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나미로 폐허가 된 우에노씨 댁. 이 마을에선 유일하게 남은 집이다. 집 앞에 아이들이 놀던 장난감 등이 놓여 있다. 이 사진은 지난 2015년 기자가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촬영했다. ⓒ 이두희
지난 2011년 3월 11일 쓰나미를 동반한 지진이 일본 동북지역을 덮쳐 약 2만여 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참사를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수만 명의 피난민이 있다. 그 일대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다.
죽음의 땅, 버림받은 땅에서 아직도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지난 15일, 나고야의 인디영화 영화관 '시네마 스코레'에서 다큐멘터리 <Life>(라이프) 특별 상영회가 열렸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3월 11일 참사로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는 이들과 5년 넘게 함께했다. <Life>는 지난해에 완성됐지만, 그동안 공동체 상영만 했다. 정식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삽자루 하나로 가족을 찾는 사람들영화는 쓰나미로 집 한 채 빼고 온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미나미소마시의 가이하마지역에서 손에 삽을 든 몇 명의 남성이 마을의 수로를 파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쓰나미로 행방불명이 된 이들을 찾는 수색작업. 그 중심에 있는 우에노 다카유키씨가 바로 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집의 주인이다. 그는 3.11 당시 함께 살던 노부모, 딸과 아들 둘을 쓰나미로 잃었다. 아내, 그해 9월에 태어난 딸 사리이와 함께 쓰나미로 폐허가 된 집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잊지 말라고까지는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다만 이곳이 어떤지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딸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업자들도 방사성 물질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도 다른 지역으로 피난했기 때문에 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만 3살이었던 아들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정부의 수색대도 방사능을 이유로 사고가 난 지 한 달도 더 지난 4월 20일에 도착했다. 그가 삽자루를 들고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서야 했던 이유다. 우에노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찾을 확률은 '0'이지만 누구라도 찾아 나선다면 적어도 '0'은 아니니까."
▲ 우에노씨 댁.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이 집도 결국 붕괴 위험 때문에 2016년 초에 철거했다. ⓒ 이두희
살 수 없는 땅이지만 떠날 수 없었다. 쓰나미가 삼켜버린 아이들이, 부모가 아직도 거기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다 무너져 버린 집 안에 들어서면 아직도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 나올 것만 같아 집을 부술 수도 없었다.
그 집을 끝까지 남겨서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게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무너진 집 옆에 새집을 지었다. 방사능이 번진 땅에는 오염을 제거해준다는 유채꽃밭을 만들었다. 부친이 남긴 땅에서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농사도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을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이곳에 살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우에노씨의 소박한 꿈인지도 모른다.
죄책감, 망설임... 5년 9개월 만에 마주한 딸기무라 노리오씨가 살고 있던 곳은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있는 오구마마치다. 그 역시 3.11 쓰나미로 아버지와 아내, 작은딸을 잃었다. 지금은 나가노에서 큰딸과 방사능 오염을 피해 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내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당시 만 7살이었던 작은 딸 유나는 찾지 못했다.
오구마마치는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매번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게다가 지금 사는 나가노에서 먼 곳이라 수색 작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방사능 오염이 심해 자원봉사자를 찾기도 어렵다. 지원자가 있어도 망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피폭시키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기무라 노리오씨가 끝없는 질문과 망설임에 괴로워할 때 함께 해 준 이가 바로 우에노씨다. 하지만 사람이 좀 늘었다고 해봐야 기껏 할 수 있는 건 삽자루 하나 들고 흙더미를 뒤지는 것뿐이다. 5년여의 세월 동안 가족들의 유품은 찾았지만, 딸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영화의 말미, 방사능 '오염물질 중간저장 구역' 설치에 앞서 환경성이 진행한 수색 작업에서 사람의 치아 일부분이 발견된다. DNA 검사 결과 그 치아는 기무라 노리오씨의 딸 유나의 것으로 확인된다.
멈출 수 없는 기억의 작업
▲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의 모습. 약 60여 석의 좌석이 꽉 찼다. ⓒ 이두희
이날 특별상영회에는 영화를 제작한 가사이 치아키 감독과 영화에 등장하는 기무라 노리오씨가 참석해 관객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가사이 감독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순간에도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무라씨는 딸 유나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의 기분을 묻자 "기쁘다기보다 오히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환경성의 수색이 시작되고 채 3주가 지나지 않아서 뼈를 발견했다. 이렇게 쉽게 발견될 것을 5년 9개월 동안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 영화 시작에 앞서 가사이 감독(오른쪽)과 영화에 출연한 기무라씨가 인사하고 있다. ⓒ 이두희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모습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구속되던 날 세월호가 올라왔다. 모두가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나, 도대체 이제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분노했다. 권력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일까. 역사 문제에 있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한국과 일본이, 왜 이런 문제에서는 이렇게도 꼭 빼닮은 것일까.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해 한목소리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듯, 우에노와 기무라 두 사람도 결국 기억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 아닐까. 그 기억은 개인적 기억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사회적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그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곧 저항이다. 기억을 남기기 위해 싸워나갈 이들에게 멀리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 영화 <라이프> 홍보물. 기억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응원한다. ⓒ Rain Field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