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로스터에 등록된 가드만 무려 12명이다. 하지만 이상민 감독이 믿고 내보낼 수 있는 가드 한 명 없는 게 삼성의 현주소다.

6강 플레이오프 내내 삼성은 안정적인 가드의 부재로 어려운 경기를 자처했다. 그나마 베테랑 주희정만이 중요 순간마다 기용되며 제 몫을 해줬다. 시즌 전, 김태술과 천기범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가드왕국'의 재건을 노린 삼성이기에 이런 부진은 더욱 뼈아프다.

한 때는 '가드왕국'이라고불리던 삼성이 어쩌다 '가드집합소'가 되어버린 것일까.

# 육성의 문제일까, 선수의 문제일까

삼성은 매 시즌 나쁘지 않은 신인 드래프트 순번을 받아 가드를 지명해왔다.

2013년에는 4순위로 박재현(현 상무)을 지명했으며, 2015년에는 이동엽을 5순위로 데려갔다. 그리고 지난해 황금 드래프트에서 4순위 지명권을 얻어 연세대의 천기범을 데려왔다. 오리온과의 트레이드로 2014년 7순위 가드였던 이호현까지 영입한 것을 포함하면 4명의 유망한 가드가 삼성에 입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모두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박재현은 가능성만 보여주다가 오리온과 트레이드됐으며, 이동엽은 올 시즌 후보로도 코트를 많이 밟지 못했다. 천기범은 6강 PO 내내 무리한 플레이와 미숙한 파울 관리를 보여주었다. 이호현 역시 트레이드 당시의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했다.

선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삼성 신인 가드들의 집단 부진은 우연은 아닌 듯하다.

천기범과 이동엽은 고교 시절부터 랭킹 1위를 달리던 선수들. 비록 대학 무대에서 기량이 정체되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가능성만큼은 충분했다. 박재현도 드래프트 당시에는 현재 리그 정상급 가드인 이재도(KT)에 비해 훨씬 좋은 평을 받았다. 이호현도 허웅(동부), 김기윤(KGC) 바로 후순위로 지명되며 당시에는 알짜 가드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삼성에 입성한 후 '삼성 가드 잔혹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상민 감독은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드들을 선발하나 그 많은 가드들을 육성하는 데에서는 물음표를 남겼다. 타 팀 감독들이 낮은 순번에도 신인 가드들을 지명해 키워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주희정은 선수생활로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주전 김태술도 34살로 적지 않은 나이. 어쩌면 지금 삼성에게 필요한 건 당장 믿을 만한 가드보다는, 내일의 삼성을 이끌 젊은 가드의 성장일 수도 있다.

# 크레익의 '매직 존슨놀이', 김태술에게 독이 되다

올 시즌 삼성에 트레이드된 김태술은 1라운드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1라운드 9경기 동안 11.0득점 5.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라운드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팬들은 김태술의 부활을 의심치 않았다. 소속팀 삼성도 리그 1위를 질주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김태술의 경기력과 함께 삼성의 순위도 떨어졌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크레익과의 공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레익 역시 전반기까지 내외곽에서 맹활약하며 '복덩이'란 찬사를 들은 용병. 거대한 몸집, 그리고 유연한 스텝을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덩크는 리그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당연히 라틀리프와 크레익이 공존하는 삼성 골밑은 '삼성산성' 그 자체였다. 힘도 좋지만 센스가 좋아 어시스트 능력도 발군이었다. 김태술 –크레익–라틀리프로 이어지는 화려한 플레이들은 삼성 팬들의 눈을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접어들자, 크레익의 플레이는 상대 팀에 의해 간파되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크레익은 무리한 플레이와 함께 볼 소유 시간도 늘어났다.단순히 볼 호그가 된 것을 떠나서, 본인이 가드 역할까지 소화하려는 '매직 존슨 놀이'를 하며 김태술의 영역을 침범했다.

김태술은 각자의 역할이 분업화될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가드다. KCC 시절에도 에밋과 전태풍의 원맨 농구로 인해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바 있다. 그런 김태술에게 크레익의 플레이는 독으로 작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즌 막판엔 부상까지 입으며 전자랜드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선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했다.

# 이제는 교통정리가 필요한 때

삼성의 선수단 구성을 살펴보면 가드만 12명이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포워드와 센터 선수는 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포워드 라인에서 믿을 만한 선수들은 김준일, 문태영, 임동섭뿐이다.

삼성이 그렇다고 12명의 가드를 다양하게 기용하는 팀은 아니다. 올 시즌엔 오히려 포워드인 임동섭이 슈팅 가드 역할을 소화해 굳이 가드가 많이 필요 없는 편이었다.

또 가드들 중에 믿고 중용될 만한 선수들이 없기도 하다. 최수현, 성기빈, 이호현, 이종구, 김태형 등은 거의 1군에서 쓰임이 없는 상태. 이동엽, 천기범, 이관희도 코트에 안정감을 주기엔 아직은 부족하다. 오히려 넘치는 가드 자원을 트레이드해 부족한 센터진을 보강하는게 우선처럼 보인다.

과거 삼성이 '가드 왕국'이라고 불리던 07-08시즌엔 단순히 가드가 많아서 가드 왕국이 아니었다. 로스터에 가드는 5명뿐이었다. 하지만 이상민, 강혁, 이정석, 이원수(현 이시준) 등 어느 팀에 내놔도 손색없는 가드들이 있었기에 그러한 별명이 붙은 것이다.

지금의 삼성 가드 라인업은 '가드 왕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드 집합소'에 가까운 모습이다. 당장 선수만 많을 뿐 중요한 순간에 기용할 만한 믿을맨이 없다. 더욱 문제인 건 바로 내년. 임동섭과 김준일이 상무 지원서를 냈고 이관희와 문태영은 FA로 풀리게 된다. 주희정은 당장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플레이오프 내내 가드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던 이상민 감독이 이러한 가드진을 개편하고 새로운 '이상민식 가드왕국'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주축 선수들의 이동이 예상되는 삼성 '가드 집합소'의 변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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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민강수기자
삼성썬더스 이상민 가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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