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은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소수자' 서사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소수자끼리 서로를 죽고 죽이게 하는 것이다.

영화 <로건>은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소수자' 서사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소수자끼리 서로를 죽고 죽이게 하는 것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엑스맨>은 영웅을 통해 들려주는 소수자 서사였다. <엑스맨> 시리즈의 찰스 자비에(프로페서X)가 마르틴 루터 킹, 매그니토가 맬컴 엑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하다. 일반인과는 다른 능력과 생김새를 지닌 소수자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사회는 이들을 포용하는 척하면서도 반대로는 배척해왔다.

영화 <로건>은 그 서사의 극단이다. 로건(울버린)과 찰스, 칼리반을 제외하고는 전편에 출연했던 모든 돌연변이가 사라진 세상. 정부의 비호를 받는 기업은 기존의 돌연변이들을 사냥하며 이들의 유전자로 돌연변이 아이들을 '생산'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로라'다. 여느 영화에 나왔던 장치다. 국가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소수자들의 유전자를 군사화하려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로건>이 택한 서사의 방법

 로건과 로라를 쫓는 용병 집단은 모두 사지 중 하나가 없는 이들이다. 리더인 도널드은 기계 오른팔을 가진 사이보그다.

로건과 로라를 쫓는 용병 집단은 모두 사지 중 하나가 없는 이들이다. 리더인 도널드은 기계 오른팔을 가진 사이보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하지만 그 과정은 여느 영화와 사뭇 다르다. 기업이 양산한 돌연변이를 관리하고 로건과 찰스를 좇는 용병 집단은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들은 모두 팔과 다리가 한 개씩은 없는 '장애인'이다. 다만 기계 팔과 다리를 얻어 자유자재로 손발을 놀릴 수 있을 뿐이다. 사이보그 용병 집단의 리더인 '도널드 피어스'는 로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옛날 당신 팬이었어.' 아직 기계 팔과 다리가 보급되기 이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했을 도널드에게 소수자 영웅인 로건은 우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의 힘을 통해 신체적 장애를 극복해 소수자 대열에서 벗어난 도널드는 어느새 로건을 향해 비아냥을 쏟아내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주체가 된다. 과거의 소수자가 현재의 소수자를 탄압하는 형국이다.

로건의 젊었을 적을 빼다 박은 살인 병기인 X-24가 로건을 공격하는 설정은 이런 상황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X-24는 찰스를 죽인다. X-24의 제작자인 잰더 라이스 박사는 'X-24에게는 아이들한텐 없는 것을 넣었지. 분노 말이야'라고 말한다.

미국의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들이 본인과 별반 실상이 다르지 않은 이민자들을 혐오하게 된 것처럼 권력은 가장 닮은 계층 사이의 분열을 조장한다. 멕시코인들이 백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무슬림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말들로 인해 분노가 싹터 서로서로 의심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자신을 가장 닮은 상대방인 로건을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쉬지 않고 베고 찌르는 X-24의 모습처럼 말이다.

권력의 속성

 박영수 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엄마부대 등 친박단체 회원들이 단핵각하를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박영수 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엄마부대 등 친박단체 회원들이 단핵각하를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 이희훈


지금 태극기 집회를 이용해 일신의 안위를 꾀해보려는 권력의 메커니즘도 이와 같다. 현재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노년층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젊은 층을 '빨갱이'로 몰고 있다. 죽여 버려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노년층이나 젊은 층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외면해 왔던 계층이다. 박근혜 정권에 와서 노인빈곤율은 계속 상승했고 청년실업률도 떨어질 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먼저 져버렸던 공약이 바로 노인연금과 반값등록금이다.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청년과 노인은 가장 닮은 '취급을 받아온' 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친박 정치인들,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 극우단체의 지도층들은 이 사실은 숨긴 채 '가장 닮은 자신을' 물고 뜯도록 종용한다. 그 과정에서 쓰이는 것은 '빨갱이', '좌빨', '북한', '김정은' 등 6.25 세대의 분노를 극대화하는 용어들이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이 기각된 이후 노인층을 가장 먼저 챙길까. 영화의 내용 밖을 상상해보자. 잰더 박사에게 X-24는 어떤 의미일까. 잰더 박사는 X-24가 개발되자 돌연변이 아이들을 모두 '폐기'하려고 명령한다. 그는 X-24보다 더 나은 X-25가 개발됐을 때 X-24조차도 폐기할 것이다. 애초부터 도구는 쓸모가 다 하면 버려지는 법이다. 이 추한 권력은 이제 쓸 도구도 다 떨어졌나 보지 국민마저도 일신 보존을 위한 도구로 쓰고 있다. 탄핵이 기각된다면, 그리하여 태극기 집회도 마무리된다면 박근혜 정권이 노인층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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