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은 변수가 상당히 많은 스포츠로 통한다. 1위로 달리고 있다가도 갑작스럽게 미끄러 넘어져 메달을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는 그런 대회였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10~12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당초 여자부에선 4년 연속 종합 우승 자리를 지킬 것으로 봤고 남자부는 혼돈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최강 원투펀치'를 자랑하는 심석희(한국체대)와 최민정(성남시청)은 유럽의 텃세와 이해할 수 없는 판정에 울어야 했다. 반면 남자부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서이라가 대활약을 하며, 4년 만에 다시 종합우승을 되찾아 오는 대약진을 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를 통해 2016-2017 시즌을 마무리 한 쇼트트랙의 남녀 대표팀을 나눠 정리해본다.

 심석희의 레이스 모습

심석희의 레이스 모습 ⓒ 박영진


심석희-최민정, 불운과 레이스에서 쓰디 쓴 완패

심석희와 최민정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 여자 쇼트트랙의 최강자이다. 올 시즌에도 이들은 월드컵에서 수없이 많은 금메달을 쓸어 담았고 각자의 종목에서 항상 최상위의 성적을 냈다. 그랬기에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심석희는 2014년 이후 두 번째 월드 챔피언을, 최민정은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3연패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엘리스 크리스티(영국)라는 큰 산이 생각보다 너무나 컸다. 첫 경기였던 1500m부터 작전에서 어긋났다. 김지유(화정고)까지 세 선수가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줄곧 후미에 뒤처져 경기를 펼치다가 선두에 있던 엘리스 크리스티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그대로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여기에 크리스티는 500m도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기에, 결국 500m 역시 결승에 올라 포인트를 획득했다. 반면 최민정은 1500m 결승에서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가 고의적으로 밀치는 방해 속에 억울하게 넘어져 제대로 경기를 하지도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최민정은 1000m에서도 어이없는 실격 판정으로 고개를 떨궈야 했다. 1000m 결승에서 엘리스 크리스티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지만, 마지막 바퀴에서 인코스 추월을 허용했고 2위로 통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심판들은 최민정이 엘리스 크리스티의 레이스를 방해했다고 판단해 황당한 실격 처리를 내렸다.

이번 대회 개인전을 돌이켜 볼 때, 올 시즌부터 위험 대상으로 분류돼온 엘리스 크리스티의 추격을 막진 못했다. 특히 레이스 운영에 있어 크리스티보다 항상 뒤쪽에 자리해 레이스를 하다 보니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작전을 그대로 수행한 탓에 다시 허를 찔리고 말았다. 여기에 엘리스 크리스티의 기량이 절정에 달해 있으면서, 두 선수는 스피드와 경기 운영에서도 크리스티에 쓰라린 완패를 당했다.

야박했던 판정과 크리스티의 대 질주는 '쌍두마차' 심석희와 최민정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엘리스 크리스티(가운데)의 모습

엘리스 크리스티(가운데)의 모습 ⓒ 박영진


엘리스 크리스티 경보가 울리다

올 시즌 여자 쇼트트랙은 평창을 앞두고 엘리스 크리스티라는 큰 산이 등장했다. 그녀는 과거 500m에만 강한 선수로 활약했지만, 체력이 향상되면서 1000m까지 능해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 그녀는 1500m와 3000m까지 전 종목에 걸쳐 엄청난 스피드를 내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지난달 열렸던 5,6차 월드컵 대회와 유럽선수권까지 모두 출전하지 않고 오로지 이 대회만을 준비해올 정도로 철저했다.

월드컵에서 심석희와 최민정은 이 선수에게 몇 차례 허를 찔린 바가 있다. 그렇기에 이번 세계선수권은 엘리스 크리스티를 향한 설욕전을 펼치기 위한 기회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작전을 쓰면서 결국 또 다시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여기에 엘리스 크리스티의 막판 스피드가 엄청나게 향상되면서 심석희와 최민정이 이제는 단순 스피드가 아닌 경기운영 싸움에서 크리스티를 이겨내야 하는 단계가 됐다.

엘리스 크리스티가 스피드와 체력이 엄청난 것은 맞지만, 레이스에서의 자세는 다소 위험한 감이 없잖아 있다. 동작을 크게 타며 레이스를 하다 보니 뒤쪽에 있다가 엘리스 크리스티를 추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칫 팔 동작에 의해 진로에 방해를 받거나 넘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렇기에 초반부터 선두에서 레이스를 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의 텃세판정 역시 한국 여자 선수들을 울렸다. 이번 대회의 판정은 남녀 모두 유럽 선수들에게 후했던 반면 한국 선수들에게는 너무나 박했다. 첫날 1500m 준결승에서 엘리스 크리스티는 일본 선수 2명을 손으로 넘어뜨리는 위험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심판들은 아무런 실격판정을 주지 않았다. 반면 심석희는 500m와 1000m에서, 최민정은 1000m 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았다. 여자 선수들은 계주에서도 6바퀴를 남기고 김지유가 중국 선수를 인코스로 추월하는 과정에서 밀었다는 판정을 받아 실격됐다. 결국 이번 대회에서만 한국팀이 받은 실격은 무려 7개로, 타 팀에 비해 무려 3~5배 이상 많았다.

 최민정의 레이스 모습

최민정의 레이스 모습 ⓒ 박영진


평창 전 교훈으로 삼아야

여자 쇼트트랙은 월드컵 시리즈 내내 대활약을 펼치며 무수히 많은 활약을 해왔다. 특히 심석희, 최민정과 함께 올 시즌 새로이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지유는 이번 대회 최대 수혜주였다. 김지유는 월드컵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쥔 바 있는 검증된 신예로 고른 활약을 한 덕에 이번 대회 개인전에도 출전했다. 김지유는 500m부터 3000m 슈퍼파이널까지 전 종목에서 고르게 포인트를 획득했다. 특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500m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것은 이 선수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결과 김지유는 심석희에 이어 종합순위 4위에 올랐다.

또한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제는 단순히 중장거리만 잘 탄다고 해서 월드 챔피언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우승한 엘리스 크리스티와 2위를 차지한 마리안느 셍젤레는 모두 500m부터 3000m 슈퍼파이널까지 전종목에서 결승에 올랐다. 특히 두 선수는 과거엔 500m 전문 선수였는데 이제는 중장거리까지 섭렵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구력을 바탕으로 중장거리에만 치중하던 한국 선수들 역시 이제는 올라운드 형태로 변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심석희와 최민정은 월드컵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전종목에서 능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비시즌 기간 다시 체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 과제도 있다. 심석희와 최민정은 2주 전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뒤 곧바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반면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엘리스 크리스티는 월드컵 후반부와 유럽 선수권까지 모두 기권한 채 이번 경기에 참가했다. 실제로 이번 경기에서 특히 최민정의 레이스는 다소 지쳐 보이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반면 엘리스 크리스티는 기량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세계선수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홈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이 대회에서 피날레를 맞이하기 위해선 휴식과 함께 다시 체력을 끌어 올려야만 한다. 오히려 평창이 아닌 그 전 대회에서 이런 아쉬움과 쓰린 아픔을 맞이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이를 교훈으로 삼으며 다음 올림픽 시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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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심석희 최민정 평창동계올림픽 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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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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