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문 대한민국배구협회 제38대 회장

서병문 대한민국배구협회 제38대 회장 ⓒ 박진철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말 일부 대의원들이 주도해 서병문 제38대 회장과 임원 전원을 해임한 이후 4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후임 회장 선거도 못하고, 행정·재정적 어려움만 커지고 있다.

체육단체의 특성상 회장은 협회 운영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자리다. 때문에 대한체육회 정관에도 산하 단체가 '60일 이상 회장의 궐위 또는 사고'로 정상적인 조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관리단체로 지정하도록 돼 있다.

배구협회 정관에도 회장 궐위시 60일 이내에 후임 회장을 선출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런데 배구협회는 이미 130일이 넘도록 회장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후임 회장 선거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한체육회가 서 회장이 제기한 항고심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사실상 '후임 회장 선거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서 회장 승소하면 즉시 업무 복귀, 후임 회장 선거 무의미"

지난 4월 6일 1심 법원은 서 회장이 제기한 '대의원총회의 회장 해임결의(2016.12.29)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해임 주도 대의원들이 결성한 비상대책위원회가 후임 회장 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에 회장 선출시 인준 가능 여부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가 지난 4월 27일 배구협회로 보내온 답변서의 핵심 내용은 "회장 선출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일 경우 사법부의 판결이 인준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지난 4일 대한체육회 담당자인 김종수 종목육성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답변서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물었다. 김 부장은 답변서 공문의 전결권자이다.

김 부장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대한체육회가 항고심 판결 전에 후임 회장을 인준하게 되면, 서병문 회장이 승소해서 복귀하게 될 경우 회장이 2명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며 "그런 경우 대한체육회는 후임 회장을 인준해준 경우가 거의 없다. 법원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배구협회가 여려운 사정 때문에 후임 회장 선거를 꼭 해야 한다면, 후보자 전원에게 '서 회장이 승소하면 곧바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항고심 판결 전에는 인준 가능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에 대해 김 부장은 "회장이 2명이 생길 경우, 기존 서병문 회장이 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 회장이 항고심에서 승소하면, 그 순간 자동으로 배구협회 회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거기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대한체육회에 따로 승인을 받거나 물어볼 필요도 없다. 바로 복귀해서 회장 직무를 수행하면 된다"며 "새 회장을 선출했다고 해도 서 회장이 승소하는 순간 후임 회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 회장이 승소하면 회장 해임 결의의 효력이 '정지'되고, 해임 결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상대책위원회와 후임 회장의 권한도 자동 상실된다. 김 부장은 "대한체육회가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과 심도있는 검토를 했다"고 덧붙였다.

비대위, 건물 매각 등 재산 처리도 불가능

한편 배구계에서는 배구회관 매각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시급하고 일반적인 행정 처리 이외에 배구회관 건물 매각 등 재산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 규정과 배구협회 정관에 따르면, 부동산·기금 등 기본재산을 매도·임대·차입 등으로 재정적·업무적 부담을 하거나 권리를 포기하고자 할 때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명시돼 있다.

김 부장은 "현재처럼 회장 자격과 관련하여 법원 항고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문체부가 비대위의 배구회관 매각 등 재산 처리 사안을 승인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그건 어느 행정부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점을 다 종합하면, 항고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배구협회가 후임 회장 선거를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의미로 답변서를 보내준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도쿄 올림픽 출전 좌우할 국제대회 잇달아 열리는데

올해 한국 배구는 지상 과제인 2020년 도쿄 올림픽 '남·녀 동반 출전'을 좌우할 중요한 국제대회들을 앞두고 있다.

남자배구는 당장 6월 2일부터 세계랭킹 점수가 걸린 월드리그가 시작된다. 여자배구도 7월 7일부터 역시 세계랭킹 점수가 부여되는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다. 그리고 8~9월에는 올해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이 펼쳐진다.

특히 남자배구의 경우 8월 10일부터 이란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예선전은 출전권을 따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자배구도 9월 태국에서 벌어지는 세계선수권 예선전에서 출전권을 따내야 한다. 세계선수권은 한 번 획득한 랭킹 점수가 4년 동안 유지되는 데다 출전과 비출전, 본선 순위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랭킹 점수는 주어지지 않지만, 남·녀 아시아선수권 대회(7~8월), 세계 유스 선수권 대회(8월), 여자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9월) 등 굵직한 국제대회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 중대한 시기에 한국 배구의 발전 방향을 세우고, 국가대표팀에 행정·재정적 뒷받침을 든든하게 해줘야 할 배구협회가 4개월이 넘도록 선장 없이 표류하고 있다.

항고심 결정 늦어지면, 행정·재정 큰 타격

서병문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사재 출연,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도입,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NVC) 건립 등을 약속하고, 초기 구상과 검토를 하던 단계에서 해임을 당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대의원(아래 비대위원)들은 서 회장의 공약 사항에 대한 불신, 일부 임원 인사에 대한 불만 등을 제기하며 해임 결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서 회장 측은 취임 2개월밖에 안된 상황에서 일도 시작해보기 전에 해임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에 승복하면 앞으로도 파벌 싸움에 의한 집행부 해임 사태가 반복되는 나쁜 전례를 남기기 때문에 끝까지 소송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서 회장의 소송 제기는 해임 결의 당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서 회장의 소송 자체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의원들이 집행부 전원 해임이라는 대사건을 밀어붙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중대 사안에 대해 면밀한 검토와 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구협회를 한국배구연맹(KOVO)으로 흡수 통합시키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배구협회는 대한체육회와 국제배구연맹(FIVB)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단체이기 때문에 규정상 없앨 수도 없다. 배구협회와 프로배구를 관장하는 KOVO는 역할도 다르다. 따라서 두 단체가 수레바퀴처럼 잘 운영되고 상호 협력이 절실하다.

대책도 없이 취임 2개월밖에 안 된 집행부 전체를 해임한 결과, 깊은 상처만 쌓여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해임이었는지, 현재와 앞으로 벌어질 난맥상에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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