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가려씨.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가려씨. ⓒ 앳나인필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윤민석씨의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가사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의는 승리한다.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도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영화 <자백>을 보고 난 뒤,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 것일까? 과연 정의는 승리하는 것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우성씨는 간첩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여동생에게 수사관들은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허위자백을 받아내려고 했다. 6개월 동안 그녀는 독방에 있었어야 했다. 화장실에도 설치된 CCTV 카메라 때문에 제대로 몸을 씻을 수도 없었다. "뾰족하고 높은 구두"를 신은 한 수사관은 구두 뒷부분으로 그녀의 다리를 찼고, 또 다른 수사관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뺨을 때렸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간첩'이 만들어졌다.

3년여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유우성씨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 하지만 "한국에 계속 오고 싶었던" 여동생은 이미 추방되어, 법원 앞을 나오는 오빠를 축하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무리한 기소를 일삼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 1개월', '선고유예' 등의 가벼운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빛이 어두움을 이긴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정의가 승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무죄 소리를 들을 때까지 40년 걸렸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하는 최승호PD.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나마의 진실과 정의'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하는 최승호PD.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나마의 진실과 정의'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앳나인필름


간첩조작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 재일동포 이철(1975년 발표된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씨. 그는 법원을 나오며 "아이고. 당연히 무죄인데, 그래도 이 소리를 들을 때까지 40년 걸렸습니다"라고 밝혔다. 환한 모습으로 법원을 나왔던 그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부모님이 그렇게 일찍이 돌아가시게 한 것에 대해서 나는 지금도 너무 죄가 많습니다"라며 조용히 흐느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사건 직후, 어머니는 3년 후 각각 세상을 떠났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문장은,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을 수사했던 사람은 출세가도를 달렸고, 전 정권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정의는 과연 승리하는가.

간첩조작사건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여유 있는 미소와, 영화 말미에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간첩조작사건과 (길게는 수십년 뒤의 결과인) 무죄판결 목록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명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홍세화 선생은 일찍이, "정의에는 힘이 없어 '정의력'이라는 말이 없지만, 권력과 금력에는 그 자체에 힘이 있어 '권력'과 '금력'이라고 쓴다"고 했다.

정의와 진실은 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백> 포스터

영화 <자백> 포스터 ⓒ 앳나인필름


정의에는 힘이 없다. 진실에도 힘이 없다. 권력과 금력 앞에서, 너무나 쉽게 침몰해버리고, 덮여버리는 것이 바로 정의고 진실이다. 우리는 세월호의 사람들이 어이없이 생명을 잃는 것을 지켜봤지만, 아직도 그 날의 진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아직도,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을 누가 쏘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정의가, 이렇게나마 빛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 인용했던 윤민석씨의 그 노래가 답을 들려준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권력과 금력에 맞서, 그것들이 덮으려한 그 진실을 캐내려 싸웠던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나마의 진실'을 접하고, '그나마의 정의'를 볼 수 있었던 것일게다. 또 다른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홍강철씨는 "변호사님들 만났으니까 무죄 밝히고 나왔지, 그렇지 않으면 밝히지도 못했을 겁니다"라며 포기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워준 변호사들에게 고마움을 밝혔다.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의 진상을 온전히 밝혀내는 것에 실패했다. 다시 진실이 덮이려는 듯하다. 뉴스타파가 영화 <자백>을 1개월간 무료 공개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포기하지 않는' 뉴스타파의 노력에, 최승호 PD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들의 노력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성원하는 것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퍼트리자. 세상은 그렇게 바뀐다.

* 영화 <자백>은 유튜브에 12/14까지 공개됩니다. '자백'을 검색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게시할 예정입니다.
자백 간첩조작 유우성 유가려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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