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주연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의 포스터.

이상호 기자 주연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의 포스터. ⓒ ㈜BM컬쳐스


김광석은 김현식처럼 내 추억의 아이콘이다. 두 사람 다 통기타 가수로서 뒷담화와 불협화음을 남기고 죽음을 맞았다. 김현식은 남학생도 생머리를 나풀거리던 유신 시절에 드물게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풍겼던 거친 풍미의 블루&록 음악가다. 한편 김광석은 1997년 외환위기 전 풍요가 낳은 퇴폐적 오렌지족과 딴판으로 삶에 대한 철학적 읊조림을 절창했던 가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 19960106>(아래 <김광석>)은 그 추억의 한 부위를 짓밟는다. 김광석의 자살 발표를 취재하던 당시부터 20년 이상 줄곧 타살 의혹을 지닌 고발자 이상호 기자가 주연이어서 그렇다. 그는 한 시대를 노래한 가수를 잃은 상실감과 부채감에 시달리며 눈물마저 보이면서 동분서주한다. 고인이 된 가객의 어머니에게 했던 규명 약속을 지키려는 심정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음악영화가 아니다

 수재로 인해 무용지물이 된 취재수첩과 녹화테이프 더미.

수재로 인해 무용지물이 된 취재수첩과 녹화테이프 더미. ⓒ ㈜BM컬쳐스


영화 첫 장면은 이상호 기자에게 엄습했던 한때의 절망을 대변한다. 지하 사무실을 덮은 수재로 인해 쓸모없게 된 취재 노트와 녹취록 더미를 클로즈업한다. 물론 영화 중간쯤에 반전이 일어난다. 김광석의 큰형이 보관했던 녹화 테이프가 말짱하다는 소식이다. 그 녹취록이 영화 속 타살 용의자 언행에 대해 전문가의 분석을 들을 수 있게 한 실증이다.

타살 의혹 하나하나를 헤집는 영상을 좇아가며 부지불식간에 김광석의 원음(법명: 둥근 소리)을 떠올리게 됨은 팬으로서 고문이다. 메모광 김광석이 비밀 노트에 밝힌 '오쟁이 진 남편'의 심정과 마주할 때의 아픔은 최악이다. 그 비장의 고발탄과 더불어 <김광석>을 제대로 된 음악 영화로 만들 수 없게 한 요인이 또 하나 있다.

김광석의 음악 세계는커녕 음악 인생조차 대강이라도 훑지 못하게 한 법적인 장애물이다. 저작권을 움켜쥔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 측을 의식해 선곡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편 고발 다큐멘터리 <김광석>을 통해 알게 된 서해순의 혐의들은 이상호 기자의 팩트 갈무리에 쏠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시비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고 김광석이 결혼 전까지 살던 창신동 골목집.

고 김광석이 결혼 전까지 살던 창신동 골목집. ⓒ ㈜BM컬쳐스


서해순의 오빠가 수차례 실형을 살았다는 발언, 모처럼 남편과 함께한 뉴욕 여행 중에 인사를 나눈 그의 고등학교 친구와 잠적해 외도한 사실, 이혼 경력을 남편이나 시댁에 숨긴 일로 부부간 불화가 심했다는 증언들, 더욱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을 죽인 영아살해범이라는 폭로, 그러면서 삽입한 김광석의 딸 서연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지적 등이 그렇다. 법정에서 밝힐 사안과 고발 다큐에 담을 사실의 경계 구분 여부가 궁금하다.

아무튼 <김광석>이 상영되자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이상호 기자의 투지는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의 공동 주최로 '김광석법' 입법 추진 기자회견이 열렸다. 입법화가 되면, 다른 미제의 변사자 사건 처리도 그렇겠지만, 이상호 기자가 못 채운 팩트 1%가 밝혀질 수도 있다.

미처 채우지 못한 1%의 팩트

 고 김광석의 비밀 노트를 읽는 이상호 기자.

고 김광석의 비밀 노트를 읽는 이상호 기자. ⓒ ㈜BM컬쳐스


이상호 기자는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활동한 탐사보도전문 해직 기자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 벨>(2015)을 통해 언론의 왜곡이 참사를 키웠음을 고발한 바 있다. <김광석>은 그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전작과 달리 그의 타살 의혹을 강화하거나 부인하는 관련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김광석의 비밀 노트를 읽은 심리 부검 전문가는 그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한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살자 유형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게 이유다. <고발뉴스>의 실탄이 된 비밀 노트로써 타살 의혹의 촉매 반응을 기대했을 이상호 기자에게는 뜻밖의 대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없이 영화를 진행한다.

나에게 김광석은 그리운 아날로그 감성이다. 더군다나 화장 시에 사리 9과가 나와 회자했던 희유한 가객이다. 그래선지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2008년 대학로의 학전블루 소극장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졌고, 2010년에는 고향 대구에 '김광석 거리'(행정명: 김광석다시그리기길)가 조성되었다.

지난 15일에는 체임버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열정과 나눔'(APSsymphonia)과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고(故) 김광석(1964~1996년)의 음악을 주제로 한 클래식 연주회 '김광석과 슈베르티아데'를 개최했다. 김광석의 음악이 슈베르트 음악과 새롭게 섞여 한 공간 속에서 만난 특별한 시간이었다. 2018년 서거 22주기에도 '김광석 다시 부르기' 행사는 어김없이 치러질 것이다.

그렇기에 고발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가객 김광석의 음악 인생" 중 탁한 부분들만 재생해 각인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반인륜적 범죄라는 의혹에 대해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면서도, 내 추억거리는 아프게 수축하고 있다.

예전처럼 가을 햇살 아래서 김광석의 원음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까.

 김광석 죽음에 대해 타살 의혹을 제기한 <고발뉴스> 기사.

김광석 죽음에 대해 타살 의혹을 제기한 <고발뉴스> 기사. ⓒ 고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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