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지미 특별전. 작품명 '미상'의 포스터.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한국영상자료원
지난 7월 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배우 김지미가 출연한 영화 <토지>를 봤습니다. 그녀가 배우로 데뷔한 지가 올해가 60주년인데, 그것을 기념해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700여 편에 출연했다는데 그 가운데 20편을 추려 상영해줘서 나에게는 퍽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가슴 속에 잊히지 않는 연예인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 배우 김지미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1940년생이니 그녀의 나이는 올해 만 77살로 60년 전인 17살 때 <황혼열차>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내가 그 배우를 처음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인 1967년 시골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큰누나를 따라서 동네에 있는 극장에 갔습니다. 아마 그 영화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고 오직 하나 스크린에 비친 여배우가 너무도 예뻐서 그 어린 나이에 두 눈이 뚫어지라 쳐다봤던 것만이 생각납니다.
나보다 7살 위인 큰누나는 나에게 그 배우의 이름이 '김지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제목도 다 잊어버렸고 다만 그 배우가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장면이 있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바로 그 유명한 영화 <흙>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9살이었던 나는 그 배우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여자가 있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습니다. 어린 나에게 그녀는 사람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로 보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주었습니다.
60주년 특별전, 50년 만에 만날 기회
▲ 데뷔 60주년 김지미, 전성기의 그녀 배우 김지미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 씨의 전성기였던 1975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탔을 때 모습. ⓒ 연합뉴스
그런 추억이 있는 나에게 이번 60주년 기념 특별전은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니 그녀가 직접 영화관에 들러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시간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7월 8일이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녀를 9살 때 처음 시골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는데 자그마치 50년 만에 직접 내 두 눈으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꿈만 같다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드디어 영화 <토지>가 끝나고 무대 위에 그녀가 그 영화를 만든 김수용 감독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1967년에 그녀의 나이 만 27살이고, 50년이 지난 지금 만 77살입니다. 27살 때의 그녀는 시골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지만, 77살 때의 그녀는 스크린이 아니고 바로 앞에서 직접 본 것입니다. 비록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했습니다.
한 영화평론가의 진행에 따라 감독과 배우가 그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 관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행자가 다른 사람을 먼저 지명하는 바람에 절호의 첫 번째 기회는 놓쳤지만 두 번째로 발언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입니다. 그녀를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얼마나 흥분되고 긴장했던지 목소리가 마구 떨렸습니다. 9살 때 극장에서 처음 보고 선녀라고 하면서 반해버린 그 배우를 쳐다보면서 말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기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마이크를 잡고 나는 먼저 9살 때의 첫 인연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주위에 앉아 있는 관객들도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배우에게 깊이 빠졌다는 말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나의 그 고백에 그녀가 호기심을 갖고 빤히 나를 쳐다봐줘서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궁금했던 질문 두 가지
▲ 데뷔 60주년 특별전 여는 배우 김지미 배우 김지미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금 마음이 진정되자 차분하게 두 가지를 그녀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는 영화 인생 60주년이지만 배우로서 영화에 마지막 출연한 것이 1992년에 나온 <명자 아끼코 쏘냐>이니 사실상 35주년이 아닌가 하면서 그 이후에 어떻게 생활했는지 궁금하다고 했고, 또 하나는 이번 특별전을 홍보하는 이미지 사진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전시한 것을 훑어보니 '작품명 미상'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수백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만, 배우 김지미와 관련된 영화인이 많으므로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출처를 알 수 있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홍보지에 쓰인 사진은 젊었을 적 얼굴인데, 뒤에서 한 중년 남자가 그녀를 위협하고 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영상자료원 직원에게 먼저 물어봤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먼저 듣고 그녀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드디어 그녀가 나의 질문에 답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50년 전에 스크린을 통해 열심히 봤던 것처럼 말 한마디라도 혹시 놓칠세라 얼굴을 바라보며 잘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그녀는 매우 성실하게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내가 잘 지적한 것처럼 배우 생활은 35년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는 영화 관련 일을 계속 해왔고 또 결혼도 했다고 답변했습니다. 홍보지에 쓰인 사진은 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또 영화는 아니더라도 여러 홍보물에 쓰느냐고 찍은 것도 하도 많아서 다 기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꿈만 같은 그녀와 만남이 5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뜻하지 않게 그녀와 질의 응답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사진의 출처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므로 다 같이 관심을 두고 힘을 보탠다면 분명히 출처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작품명 미상' 대신 정확한 제목이 그 자리에 적혀졌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