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의혹'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세상 밖으로 꺼내 드러낼 수 있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2016년 10월 3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내린 전북 현대 승부조작 사건 징계에 대한 비판 기사가 프로축구연맹의 청탁으로 네이버에 의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재배치된 사실이 밝혀졌다. 야구팬들을 경악케 했던 '최규순 스캔들', 축구팬들에 큰 충격을 안긴 전 국가대표 출신 이승렬의 '20년 노예계약' 등을 세상에 알린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덕분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작성한 '한국프로축구연맹,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이 있나' 기사가 청탁의 목표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들이 승부 조작을 대하는 방식에 분노했고, 올해는 청탁을 통해 비판 기사를 숨긴 행태에 절망했다. 1970, 1980년대 사고 방식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이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발전을 위한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뭐하나. 반성은커녕 어찌하면 숨길지 고민부터 할 터인데.

 네이버에 게재된 이근승 시민기자의 기사.

네이버에 게재된 이근승 시민기자의 기사. ⓒ 네이버 갈무리


그런데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아니다. 국내 최대 포털로 뉴스·미디어 검색 점유율 70% 이상을 자랑하는 '네이버'다. 실시간 검색 순위와 뉴스 배치를 어찌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화 주제가 결정되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권력.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20일 사과문을 통해 "동일한 조직 내에 스포츠 기사를 배열하는 부문과 언론 취재의 대상인 스포츠 단체와 협력하는 부문이 함께 있어 구조적으로 문제의 기능성을 원천 차단하지 못했다. 이는 회사를 이끄는 내 책임이 크다"라면서 "뉴스 콘텐츠 가운데 스포츠와 연예를 담당하는 쪽만 이렇게 돼 있었다. 업무를 각각 다른 조직에 맡기는 것 등으로 해결하겠다"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아직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사과라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 사건이 대표 명의의 사과문 한 쪽으로 끝날 일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치졸한 그들과 한 배를 탄 네이버

 네이버가 없는 인터넷, 모바일 환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네이버가 없는 인터넷, 모바일 환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오마이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10월 3일 내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면, 정식으로 항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와 <오마이뉴스> 모두,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 기사에 대한 불만 혹은 반론을 접하지 못했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의 보도가 아니었다면 영영 알 턱이 없을 일이었다.

그들은 치졸했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자 네이버스포츠를 총괄하는 이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기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는 그들과 한 배를 탔다. 한국에서 국가대표팀을 제외하면, 축구 인기는 대단하지 않다. 국가대표팀도 이전 같은 지지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도 아닌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통해 비판 기사를 숨길 수 있는 구조라면, 말 다 했다.

삼성과 롯데 등 대기업은 물론 거물급 정치인이나 청와대가 포털에 개입한다면, 안 봐도 뻔하다. 네이버는 정치·사회·경제 담당이 스포츠·연예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 연합뉴스


시간을 지난 7월로 되돌려 보자. 당시 <한겨레>는 삼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불리한 내용의 기사를 막을 수 있도록 포털사이트 운영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1년째 병상에 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시점이었던 지난 2015년 5월 15일. 삼성 미래전략실 최아무개 전무가 장충기 전 사장에게 "지금은 네이버와 다음에서 기사들이 모두 내려갔다. 포털 쪽에 부탁해뒀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10월에는 검색 순위를 불법으로 조작한 현황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전직 프로게이머를 앞세운 일당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100여 대를 설치해 특정 검색어를 반복 조회하면서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 네이버의 말대로 자신들은 '피해자'에 가깝고, 억울할 수는 있다. 그러나 2016년 매출 4조 원, 영업 이익 1조 원을 기록한 네이버가 할 소리는 아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100여 대에 자신들의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고, 검색 조작이 예상보다 쉽다는 결론이 드러난 것 아닌가.

의혹은 넘치고 있으나 명백한 증거는 없는 누리꾼의 '댓글'도 있다. 네이버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댓글을 무더기로 사라지게 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에도 주요 기사를 숨기는 일을 서슴지 않는 조직이라면, 여론을 흔들 수 있는 댓글에는 더욱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댓글 조작 논란도 현실에 가까워진 모양새다.

네이버 변화 성패는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은 지난 3월 28일 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은 지난 3월 28일 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종이 신문과 멀어지고 있다. 종이 신문 구독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인터넷 신문이 이를 대체하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는 언론사 누리집에서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다. 대형 포털에 접속하면 모든 언론사의 기사를 접할 수 있는데 뭣하러 언론사 누리집을 찾아볼까.

네이버는 너무나도 편리하고 신속하게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광고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상식in뉴스'를 활용하면, 한 주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3월 둘째 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다. 핵심 기사와 인물, 용어 정리는 특별 서비스다.

현실적으로 네이버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정 청탁 사건이 충격을 던져준 것은 사실이지만, 네이버의 영향력이 큰 폭으로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들은 국내 최고 포털의 입지를 지킬 것이고, 언론의 역할도 해나갈 것이다. 이변이 없다면, 더욱 거대해질 게 확실하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네이버는 마음만 먹으면 언론사는 물론 청와대와 삼성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조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책임에서는 늘 자유로웠고, 견제도 받지 않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네이버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3의 기구 설치, 포털이 아닌 정식 언론사로의 변화 등을 고민하고, 요구해야 한다. 네이버의 자체적인 감사와 내부 변화만으로는 거대한 권력을 유지하고,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부정 청탁 사건으로 네이버 변화의 필요성은 더욱 확실해졌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의 네이버를 만들어준 이들과 소통부터 하시라. 이 사건은 사과문 한 쪽으로 끝낼 일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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