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과 김희진 선수

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과 김희진 선수 ⓒ 박진철


'살인적인 일정과 주전 선수 혹사 논란.' 올해 여자배구 대표팀이 큰 홍역을 치른 화두이다.

문제는 내년이다. 더 비중이 높고 기간도 긴 국제대회 일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과 운영에 대한 치밀한 전략과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을 경우, 더 큰 사달이 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여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6월 3일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 매치를 시작으로 월드그랑프리(7.7~31), 아시아선수권(8.9~17),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9.20~24)까지 강행군을 펼쳤다.

​​내년 국제대회 일정을 살펴 보면, 더욱 힘겨운 일정이 예고돼 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018년 5월 15일부터 5주 동안 뉴발리볼리그(가칭, New Volleyball League)에 출전한다.

국내 프로 리그인 2017~2018 V리그가 오는 10월 14일 시작해 2018년 3월 31일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종료까지 6개월여 동안 진행된다. 때문에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 달도 쉬지 못한 채, 내년도 국가대표팀 소집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뉴발리볼리그는 국제배구연맹(FIVB)이 올해까지 열렸던 월드리그(남자)와 월드그랑프리(여자) 대회를 폐지하고, 2018년부터 새롭게 창설한 국제대회이다.

출전국은 남녀 모두 16개국으로 구성된다. 16개국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참가가 보장된 12개국의 핵심(core) 팀과 2018년 대회만 참가가 보장된 4개국의 도전(challenger) 팀으로 나뉜다.

도전 팀 중 최하위는 다음 해 출전국에서 제외될 수 있다. 단, FIVB가 와일드카드로 지명하면 잔류가 가능하다. 한국은 여자배구는 핵심 팀에, 남자배구는 도전 팀에 편성됐다.

경기 방식은 남녀 모두 '예선 라운드'는 16개국이 4개 팀씩 4그룹으로 나누어 5주 동안 매주 3일 연속 경기를 펼친다. 또한, 16개국 모두가 한 번씩 맞붙게 돼 있다. '결선 라운드'는 예선 라운드 상위 5개 팀과 결선 라운드 주최국까지 6개 팀이 출전해 최종 우승을 가린다.

여자 경기는 주중(화·수·목)에 치러지며, 남자 경기는 주말(금·토·일)에 치러진다. 2018년 뉴발리볼리그는 여자는 5월 15일부터, 남자는 5월 25일부터 시작된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1주차(5.15~17)는 중국에서 중국, 도미니카, 벨기에와 경기를 갖는다. 2주차(5.22~24)는 한국에서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과 경기를 치른다. 3주차(5.29~31)는 네덜란드로 가서 네덜란드, 폴란드, 브라질과 경기를 한다. 4주차(6.5~7)는 태국으로 건너가 태국, 일본, 터키와 대결한다. 5주차(6.12~14)는 아르헨티나로 가서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미국과 경기를 펼쳐야 한다.

뉴발리볼리그, 5주 동안 매주 3경기...초대형 '혹사 리그'

뉴발리볼리그가 월드그랑프리보다 훨씬 살인적인 일정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올해 월드그랑프리 2그룹 일정은 예선 라운드 3주차와 결선 라운드까지 총 4주차로 끝났다. 그러나 뉴발리볼리그는 예선 라운드만 5주차다. 5위 안에 들 경우 결선 라운드까지 치러야 한다. 상대할 팀들의 수준도 월드그랑프리 2그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 강호들이다.

뉴발리볼리그를 마치면, 아시안게임이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열린다. 그리고 내년 국제대회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권위가 있는 세계선수권 대회가 9월 29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일본에서 열린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2018 아시아배구연맹(AVC)컵 대회도 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대회도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강호들의 성인 국가대표팀이 출전한다. 2016년 AVC컵은 지난해 9월 베트남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은 유망주 발굴·육성 차원에서 중·고교와 프로 팀의 나이 어린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해 출전했다.

