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 명단발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 명단발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이번에도 역시 정면돌파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시리아와의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2연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선수명단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마이 웨이'로 요약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에도 기존의 선수구성과 콘셉트에 큰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슈틸리케호에 처음 깜짝 발탁된 허용준(전남드래곤즈)이나 골키퍼 김동준(성남 FC)같은 의외의 발탁도 없지는 않지만 이들이 당장 슈틸리케호의 주전 경쟁이나 전술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의미를 지닌 발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슈틸리케의 '마이 웨이', 성공할까 

오히려 이번 대표팀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모두 슈틸리케호에서 한 번 이상 발탁되며 점검을 마친 선수들이다. 이중 최근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거나 소속팀에서의 경기력에도 의문부호가 붙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최근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일부에서는 대표팀 발탁설이 거론되던 염기훈(수원), 이창민·안현범(이상 제주), 이명주(알 아인), 이근호-정조국(이상 강원) 등은 끝내 외면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앞으로도 자신이 '잘 알고 익숙한 선수들' 위주로 남은 경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속내를 보여준 대목이다.

물론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권한이고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여 결과로서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대표팀을 둘러싼 상황이 원론적인 이야기로 적당히 무마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대표팀은 5경기를 치른 최종예선 전반기를 승점 10점(3승1무1패)으로 마치며 이란(11점)에 이은 본선직행권인 A조 2위로 마쳤지만,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차로 쫓기고 있다. 더구나 이란-우즈벡 등 강팀들과의 경기가 최종예선 막판에 몰려있는 만큼, 한국은 중국 원정과 이어지는 시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최대항 승점을 확보하여 격차를 벌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6차전이 원정경기인데다 최근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 체제로 전환하여 마지막 총력전을 선언했고, 한중 양국의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까지 더해지며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만일 중국 원정에서 비기거나 패하기로 할 경우, 슈틸리케호의 최종예선 행보는 가시밭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슈틸리케 감독의 현재 입지도 안정적인 편이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 이후 기복 심한 경기력과 논란의 언행으로 팬들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지난 이란과의 4차전 패배 직후에는 경질설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다행히 우즈벡과의 홈경기 역전승으로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용병술과 판단력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선수명단에서 논란의 핵심은 슈틸리케 감독이 여전히 불안한 자신의 '플랜 A'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는 의구심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호하는 팀 구성의 성향을 분석해보면 자신의 부임 초기에 발탁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 해외파(특히 유럽과 중국리그 소속)에 대한 무한 신뢰. 원톱 전술과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에 대한 미련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강팀들을 상대하는 최종예선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 A는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한국은 최종예선 5경기에서 8골을 넣었지만 최전방 공격수가 기록한 득점은 전무했다. 지동원-이정협 등 슈틸리케 감독이 선호하는 연계능력에서 강점을 보이는 공격수들은 최전방에서 고립되기 일쑤였고 한국은 무의미하게 공만 돌리다가 상대의 역습 한방에 실점을 허용하며 실속없는 점유율에 그치기 일쑤였다. 오히려 플랜 B로 취급받던 김신욱이 투입되어 공중전 위주로 직선적인 공격루트를 시도하여 후반에 경기 흐름을 뒤집은 경우가 더 많았다.

중국파 위주로 구성된 수비진은 2차예선까지만 해도 무실점으로 안정된 수비력을 뽐냈으나 최종예선에서는 5경기에서 벌써 6실점을 허용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매경기 바뀌는 포백 라인에서 중국리그 소속 수비수들의 부진이 연이어 도마에 오르며 '중국 현지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올시즌 중국 슈퍼리그의 외국인 제한 정책으로 출전시간에 직격탄을 맞은 한국 수비수들은 경기감각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선수 활용에 대한 고정관념, 슈틸리케의 패착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만 해도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들을 중용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이 원칙은 어느 사이엔가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이번 대표팀만 하더라도 기성용, 곽태휘, 김기희, 장현수, 이정협 등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못했거나 소속팀에서도 그리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들 모두 슈틸리케호의 플랜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선수들로, 바꿔 말하면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들에 대한 의존도를 대체할 만한 카드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난 2년여간 보여준 모습을 봤을 때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적 유연성이 뛰어나거나 다양한 패를 지닌 감독은 아니다. 이제부터 당장 매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최종예선 후반기에 돌입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 활용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혔다는 비판은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슈틸리케 감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당장 이번 중국전에서 에이스 손흥민이 경고누적으로 출장이 불가능하고, 기성용과 곽태휘도 완전한 컨디션을 장담하기 힘들다. 이재성과 이청용은 부상과 경기감각의 문제로 각각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K리그나 국제무대에서 이미 실적이 검증된 베테랑들을 굳이 외면하고, 대신 발탁된 허용준이나 고명진, 정우영, 한국영 등이 유사시 주전들의 대체자 역할을 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비라인에서도 홍정호,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파들의 컨디션에 따라 안정감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최종예선 전반기의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가 결여된 선수선발을 이번에도 고집한 슈틸리케 감독이다. 독기를 품고 한국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국과의 원정 고비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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