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시나 큰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국가대표팀 수비진은 중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중심이었다. 허용준이란 깜작 발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훌륭한 모습을 보인 선수들은 대표팀과 거리가 멀었다. 아이러니하다.

선두 이란에 승점 1점 뒤진 조 2위란 성적은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다. 2위까지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3위 우즈베키스탄보다 승점 1점을 앞서있다. 한 번만 미끄러지면,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A조 하위권에 내려가 있는 중국(6위), 카타르(5위)와 똑같은 5경기 6실점, 그럼에도 수비에는 변화가 없다. 심지어 중국 슈퍼리그의 제도 변화로 인해 올 시즌 경기에 나서고 있는 선수는 홍정호뿐이다. 김기희는 2017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만 출전했을 뿐이고, 장현수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베테랑' 곽태휘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 출전이 확실치 않다.

중원을 보자. 기성용은 부상으로 인해 40일 넘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상에서 돌아와 팀 훈련에는 복귀했지만, 경기 감각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기성용의 대표팀 발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 대표팀에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몸 상태다. 기성용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말대로 김보경이 플랜 B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세종이나 신형민을 발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명주의 대표팀 복귀 무산이다. 지난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대표팀 복귀는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아쉬운 이명주, 또다시 무산된 대표팀 복귀

올 시즌 역시 이명주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다. 이명주는 2016·2017 UAE 리그 20경기에 출전해 중원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서고 있고, 득점은 없지만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무엇보다 팀의 상징인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플레이에 능하다는 점은 대표팀 탈락에 있어서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명주의 플레이 스타일은 K리그에서 뛸 때와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K리그에서는 공격적인 역할에 충실했다면, UAE 무대 진출 이후 수비적인 부분과 공수 연결고리 역할에 눈을 떴다. 박지성을 떠올리는 엄청난 활동량, 공간 커버, 상황에 따라서는 중앙 수비수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전북 현대와 2016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 2차전에서 보았듯이 알 아인 공격의 시작은 이명주다. 팀의 빌드업 과정을 책임지고,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 결승전 2차전에서 전북의 골망을 갈랐던 발리슛은 그의 골 감각이 살아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기성용의 대체자로서 가장 알맞은 선수이고, 파트너로는 훨씬 더 좋다. 이명주는 수비나 공격 한쪽에만 치우친 선수가 아닌, 현대 축구가 선호하는 공수 모든 부분에 관여할 수 있는 선수다. 공격이든 수비든 어떤 능력을 보더라도 유럽파를 제외한 이번 대표팀 미드필드진이 이명주를 앞선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정협은 가능한데 '왜' 안현범은 안되나 

슈틸리케의 황태자는 누가 뭐래도 이정협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를 발굴했고,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맹활약을 선보이며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활발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이 가능하고, 연계 플레이에 능해 손흥민, 구자철 등 2선 자원의 득점력을 살려줄 수 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정협은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 무대에 도전해 30경기 4골에 그쳤다. 올 시즌 클래식보다 한 단계 낮은 챌린지에서 연속골을 뽑아내고 있지만, 국가대표팀 최전방을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또다시 이정협을 불러들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전북의 아시아 챔피언 등극의 주역이자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골맛을 본 김신욱을 여전히 플랜 B로 취급할 가능성이 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슈틸리케식 축구가 김신욱을 활용한 '뻥축구'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증명됐음에도 말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K리그 클래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정협은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지난 시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안현범의 데뷔는 또다시 미뤄졌다는 점이다. 안현범은 2016시즌 K리그 클래식 28경기에 나서 8골 4도움을 기록했다. 풀백과 측면 공격수를 모두 맡을 수 있고,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득점 감각까지 갖췄다.

올 시즌 역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K리그 클래식 2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 중이고, 2017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더군다나 오는 23일 중국과 경기에서는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현범과 같은 대체 자원 발탁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기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지동원과 남태희 등은 측면 자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됐음에도 말이다.

물론 국가대표팀 선수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은 감독에게 있다.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변화 없이 그대로 안고 간다면, 의문과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잠재우고 싶다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내용과 결과로 증명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슈틸리케 감독은 그러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에 있어서 원칙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감독 개인이 선호하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우리 대표팀은 아쉬웠던 2016년과 다른 2017년을 보낼 수 있을까. 2017년 첫 A매치를 앞두고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명단이 발표된 날, 왠지 모르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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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월드컵 최종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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