또한, 여자배구 U19 아시아선수권 대회도 내년에 베트남에서 열린다. 이 대회에서 2위 안에 들어야 2019년 U20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획득한다.

올해처럼 대표팀 운영하면, 도쿄 올림픽도 없다

 '여자배구 인기 폭발'... 2017 월드그랑프리 대회가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

'여자배구 인기 폭발'... 2017 월드그랑프리 대회가 열린 수원 실내체육관 ⓒ 박진철


이 같은 살인적인 국제대회 일정을 감안하면, 내년 1년 동안의 국가대표팀 운영 전략을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치밀하게 수립해 놓아야 한다.

배구협회가 올해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 세례를 받은 것도 그런 전략 없이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대표팀 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세계 강팀들의 흐름과 정반대로 대표팀을 운영한 것이 큰 분노를 샀다. 올해 세계 강팀은 물론 아시아 강호들까지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육성에 초점을 맞춰 대표팀을 구성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배구는 리우 올림픽 주전 멤버를 거의 그대로 풀가동했다. 혹사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올림픽을 3년 앞둔 올해가 유망주 발굴·육성에 가장 좋은 시기였음에도, 남녀 모두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를 국가대표팀에 발탁해 키워보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도쿄 올림픽 준비와 한국 배구의 미래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장신 유망주 포함... '예비엔트리 전원' 훈련 참가 필요

내년에는 올해처럼 국가대표팀을 구성하고 운영해서는 곤란하다. 월드그랑프리처럼 출전 엔트리 14명도 못 채워서 12명만으로 구성하고 주전 선수 위주로 내년 뉴발리볼리그를 치를 경우, 대표팀 선수의 줄부상 등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안은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대표팀 예비 엔트리로 21명을 선발했듯이, 내년 국가대표팀은 올해 주선 선수 14명과 고교 유망주를 포함해 5~8명을 추가 발탁해서 대표팀 소집훈련에 이들 전원이 참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훈련 과정에서 선수의 실력과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 등을 고려해 베스트 14명을 선발해서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경우 어린 유망주들이 세계 최고 선수인 김연경과 함께 훈련하는 과정에서 안목과 경기력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김연경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도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또한, 각 국제대회의 중요도를 구분해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회에는 과감하게 유망주 위주로 대표팀을 출전시키는 이원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 겨울 동안 고교 유망주들을 대거 성인 국가대표팀 상비군으로 발탁해 진천선수촌에서 특별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 유망주들이 국제대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고, 기존 대표팀 선수들과 실력 격차를 줄이면서 국가대표 운영의 폭도 넓어진다.

김연경과 함께 유망주 훈련... 지체할 시간 없다

김연경은 지난 6일 한 언론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대회 엔트리뿐만 아니라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까지 24명 전원이 함께 훈련을 해야 한다"며 "태국처럼 유스 대표팀과 같이 훈련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러면 금세 대표팀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 미국 같은 세계 강호들은 대표팀 예비 엔트리 21~24명이 한꺼번에 훈련에 참여한다. 대표팀 훈련 체육관 안에 배구 코트를 3~7개씩 설치하고, 3~4개 팀으로 나눠서 훈련하고 수시로 연습경기를 실시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유망주도 육성하고, 가장 경기력이 좋은 선수를 최종 엔트리에 선발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30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나도 예전에 대표팀 훈련은 예비 엔트리 선수가 다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진천선수촌은 배구 코트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21~24명이 한꺼번에 훈련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며 "두 개 팀으로 나눠서 오전과 오후에 한 팀은 체력훈련, 한 팀은 기술훈련을 번갈아서 하고, 연습 경기를 같이 하는 식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구협회와 프로배구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은 최근 뒤늦게 국가대표팀 지원과 운영 방안을 함께 마련해 보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 마디의 말보다, 구체적이고 현명한 방안 수립과 과감한 실천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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