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기성용이 중원에서 공을 치고 나와 상대 문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지난 6월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기성용이 중원에서 공을 치고 나와 상대 문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박지성이나 홍명보 같은 선수들은 현역 시절 흔히 한국축구에 '대체불가'한 자원으로 꼽혔다. 이들은 압도적인 개인능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전력이었다. 여러 대표팀 감독들이 거쳐가는 과정에서도 항상 팀의 중추가 되는 선수들이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팀의 전술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축구는 이들이 은퇴한 뒤 한동안 포스트 박지성·홍명보 찾기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현재 한국축구에 가장 대체불가한 자원을 꼽으라면 단연 '중원의 핵'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첫 손에 꼽힌다. EPL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한 손흥민(토트넘)도 있지만 사실상 2010년대 이후 한국축구의 무게중심은 기성용의 활약 유무에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허정무 감독에 의하여 처음 A대표팀에 발탁된 이래 조광래·최강희·홍명보·슈틸리케 체제에 이르기까지 선수단과 전술 운용의 변화 속에서도 기성용의 팀내 입지만큼은 거의 불변이었다.

한국축구 역대 최고수준으로 꼽히는 기성용의 탁월한 패스와 경기운영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편으로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개인의 활약을 넘어 대표팀의 경기력 자체가 기성용의 활약에 지나치게 좌우되다보니 기성용이 부진하거나 혹은 부상 등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대표팀 전체가 덩달아 부진한 경우도 적지않았다.

기성용이 한국축구 수준에서 뛰어난 선수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탈압박 능력이나 대인방어, 스피드 등 강팀을 만났을 때의 단점 역시 뚜렷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공격이 기성용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간파한 아시아팀들조차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기성용 봉쇄를 타깃으로 한 수비 전략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역대 대표팀 감독들도 꾸준히 기성용의 대체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빛기람(제주), 하대성·이명주(이상 서울), 김보경(가시와) 등이 잠시 기성용의 대안으로 거론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비중이나 활용도가 꾸준하지 못했다. 단순히 이들이 기성용보다 기량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매 경기 항상 성적을 내야하는 대표팀 사정상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다.

특히 2013년 이후 홍명보-슈틸리케 감독 체제를 거치며 지난 몇 년간은 아예 기성용의 경쟁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중원에서 기성용을 부동의 주전이라고 했을 때, 함게 호흡을 맞추며 수비 부담을 줄여줄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파트너가 누구냐는데 더 초점이 맞춰졌다. 기성용과는 또다른 스타일의 미드필더들을 대표팀에서 실험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포스트 기성용' 찾기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대표팀의 현안이 되어가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6월 카타르 원정(2-3 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오른쪽 무릎 슬개건 사이가 벌어지면서 생긴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오는 8월 31일 이란과의 홈경기- 9월 5일 우즈벡 원정으로 이어지는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앞둔 신태용호로서는 기성용의 빠른 복귀가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은 최근 기성용의 대표팀 차출을 선언했다. 기성용이 과연 최종예선 일정까지 몸상태가 정상적으로 회복될수 있을지 확인조차 되지않은 상황에서 대표팀 차출을 공식화해버린 것이다. 불과 몇 주 전 기성용-손흥민을 언급하며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선수들은 배제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던 입장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신태용 감독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이란-우즈벡은 한국이 베스트 전력으로도 승리를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강적이다. 주장이자 에이스인 기성용없이 전력을 구성하려니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몸상태가 100%가 아닌 기성용이 대표팀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신감독은 이번 명단에서 기존 23명이 아니라 3명 많은 26명의 엔트리를 발표하기로 한 만큼 일단 기성용을 포함해 놓고 향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표팀은 4년 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대회 종반 부상에 시달렸던 기성용없이 마지막 3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은 이명주-장현수-김남일 등으로 중원을 구성하여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뒀다. 월드컵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답답했던 경기운영으로 기성용의 공백을 절감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그나마 기성용의 공백을 메웠던 이명주도 이번에는 부상으로 이란-우즈벡전까지 합류가 불가능하다. 이명주는 중동리그와 K리그 등에서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신태용호에서 대표팀 복귀가 유력하게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K리그 복귀 이후 발목 부상으로 장기간 재활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신태용 감독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대표팀은 기성용 외에도 손흥민-구자철-이청용 등 주전급 선수가 최근 큰 부상을 당했거나 이제 겨우 회복중인 선수가 유독 많다. 그나마 다른 포지션은 어느 정도 국내 선수들로도 대체가 가능하지만 기성용이 맡아주던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 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카드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는 것을 신태용 감독도 인정한 꼴이다.

문제는 이번 월드컵까지는 어쩔 수 없다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성용이 태극마크를 달고 뛸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길게 남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성용은 과거 2018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기성용 이전에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던 박지성도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당시 만 30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대표팀을 전격 은퇴한 바 있다. 당시 박지성의 조기 은퇴에는 만성적인 무릎 부상이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기성용 역시 무릎이 좋지않은 상태다. 지금부터 대안을 준비하지 않으면 1~2년 뒤에 한국은 기성용의 은퇴 이후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반드시 '기성용같은 스타일'의 미드필더가 있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점유율에 집착하는 '원 타입' 전술에만 의존하던 홍명보나 슈틸리케 체제에서는 자연스럽게 기성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측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한국축구가 홍명보라는 스리백에 최적화된 걸출한 리베로의 존재 때문에 오히려 대표팀에 '포백의 정착'이 늦어졌다는 아이러니한 평가도 나왔던 것처럼, 기성용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윤정환이라는 국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를 끝내 주전으로 기용하지않고 김남일이나 유상철같은 '파이터형' 미드필더들을 더 중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지네딘 지단이나 리오넬 메시급의 월드클래스가 아닌 이상, 한국축구에서 특정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전술 운용의 다양성까지 해칠 정도가 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이는 기성용 개인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부담과 혹사 누적이라는 부작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신태용 감독은 K리그 성남과 연령대별 대표팀 사령탑을 두루 역임하며 다양한 연령대의 국내 선수들에 대하여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서서히 기성용의 대체자를 찾기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신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권창훈(디종)이나 이찬동(제주)을 비롯하여 이재성(전북 현대), 주세종(FC서울) 등은 대표팀 중원에서 활용해볼 만한 자원들이다. 최근 부상에서 회복한 유럽파 구자철이 소속팀에서 올시즌 K리그 제주 시절 이후 처음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들은 기성용과는 플레이스타일이나 장단점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중원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축구가 이제 서서히 '기성용없으면 안된다 '는 두려움을 극복해야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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