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 기자 긴담회'... 박용규 배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홍병익 위원장(오른쪽)

'해명 기자 긴담회'... 박용규 배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홍병익 위원장(오른쪽) ⓒ 박진철


대한민국배구협회(이래 협회)가 사상 초유의 '특이한' 회장 선거를 실시한다. 회장 선거 출마자 전원에게 '사퇴 서약서'부터 받기 때문이다.

협회는 지난해 말 대의원총회에서 제38대 서병문 회장과 임원 전원을 해임한 이후 5개월이 넘도록 집행부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해임을 주도했던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대의원(아래 비대위원)들이 임시 체제로 협회 운영을 맡아 왔다.

비대위 체제가 장기화되자 배구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 5월 18일 협회 산하 7개 시도배구협회 및 전국규모연맹체 회장들은 '비대위 전원 사퇴와 서병문 회장 복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공개 발표하기도 했다.

7개 산하 단체 회장들은 현 대의원총회의 대의원이기도 하다. 이 성명 발표에는 지난해 서 회장 해임 결의에 찬성했던 대의원까지 동참해 파장이 일었다.

"비대위 전원 사퇴하고, 서병문 회장 복귀하라"

이들은 성명서에서 "현재 비대위원 1~2명이 협회 운영을 좌지우지하면서 많은 잡음과 비민주적 행태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최근 대한체육회마저 배구협회에 '항고심 판결 전 후임 회장 선거 불가'를 통보하면서 장기간 행정 공백이 우려되는 데다, 국가대표팀 지원과 재정 확충 등 시급한 현안들이 날로 악화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비대위원들은 서 회장의 공약에 대한 불신, 일부 임원 인사 잘못 때문에 해임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러나 비대위가 4개월 동안 보여준 행태들을 보면, 이는 여론몰이를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한 선전선동일 뿐, 실상은 협회 권력 장악을 위한 파벌 다툼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작금의 사태와 혼란, 무기력 상태를 그나마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서는 서병문 회장이 하루 속히 복귀해 원래 계획했던 행정·재정적 문제들을 풀어가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항고심 재판부가 제반 사정을 깊이 고려하여 서 회장이 제기한 '회장 해임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하여 조속히 '승소(인용) 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서 회장 승소하면 바로 복귀, 후보자 서약서 받아라"

비대위는 성명서가 나온 지 2주 만인 지난 2일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해명에 나섰다. 그러면서 오는 30일 서병문 회장의 후임 회장을 뽑는 제39대 회장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새로운 회장이 선출된다 해도 법원의 항고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대한체육회가 회장 인준을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홍병익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박용규 부위원장은 "대한체육회에서 '배구협회가 회장 선거를 하려면 후보자들에게 당선이 돼도 서병문 회장이 항고심에서 승소하면 서 회장이 법적으로 자동 복귀해 회장 업무 수행을 하게 되고, 새로 뽑힌 회장과 비대위는 자동으로 지위와 권한이 상실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놓고 후보자 등록을 받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야 항고심 판결 이후에 혼란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체육회의 지침대로 회장 선거를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5월 4일 대한체육회 김종수 종목육성부 부장은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대한체육회가 항고심 판결 전에 후임 회장을 인준하게 되면, 서 회장이 승소해서 복귀하게 될 경우 회장이 2명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며 "그런 경우 대한체육회는 후임 회장을 인준해준 경우가 거의 없다. 법원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배구협회가 여려운 사정 때문에 후임 회장 선거를 꼭 해야 한다면, 후보자 전원에게 '서 회장이 승소하면 곧바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항고심 판결 전에는 인준 가능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은 "회장이 2명이 생길 경우, 기존 서병문 회장이 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판 여론에 '마지못해' 선거... 새 회장도 인준 불투명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한 기자는 "회장 선거 후보자들이 그런 서약서를 쓰고 출마하면, 대한체육회가 새로 뽑힌 회장을 인준해 준다고 약속을 했는가"라고 질의했다.

박 부위원장은 "대한체육회는 인준을 해준다 안 해준다가 아니고, 재판의 가부를 보고 결정한다고 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기자석에서 "그 얘기는 인준을 안 해준다는 말"이라며 "항고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새로 선출된 회장도 회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말 아니냐"고 재차 질의했다. 이에 박 부위원장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기자석에서 "그렇다면 굳이 회장 선거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회장 인준도 못 받고 역할도 못한다면 무의미한 선거 아니냐", "외부 시선 때문에 회장 선거를 빨리 하려는 것인가"라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홍 위원장은 "처음 비대위원장을 맡을 때 2개월이라고 알고 맡았는데, 지금 사실 아무 힘도 없이 비대위원장을 한다는 게 너무 어렵다"며 "배구계에서도 비대위가 너무 오래 가는 거 아니냐. 새 회장 선거를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대한체육회도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아 일단 회장 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비대위 "이런 상태에서 좋은 후보자 나올지 걱정"

이런 식으로 회장 선거를 진행하다 보니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해임 당한 서병문 회장보다 더 나은 수장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배구계 전체로부터 축하받아야 할 협회 수장을 선출하는 모양새가 '사퇴 서약서'부터 쓰는 등 너무 좋지 않고, 항고심 결과에 따라 언제 당선 무효가 될지 모르는 위험성까지 안고 있다. 더군다나 내분 상태마저 계속되고 있는 배구협회 회장 선거에 사재 출연과 후원금 동원 능력이 있는 재력가나 외부 인사가 출마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섞인 질문이 이어지자, 홍 위원장과 박 부위원장은 "사실 그게 걱정"이라고 실토했다.

집행부 해임 이후 5개월 동안 수장 없이 표류하다, 후임 회장마저 모양새가 사납고 더 나쁜 조건 속에서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파벌 싸움 조장 '비대위 책임론'도

비대위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산하 단체 회장들의 성명서에 대해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면 성명서 내용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기자 간담회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석에서 "서 회장이 대의원들과 소통을 잘 안했다는 게 탄핵 이유였던 걸로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 비대위도 똑같이 성명서 낸 대의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있다"며 "집안 싸움인데 왜 안에서 해결을 하려고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비대위 책임론도 제기됐다. "비대위 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배구협회가 여러 모로 어려워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해임을 주도한 비대위원들도 파벌 싸움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이어졌다.

홍 위원장은 "비대위가 회장 해임 이후 2개월 안에 새로운 회장을 못 모신 게 가장 크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홍 위원장은 "그 전에 대한체육회하고 워낙 안 맞아가지고 애로 사항이 많아서 두 달 내에 회장을 선출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대한체육회에 화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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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협회 프로배구 V리그 월드리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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