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남한산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2015년 11월 파리 도심 동시다발 테러.
2016년 7월 프랑스 남부 니스 트럭 테러.
2017년 9월 프랑스 콜롱 내무장관,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총 12건의 테러시도를 사전에 적발'

프랑스는 연이은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일에도 마르세유에서 시민 2명이 괴한에게 살해당했다. 왜 프랑스에서 이와 같은 비극이 연이어 일어난 것일까. 연합뉴스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어 ... 왜 프랑스 인가"(2015.11.14)라는 기사의 분석이 의미심장하다.

"프랑스에 무슬림 이민자가 많아 한쪽에서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점점 사회에 앙심을 품고 과격화하는 '외톨이 무슬림'이 늘어났다는 점 역시 테러 빈발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쉽게 말해, 프랑스 사회가 이질적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통합에 실패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만 봐도 프랑스의 그 위대한 '똘레랑스'가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중이다. 내부통합에 실패한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그리고 '삼배구고두'의 조선 최악의 치욕을 다룬 <남한산성>. 조선이 왜 그렇게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 또한 '내부통합의 실패'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조선사람이라고 하지 마시오' - 역관 정명수

 역관 정명수(조우진 분). 조선 노비 출신으로, 청의 역관이 되어 조선침략에 협력한다.

역관 정명수(조우진 분). 조선 노비 출신으로, 청의 역관이 되어 조선침략에 협력한다. ⓒ CJ엔터테인먼트


장면 하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등장한다. 조선인 출신이면서 청나라로 귀화하여 청에 역관으로서 협력하는 '정명수'라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죄책감도 없다. 그의 태도를 못마땅해하는 조선의 관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조선에서 노비로 태어났소.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오. 나를 더 이상 조선 사람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그는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조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조선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고, 조선 침략의 첨병으로 활동하게 된다.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 - 대장장이 서날쇠

또 다른 장면. 청나라 군대의 압박으로, 매우 다급한 상황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주변의 구원군을 찾아 접촉, 성 안팎에서 함께 청군을 공격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천신만고 끝에 구원군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구원군은, (왕의 옥새가 찍힌 문서를 보고서도) 서날쇠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 한다. '초급 무관도 아닌, 천민 출신'이라는 것이 그 이유. 한 군졸이 서날쇠가 잠들어 있는 침상을 칼로 찌르지만, 서날쇠는 이미 이를 예상하였고, 당황하는 군졸을 덮치며 이야기한다.

 대장장이 서날쇠(고수 분). 목숨을 걸고 구원군을 만나지만, 오히려 구원군에 의해 죽을 위기를 맞는다. '천민'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서날쇠(고수 분). 목숨을 걸고 구원군을 만나지만, 오히려 구원군에 의해 죽을 위기를 맞는다. '천민' 출신이기 때문이다. ⓒ CJ엔터테인먼트


"나는 벼슬아치들은 믿지 않소"

이후 구원군이 도주하는 서날쇠를 쫓는 과정에서 구원군은 청군에게 발각, 괴멸되고 만다.

이렇게 조선은, 절호의 반격의 기회마저도 스스로 걷어차고,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겪게 된다. 청에 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배제 논리'

누군가를 배제하는 '배제의 논리'로는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고, 그런 사회는 위험해지고, 취약해진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슬람'을 배제하는 프랑스처럼, '천민'을 배제했던 그 날의 조선처럼.

우리는 지금, 모두를 포용하고 있는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일원으로서 대접받고 있는가.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착취하지는 않았는가. 여성들은 어떠한가. '경단녀'니, '맘충'이니 하는 단어들만 봐도 우리 사회는 여성들을 온전히 보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렇게, 제2, 제3의 '역관 정명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치루어야 할 비용은 막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양흔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남한산성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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