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폐막선언을 하고 있는 김승수 조직위원장.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폐막선언을 하고 있는 김승수 조직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고맙습니다. 영화 덕분에 전주시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의 본질은 영화를 만드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 그 당연한 실천의 결과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 같아 참 기분 좋습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로 주목받고 있는 김승수 전주시장이 지난 5월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긴 말이다. 김 시장은 "이창재 감독님, 최낙용 제작자님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님, 이충직 집행위원장님 고맙습니다"며 실무진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노무현입니다>의 흥행과 함께 김승수 전주시장이 주목받는 것은 김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은 전주국제영화제가 1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3배 이상의 수익금도 챙길 수 있게 됐는데, 무엇보다 "영화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라는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원이었다.

전주시와 영화제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치적인 불이익이 생길지 모른다고 여겼던 것은 지난해 영화 상영과 관련된 국정원의 반응 때문이었다. 정보기관의 간첩 조작을 다룬 <자백> 상영이 알려지면서 국정원에서 영화 내용 등과 관련해 문의해온 것이다.

한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연락이 오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전주시 쪽으로 연락이 갔고 시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2012년 < MB의 추억 > 당시에도 전주영화제에 직원을 보내 영화 상영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시장이 불이익이 있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는 소신을 밀고 나가면서 전주영화제는 올해 슬로건처럼 영화 해방구의 역할을 했고, 안팎으로 큰 박수를 받고 있다. 지난 7일 전주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추미애 대표가 김 시장을 직접 격려하기도 했다.

김승수 시장은 40대 젊은 축에 속하는 데 그의 열린 자세는 전주영화제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시민들과 관객, 영화인들에게 겸손한 영화제였지만 그 어떤 자본과 권력, 사회적 통념 앞에서도 당당했다"며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을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 할 수 있는 그 근거이자 우리들의 자부심입니다. 지킬 건 반드시 지키는 것이 진정한 변화"라는 개막선언으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영화의 본질과 영화제의 자부심이었던 표현의 자유

 지난 5월 29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치러진 부산국제영화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 있다.

지난 5월 29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치러진 부산국제영화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성하훈


"부산영화제 21년의 전 과정을 온몸으로 감당한 그 친구의 화두는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정치 종교적 이유로 표현의 자유가 속박된 문화 속에서 부산영화제가 대변하고 성취한 '표현의 자유'는 아시아 어느 영화제와도 견줄 수 없을 최고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지난 정권 문화계 블랙리스트 비롯한 한 <다이빙벨> 사태로 표현의 자유가 무참히 짓밟힌 것에 그 친구의 분노를 잘 알고 있다."

지난달 29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치러진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영결식. 고인의 오랜 지기였던 오석근 감독은 멀리 칸에서 타계한 친구를 잃은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 감독은 "지난 정권 블랙리스트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다이빙벨> 사태에서 비롯된 부산영화제 탄압의 실상도 낱낱이 밝혀져 방조하거나 묵인한 사람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무겁게 말했다.

그 자리에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와 있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와 <다이빙벨> 상영 강행 문제로 부산영화제를 압박할 때 조직위원장으로 이를 막지 않고 정권의 편에서 영화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한 이용관 집행위원을 쫓아내는 등 온갖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영화계에서는 박근혜, 김기춘 등과 더불어 부산영화제 사태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날 영결식에서 그를 본 영화인들은 하나같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 영화제작자는 "서병수를 보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면서 "헌화가 끝나고 항의하려는 데 일찍 나가더라"며 분노를 삭이지 않았다. 영결식에 참석 못 했던 어느 독립영화 감독은 "어떻게 그 뻔뻔한 인간을 가만 놔둘 수 있냐"라면서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서 시장은 빈소가 차려진 첫날에 시청 관계자들과 조문을 와서는 상주 역할을 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으나, 이 전 위원장은 손으로 앞을 막아서며 '됐습니다'라고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성장한 부산영화제는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은 데다 서병수 시장이 감사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고발 등으로 괴롭힌 덕분에 그 위상이 심하게 추락했다는 게 영화계 일각의 생각이다. 서 시장이 별다른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은 채 공식 사과 요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보여주기식 행태만을 일삼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서 시장은 예산 삭감이 걱정된다며 문화부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하는가 하면, 지난 6일 캐나다 방문을 위해 출국하면서 북미 최대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를 방문했다. 부산영화제와 협력을 제안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부산영화제 내부에서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그것이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라며 비웃는 반응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부산영화제의 영화 한 편 상영을 끝까지 막고자 했던 사람이 그것이 잘 안 되자 기어코 집행위원장까지 해임하게 한 사람이 무얼 알아서 토론토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 논의를 한다는 건지 진짜 궁금하다"며 "영화제를 일자리 창출이나 요구하고 문화 사업을 통해 수익이나 내는 줄 이해하는 무식한 문화 행정 의식이나 들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을 향한 영국 영화평론가의 일갈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기총회가 25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기총회가 25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 정민규


영화와 영화제를 살리는 시장이 있는가 하면 잘 성장하던 영화제도 죽이는 시장이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은 그 부분에서 가장 비교되는 인물이다. 핵심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다.

서병수 시장이 <다이빙벨>을 막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쫓아낸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채 정권의 이익에만 충실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김승수 시장이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영화제에 이익을 안겨준 것은, 영화의 본질인 표현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였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은 영화와 영화제를 짓밟아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면, 또 한 사람은 영화와 영화제를 살려냈다.

대통령이 바뀌니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장의 모습은 어떤 사람일까.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 열린 토론회에서 세계적인 영국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말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 부산영화제 사태에 분노했던 토니 레인즈는 화난 표정으로 이렇게 일갈했다.

"서병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시장이 이야기도 듣지 않고 본인의 생각만 주장한다.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정치인이라면 중립을 지키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형편없는 시장이다. 이런 형편없는 정치인은 빨리 물러나게 해야 한다. 정치인이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시장을 선출해야 한다. 다음 선거 때 잘 뽑아야 한다."

서병수 김승수 부산시장 전주시장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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