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의 포스터.

영화 <그래비티>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인간의 '위'를 향한 갈망, 내지 집착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 기이한 본능의 산물로, 라이트 형제는 목숨을 걸고 비행기를 연구했고, 끝내 인류는 라이트 형제가 꿈꾸던 파란 하늘을 너머 지구 밖으로 나가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오기까지 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제는 우주로 위성을 쏘아 보내는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고, 우주와 관련된 영화나, 소설, 자료들은 차고 넘친다. 우리에게 우주는 이미 익숙한 존재이다.

그런데, <그래비티>는 아예 영화 시작부터 이렇게 써놓는다.

"지구 600km 상공의 기온은 -100도와 125도(원문은 -148~258℉)를 오르내린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은 없고, 기압도 없으며, 산소도 없다.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우주는 결코 인간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 이 문구를 통해 우리는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하나] 우주로 튕겨나가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스톤 박사(좌)와 코왈스키(우). 곧 인공위성의 파편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스톤 박사(좌)와 코왈스키(우). 곧 인공위성의 파편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러시아가 폭파한 위성의 파편들 때문에 스톤 박사가 타고 있던 기계가 부러지고, 그녀는 퉁겨져 나와 점점 회전하면서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 한복판으로, 혼자서.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며, 절망적이다. 이때, 영화에서는 어떤 음향이나, 음악도 없이 오로지 헬멧 안에서 들리는 숨소리와 둔탁한 충격음만이 들려 관객에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빛도, 소리도, 공기도, 물도, 중력도 없는 곳에서 그저 혼자 떠다니는 기분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달리 표현할 만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미지'라는 두 글자이다. 알지 못하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방안을 돌아다녀 보자, 몇 평 안 되는, 매일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에서조차도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즉, 알 수 없는 공간이 되는 순간, 그곳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반대로 두 눈이 훤히 보이지만,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공간에 있어도 비슷한 감정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구하러 올지 안 올지도 확실치 않은 그 상황 속에서 그저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스톤 박사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둘] ISS 안에서

 ISS에 들어와 잠시 떠있는 스톤 박사. 그 모습이 마치 탯줄과 연결된 태아와도 같다.

ISS에 들어와 잠시 떠있는 스톤 박사. 그 모습이 마치 탯줄과 연결된 태아와도 같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를 30분도 채 안 돼서 끝낼 수는 없으므로, 스톤 박사는 구해진다. 우주비행사 중에서도 베테랑인 듯 보이는 코왈스키가 그녀의 위치를 파악해 추진기로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과 연결한다. 하지만 잠시 후 코왈스키와 스톤은 다시 떨어지게 되는데, 충분히 속도를 줄이지 못해 ISS에 안착하지 못하고 밀려나던 중, 다리가 줄에 꼬이면서 가까스로 멈춘 스톤을 위해 정지하지 못하고 계속 밀려 나가던 코왈스키는 스스로 케이블 연결 고리를 풀고 멀어져 간다. 그렇게 우주라는 텅 빈 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동료를 떠나보내고 ISS에 들어온 스톤 박사는 우주복을 벗고 웅크린 채 잠시 가만히 떠 있는데, 이때 그녀의 모습에서 탯줄과 연결된 태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우주에서 지구가 만들어졌고, 그 지구 안에서 생명체가 생겨나고, 그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우주는 우리에게는 너무 버거운 경외의 공간이지만, 반대로 우리의 뿌리이자,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안식을 취하는 태아와도 같이, 스톤 박사는 우주라는 거대하고 방대한 자궁에서, 짧은 안식의 시간을 가진다.

사실 스톤 박사는 영화 초반에 우주의 평화로운 고요함이 좋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주가 그녀에게 한 일을 보면 우주는 결코 고요하지도, 평화롭지도, 인간에게 친절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또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스톤 박사가 다시 안정을 되찾는 공간 역시 우주이다. 우주가 다혈질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주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멋대로 역경을 만들어내고, 안식을 얻는 것이다. 인공위성을 폭파한 것도 인간이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도 인간이다. 우주는 그저 인과관계를 충실히 시행하면서 시간의 순행에 임하고 있을 뿐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방대한 나머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겨를조차 없는 걸지도 모른다.

