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하프타임에 백승권 전북 현대 단장으로부터 K리그 최초 200골 달성 기념패를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하프타임에 백승권 전북 현대 단장으로부터 K리그 최초 200골 달성 기념패를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의 이동국과 야구의 정성훈,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세대다. 이동국은 79년생으로 만 38세, 정성훈이 80년생으로 한 살 어린 37세다. 두 선수는 각각 서른을 바라보는 시점이던 2009년 자신의 선수인생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될 중요한 구단으로의 이적을 단행한다. 이동국은 전북 현대, 정성훈은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두 선수는 비록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은 아니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팀에 헌신하며 소속구단은 물론이고 각각 해당 종목의 프로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동국은 통산 70-70클럽, 통산 200호골, 9시즌 연속 두자릿수 골과 5번의 K리그 우승 등의 위업을 세우며 전북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정성훈은 KBO리그 우타자 최초 2000경기 출장, 2000안타를 돌파하는 위업을 세웠고, 오랫동안 기복없이 장수한 FA 모범생의 전형으로도 꼽혔다.

황혼기 맞이하는 두 선수, 엇갈린 행보

하지만 2017년 겨울,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두 베테랑의 행보는 엇갈렸다. 이동국의 소속팀 전북 구단은 올해 12월 말로 계약이 끝나는 이동국과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이동국은 이로써 내년까지 현역 생활을 연장하며 전북과는 무려 10년간 인연을 이어나가게 댔다.

공교롭게도 이동국이 전북과 재계약이 발표된 그 날, 정성훈은 무려 9년을 함께한 친정팀 LG로부터 하루아침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하필 당일 프로야구 2차드래프트 지명을 바로 앞둔 시점이었다. 타 구단에서도 정성훈의 방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졸지에 정성훈은 무적 신분이 됐다. 정성훈을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LG 팬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스타급 선수들의 엇갈린 운명은 '베테랑'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동국을 처음 전북에 영입했고 9년간 한솥밥을 먹은 최강희 감독의 평가는 이렇다. "우리 스포츠 문화는 나이먹은 베테랑들을 알아서 내모는 분위기가 있다. 노장이라도 실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에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동국이 그런 경우다"며 나이를 먹었어도 이동국의 가치에 대하여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동국과 재계약에 발표한 후 백승권 전북 단장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본인과 구단, 감독 모두가 이동국과 재계약을 원했다. 9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은 나이가 들었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동국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많다. 내년에도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도 기대하고 있다."

이동국이 유독 특별한 사례인 것일까? 분명히 전북에서 최강희 감독을 만난 것은 이동국에게 일생일대의 천운이었다. 이동국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와 국내 유턴, 아시안컵 음주파문, 성남에서의 방출 등으로 커리어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만일 전북이 손길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이동국은 지금쯤 '한때는 잘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비운의 공격수 정도로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강희 감독은 만신창이가 된 이동국에게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줬다. 아무리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주고 믿어주는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전북은 꼭 이동국만이 아니라  김상식, 최은성, 김남일, 에두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장 선수들을 데려와 말년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전통'을 만들었다. 다른 팀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졌지만 전북에 와서 재기한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은퇴 후에도 전북에 남아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

지금도 전북은 이재성같이 젊은 스타들도 있지만 이동국-조성환-박원재 등 30대를 넘긴 베테랑 선수들의 비중이 크다. 전북에서 베테랑은 팀의 체질개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과 노련미로 팀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존재로 대우받는다. 그리고 전북은 '신구조화'를 바탕으로 현재 자타공인 10년 가까이 K리그  최강팀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추격 시작하는 LG 2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NC와 LG 경기에서 8회 말 2사 2·3루 LG 정성훈이 2타점 적시타를 쳐내고 있다.

LG에서 방출된 정성훈 ⓒ 연합뉴스


정성훈은 LG에서 오랜 세월 가장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타자 중 한 명이다. 유난히 FA 잔혹사가 많았던 LG 선수로는 매우 드물게 FA 계약 이후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오랜 시간 유지했다. 심지어 구단이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베테랑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된 2017년에도 타율 0.312를 기록하며 출전시간 대비 충분히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LG 구단 측은 정성훈이 여전히 교체나 대타요원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방출을 선택했다.

심지어 2차 드래프트를 통하여 손주인과 이병규, 유원상 등도 타 구단의 지명을 받아 팀을 떠났다. 유독 30대 이상 베테랑 선수들의 비중이 높았다. 팀 개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양상문 LG 단장은 "보호선수 40인을 선정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순번이 밀린 면이 있다. 베테랑이라고 일부러 제외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수의 LG 팬들은 양상문 단장이 감독시절부터 이병규-정성훈같은 베테랑들을 노골적으로 홀대한 정황을 들어 고의성을 의심하고 있다.

구단도 나름의 명분은 있다. LG는 몇년째 '리빌딩'을 이야기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팀의 체질개선을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LG는 올해 가을야구 진출조차 실패하며 그간 리빌딩의 성과에 대하여 의문부호를 남겼다. LG가 기대했던 수많은 젊은 유망주 중 아직 팀내에서 제대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팀을 떠난 베테랑 선수들의 기량이 젊은 선수들에게 비하여 크게 처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LG는 2000년대 초중반에도 리빌딩과 체질개선을 빌미로 이상훈, 김재현, 유지현 등 간판급 선수들을 연이어 내쫓듯이 팀에서 떠나보냈지만 오히려 베테랑이 사라지며 구심점을 잃고 장기간 가을야구조차 못나가는 암흑기를 겪은 바 있다. 참고로 LG는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1994년 이후 무려 23년째 더 이상 우승경험이 없다.

물론 어떠한 베테랑이나 레전드라도 세월 앞에서 영원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프로구단에서 스타 선수와의 이별과 세대교체 항상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정이다. 스포츠는 감정과 생각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어쩌면 스포츠의 본질도 바로 숫자로 환산되는 기록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선수, 감독, 팬들) 각자의 이야기가 쌓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드라마'라고 정의할수 있다.

그 이야기의 큰 한축을 차지하는 선수들이 세월이 흘러 조금 낡고 싫증이 났다고 무슨 소모적인 기계 부품 갈아치우듯이 취급한다면, 그것은 곧 이야기의 주체인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는 막장 드라마밖에 될수 없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은 꼭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며 공존해야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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