.

이순철-박종훈 등 전임감독들도 이러한 무분별한 극성팬들의 타깃이 되어 한동안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바 있으며 이는 순수한 다수 팬들의 건강한 비판여론까지 좀먹는 행태이기도 하다. 지금은 양 단장이 모든 비난 여론을 쓸어간 덕분에 조용하지만 류중일 감독에게도 언제든 화살이 날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통은 사라지고 상처와 오해만이 남은 자리에 구단과 선수, 팬들의 거리는 멀어졌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과연 2018시즌 준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상처를 극복하고 다음 시즌 LG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이번 겨울의 고통은 고진감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 가을에도 LG의 위상이 지금과 변화가 없다면 2000년대 초반 '암흑기'에 대한 학습효과 없이 과거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한 최악의 스토브리그로 오래오래 남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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