[셋] 소유즈에서 톈공으로

 스톤 박사는 우연히 연결된 라디오로 지구에서의 소리를 듣게 된다.

스톤 박사는 우연히 연결된 라디오로 지구에서의 소리를 듣게 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짧은 안식도 잠시, ISS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 속에서 탈출하고, 궤도를 돌아 다시 한번 날아오는 위성 파편에 죽을 위기를 극복하고 탈출용 우주선인 소유즈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스톤 박사는 이내 좌절한다. 연료가 없는 것이다. 스톤 박사는 갑자기 물밀 듯이 차오르는 허탈함과 절망감에 휩싸이고, 어쩌다가 연결된 지구의 라디오에서 들리는 강아지 짖는 소리와 아기 소리, 그리고 자장가를 들으며 생을 마감하기로 한다.

이때 스톤 박사가 느끼는 감정은 꽤 복잡하다. 삶에 대한 미련과 포기하고픈 욕구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허탈한 슬픔 속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를 따라 하며 눈물짓는 그녀를 보면서, 아기 옹알이 소리와 자장가의 소리가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 감정에 감히 공감해보려고 노력한다.

낮아지는 산소 농도 속에서 정신이 희미해지는 스톤에게 갑자기 코왈스키가 나타난다. 이전부터 찾던 보드카를 꺼내 마시며 스톤에게 말을 건다. 다 포기하고 죽어가는 그녀에게 착륙용 연료를 쓰면 된다면서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스톤 박사가 돌아보니, 그는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남은 삶에 대한 의지가 온 힘을 다해 끌어낸 환상이다.

그 이후, 지구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스톤 박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린 나이에 허무하게 죽어버린 딸에 대한 슬픔과 하루하루 즐거움 없이 지내던 지구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지구로의 복귀에 별 감흥을 내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이제는 죽든 살든 해보겠다면서 필사적으로 행동한다. 목표지점을 중국 우주 정거장인 톈공으로 설정하고, 마지막 남은 착륙용 연료로 비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톈공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가 삶의 끝자락에서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지구에서도 우주만큼이나 건조하게 하루를 보내면서 세상과 단절되고 싶었던 그녀는 우주를 통해 그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단절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괴롭고, 힘겨운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들렸던 새로운 생명의 상징인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불현듯 떠오른 그 깨달음은 곧 삶에 대한 의지로 바뀌었고, 그것이 곧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자, 희망이 된 것이다.

[넷] 지구에 도착한 후, 바다에서 육지로

 우주선이 분리되어 지구로 떨어지는 장면.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우주선이 분리되어 지구로 떨어지는 장면.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롭게 얻은 삶에 대한 의지로 다져진 스톤 박사는 톈공의 우주선인 셴조를 타고 출발한다. 곧이어 우주선의 선체가 분리되어 조각조각으로 나뉘고, 그것들이 떨어지는 광경은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거기에 때맞춰 흘러나오는 음악은 웅장함과 더불어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마치 그녀의 삶에 대한 의지와 두려움이 한데 뒤얽힌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그렇게 스톤 박사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지구의 어느 바다에 우주선이 빠지고, 스톤 박사는 겨우겨우 빠져나온다. 무거운 우주복을 벗어버리고, 이전의 태아가 되었던 그 복장으로, 헤엄쳐 뭍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그래비티', 중력을 느끼면서 땅에 발을 내디딘다.

바다에서 육지로 나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재미있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사람마다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장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마치 생명체의 탄생을 그려놓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탄생하기도 훨씬 더 전에, 바다에서 탄생한 생명체들이 점점 뭍으로 나온 것과 같이, 스톤 박사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이전과는 달리,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람들 사이의 평범한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주에서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였지만, 동시에 지구에서는 자신을 구속하는 존재인 우주복을 벗어버리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그녀는 그렇게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흔히들, 이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우주 공포증에 걸리게 만드는 영화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결코,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그래비티>는 우주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 우리의 삶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효과적인 음향 효과와 배경 음악의 적절한 사용, 그리고 실감 나는 상황 묘사에 돋보였던 영상미가 뛰어난 이 영화는 약간은 뻔한 스토리 안에 우주의 방대함과 중력의 소중함을 조금 덧붙여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라는 깊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영화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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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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