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클: 이어진 두 세계>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외계인, 미래사회, 기억절제술, 스마트 지구…. SF 장르의 생소함 때문이었을까? <써클>의 설정과 배경은 언뜻 한없이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여기에 '더블트랙'이라는 생소한 형식, 12부작 짧은 호흡에 휘몰아치는 전개와 반전. 그 안에 담긴 한없이 무거운 철학적 메시지까지. 이 낯선 장르와 메시지에 감동을 불어넣은 건 이야기였고, 이야기에 힘을 실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써클>은 2017년이 배경인 '파트1: 베타 프로젝트'와, 2037년이 배경인 '파트2: 멋진 신세계'로 구성됐다. 김강우가 맡은 파트2의 김준혁은 20년 전 실종된 동생을 찾는 데 평생을 바친 형사. 이질적인 설정과 배경 안에 담긴 인물치고는 투박했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

 김강우 <써클>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김강우는 <써클> '파트2: 멋진 신세계'에서 20년 전 실종된 동생을 찾는 데 평생을 바친 형사 김준혁 역을 맡았다. ⓒ 씨제스


지난 6월 30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강우는 "SF, '더블트랙' 다 떠나, '형제를 찾는 이야기'라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에 방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2017년이든, 2037년이든,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SF라는 장르에 의미를 부여해 작품을 택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이런 배경에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김준혁이라는 인물이 좋았어요. 배경은 공중에 붕 떠 있지만, 김준혁은 땅에 붙어 있잖아요. 그게 매력적이었죠."

SF 물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시각 효과를 통한 쾌감이다. <써클>이 국내 첫 SF 물이기는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를 통해 눈이 높아진 상태.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자본도, 시간적 여유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SF를 드라마로 만든다?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죠. 시간이 부족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장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조건에 추를 놓고 재봤죠. 작가님과 감독님을 만나고 의구심이 사라졌어요. 결론은 제가 고민할 부분이 아니더라고요.

어차피 비주얼로 승부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연기를 통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했죠. 배경도 비현실적인데 연기도 너무 과하면 현실감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정도를 더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면 시청자들이 비주얼에서 약간 실망하더라도 스토리라인에는 따라와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맹목적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써클> 성적표, 유달리 아쉬웠던 이유

 김강우 <써클>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현실성 없는 2037년 스마트 지구를 누비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김준혁. 김강우는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배경에서, 땅에 붙어 있는 김준혁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 씨제스


시청자들은 휴먼비 회장의 정체와, 2037년에 등장할 우진의 모습에 대해 여러 추리와 해석을 쏟아냈다. 하지만 <써클>은 연이어 허를 찔렀고, 뒤통수를 맞은 시청자들은 반전에 열광했다. '생명 윤리', '생명의 존엄성', '정의' 같은, 교과서에서나 접하던 딱딱한 메시지에 눈물까지 쏟았다.

"결국, 과학도 인간이 만든 건데, 과학 때문에 인간이 도구화된다는 거잖아요. 기술이 발전하면 편리하죠. 나쁜 기억 지우고 싶고,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고, 복제 인간 만들어서 영원히 살고 싶고…. 인간이라면 당연한 욕심인 것 같아요. 다만, 그 욕심을 현실화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는 판단해야죠. 그동안 막연히 신문이나 책에서 읽었던 기술을 드라마를 통해 접하니까, 이 일이 진짜 현실화되면 어떻게 될까 남다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전 지금도 사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습득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하다 보면, 이 흐름을 빨리빨리 습득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완전히 클래식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아마 후자일 거예요. 

마지막 회에 정연(공승연 분)이가 '숙명'이라는 대사를 해요. 사실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대사거든요. 호수(이기광 분)의 메시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철학적 대사를 울림 있게 전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써클>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상황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오면서 여러 문제의식을 던져줬기 때문에 울림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드라마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와 세계관, 스릴 넘치는 전개는 마니아층을 끌어모은 장점이었다. <써클>은 명확한 장점만큼이나, 단점 역시 명확했다. 낯선 장르와 형식, 복잡하고 빠른 전개는 시청자 중간 유입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각오한 것이었다.

분명 <써클>의 도전은 의미 있었고, 그 결과에는 시청률을 넘어선 의미가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김강우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다. 데뷔 이래 연기가 실망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번번이 흥행과는 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행' 자체에 대한 갈증과 고민이 클 법도 하다.

"고민은 되죠. 하지만 고민한다고 풀리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게는 흥행보다,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15년 활동했는데, 냉정하게, 이 바닥에서 15년 활동한다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요즘은 배우들의 생명이 늘어났잖아요. 지금도 연기하면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데, 당장 어떻게 승부를 보겠다는 건 굉장히 건방진 생각 같아요. 흥행에 연연하면서 스트레스받기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회가 올까에 대한 기대를 가지려고 해요. 기대감도 심어드리고 싶고요."

김강우의 40대

 김강우 <써클>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데뷔 이래 연기가 실망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번번이 흥행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흥행' 자체에 대한 갈증과 고민이 클 법도 했지만, 김강우는 "고민한다고 풀리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 씨제스


최근 김강우는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킹엔터테인먼트로의 이적을 발표했다. 킹엔터 박영민 대표와 김강우는 이전 소속사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김강우는 "빈말이 아니라, 씨제스에서 행복했다. 다만 마흔이 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고, 좋은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을 결정하게 됐다"고 이적 이유를 설명했다. 마흔이라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경계를 넘기면서 준 변화인 셈이다. 그에게 마흔이 되고 달라진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는지 물었다. 웃으며 "아직 생일이 안 지나 39살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는 답을 이었다.

"40대의 삶이 녹록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한편 기대도 돼요. 괜찮을 것 같아요. 20~30대 살아봤잖아요. '전보단 잘하겠지?', '잘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과 기대감이 생겨요.

저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에요. 연기하면서 많이 무던해졌죠. 나이도 먹고, 결혼도 하고, 작품도 하면서 40대가 됐죠. 여유가 생기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전에는 뭔가가 잘 안 되면 마냥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왜 안 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걸 깨닫는 일인 것 같아요."

결국, <써클>을 관통한 가장 큰 메시지는 '기억'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결정짓는 건, 나의 기억과 나에 대한 타인의 기억. 김강우는 어떤 배우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을까?

"좋은 사람. 우리나라에서 배우의 덕목은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중은 배우의 삶도 중요하게 여겨요. 이건 제가 한국에서 연기하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거로 생각해요. 이게 싫으면 다른 나라에서 배우 해야죠. 두 가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배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사람은 연기도 썩 잘하고, 삶도 썩 잘 사는구나!' 하는."

 김강우 <써클>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좋은 평가를 받는 배우,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저 사람은 연기도 썩 잘하고, 삶도 썩 잘 사는구나' 하는." ⓒ 씨제스



김강우 써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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