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하는 전쟁은 '참혹함' 이라는 단어로 대신할 수 있다. 하나의 세력과 또 다른 세력의 충돌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전쟁은 수많은 전투의 반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영화라고 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독일군에게 밀린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은 일방적으로 싸움에 패배하여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됐다. 두 세력 간의 전투가 아니라 독일군의 일방적인 학살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이 영화는 학살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생존드라마다.

107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체감하는 시간은 훨씬 길 것만 같다. 이는 영화가 빚어낸 전쟁의 리얼리즘이 완벽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쟁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은 유난히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낀다. 관객은 됭케르크 해안에 갇힌 병사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다.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흐르는 잔혹한 광경은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폭격기가 공습할 때의 굉음, 폭탄의 폭발음,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의 공포와 고립감, 그리고 조금씩 귀를 죄여오는 시계 소리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됭케르크 해안에 내던져버린다. 구구절절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 없이, 오직 영상과 소리만으로 됭케르크 해안을 눈앞에 펼쳐 보인 것이다. 관객은 조국으로 살아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영화 속 병사들이 된다. 우리는 어느새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를 체험하기에 이른다.

 영화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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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육지에서의 일주일, 해상에서의 하루, 상공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조각내어 하나의 시간으로 재조립한다. 이런 편집은 그 당시에 살아남으려는 병사들과 적군의 침공을 막으려는 파일럿, 그리고 병사들을 구하려는 시민들을 모두 보여주기 위함이다.

누구는 살기 위해 비겁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부상당한 병사를 먼저 구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쟁의 상처 때문에 벌벌 떨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친다.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인간 군상을 담아냈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마음은 각기 다른 세 개의 시간에서 흘러오다가, 어느 한 지점에 이르자 교차한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을 레고처럼 가지고 놀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크닉은 <덩케르크>에서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편집으로 자신의 연출력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영화는 특정 인물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에 주인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고 각각의 인물들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 캐릭터 구축이 빈약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른 전쟁영화에서 느껴왔던 휴머니즘은 특정 인물들의 감정에 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에 누군가에게 <덩케르크>는 자칫 밋밋한 영화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덩케르크>는 애초에 특정 인물을 조명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하나의 인물인 것처럼 다룬다. 그리고 개인의 사연과 감정으로 피어나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병사들로 이루어진 집단, 병사들을 구하러 오는 시민들로 구성된 집단의 만남으로 휴머니즘을 빚어낸다. 이것이 <덩케르크>에서 제시하는 가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투에 패배해 조국으로 돌아온 병사들은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먹을 걸 전해주던 노인은 말한다. 조국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전투에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덩케르크>는 생존 또한 승리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들은 결국 불가능에 가깝던 철수작전을 성공해냈고, 이런 기적을 발판 삼아 전쟁의 형세를 역전시켜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다. 그들이 생존하지 않았다면 현재까지의 역사는 없었다.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좌절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놀라운 일을 해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트라우마로 두려워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오직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병사들을 구해야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은 캄캄해 보였던 미래에 커다란 불을 지폈다.

<덩케르크>는 비록 영국 깃발을 펄럭이는 영화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영국이 주인공은 아니다. 적군의 비행기를 요격시킨 스핏파이어의 파일럿이 주인공이고, 아들 뻘 되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보트를 몰고 사지로 오는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비겁하고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병사들이 주인공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의 배 위에서, 그리고 <덩케르크>의 철수작전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암울하고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인간의 선의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고.

 영화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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