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 뭐하냐?"
"나? 글 쓰지."
"무슨 글?"
"<문라이트>라고 얼마 전에 본 영화 리뷰."
"어떤 영화인데?"
"그 아카데미 작품상 받은 영화야. 재밌어 너도 봐봐."
"그게 끝이야? 스토리는?"
"음….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지."

내 생각에 내가 어떤 회사의 마케팅부서에 들어간다면 그 회사는 망했다. 친구의 도통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읽은 나는 그제야 "예고편을 봐"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분명히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어떤 이야기가 중심이고, 어떻게 영화 전체가 움직이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브래드 피트, 미안해요.

'<보이후드>의 흑인판' '진흙 속 진주 같은 영화'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에 울림을 주는 영화', '세계 유수의 영화제 158관왕에 빛나는 영화' 등등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젊은 감독의 스토리, 세계적인 배우 브래드 피트의 제작 등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은 말 그대로 정말 많다. 하지만 위의 수식어 중 어느 하나도 이 영화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으로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세 편의 PART로 구성된 영화는, 이름조차 빛나는 '문라이트'의 주인공 샤이론의 이야기를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다. PART1 '리틀', PART2 '샤이론', PART3 '블랙'의 각각 이름은 사실 주인공의 여러 별명이다. 한때 영화를 좀 찍으러 다녔던 나는 항상 영화를 볼 때 어떻게 찍었을까, 콘티는 어떻게 짜고, 플롯 구성과 스토리라인은 어떤가를 고민하면서 보는 편이다. 근데 이 영화. 진짜 엄청나다.

[PART 1] 리틀
 영화 <문라이트>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후안이다. 이 배우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신 분이라면 다 아는 바로 그 배우다. 진짜 멋있다.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배우 했을 텐데. 이름은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Mahershalalhashbaz Ali). 진짜 좋아하는 배우인데 안타깝게도 외우기엔 이름이 너무 어렵다.

마약상인 후안의 눈에 띤 샤이론(리틀). 학교 깡패들에 쫓긴 샤이론(리틀)을 안타깝게 생각한 후안은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다. 절대 처음 본 사람에겐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인생의 철학이라도 있는 걸까. 도통 말을 하지 않는 샤이론(리틀).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나 이외의 타인에 대한 배척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낯선 이의 거부감이 심했다면 아마 밥을 먹으러 후안의 집에 무작정 따라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서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아들처럼 대해주는 후안에게 어느 날 샤이론(리틀)이 이런 질문을 한다.

"호모가 무슨 뜻이죠?"

깡마른 샤이론(리틀)을 호모, 게이라고 놀리는 학교 친구들. 후안은 샤이론(리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게이일 수는 있지만, 호모일 수는 없는 거야."
"내가 게이인 건 어떻게 알죠?"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게 될 거야."

시간이 지나고, 물을 무서워하는 샤이론(리틀)에게 후안은 수영을 가르쳐 준다고 제안한다. 두려워하는 샤이론(리틀)에게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며 막상 해보면 그렇게 두렵지 않다고. 물이 널 잡아먹지도 않는다고. 마치 세상도 그런 것처럼 후안은 그렇게 굳게 닫힌 어린 소년의 마음을 연다.

"언젠가 때가 되면, 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할 순간이 올 거야. 절대 누군가가 그 결정을 대신하게 내버려 둬선 안 돼. 절대."

[PART 2] 샤이론

 영화 <문라이트>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시간이 흐르고, 10대 사춘기 시절을 보내게 된 샤이론(샤이론). 그에게는 케빈이라는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아마 떠올리게 되는 친구. 그런 친구가 샤이론(샤이론)에게도 한 명 생겼다.

"나 어제 계단에서 그 예쁜 여자애랑 하다가 걸렸어. 야 하마터면 정학당할 뻔했다. 친구 정학당할 뻔했다고. 야 블랙, 듣고 있어?"
"어…. 근데 넌 왜 날 자꾸 블랙이라고 부르는 거야?"
"블랙, 멋있잖아. 싫어? 친구가 멋진 별명 만들어서 부를 수도 있지. 물론 네가 싫다면 그냥 샤이론이라고 부르고."
"아냐, 좋아."

그날 밤,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케빈의 꿈을 꾸며 몽정하는 샤이론(샤이론).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그렇게 서로의 우정을 쌓던 중, 후안의 기억이 남아있는 해변에서 서로 애무하며, 마음을 확인하는 케빈과 샤이론(샤이론). 나 이런 적이 처음이냐고 말하는 샤이론(샤이론)의 손을 꼭 잡아주는 케빈.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학교 깡패들에 의해 서로를 때려야 하는 케빈과 샤이론(샤이론). 두들겨 맞는 샤이론(샤이론)에게는 때리는 케빈보다, 케빈을 때리게 하는 저 깡패 한 놈이 더 눈에 들어온다. 구경꾼들이 모두 사라지고, 의자를 들고, 수업에 무작정 들어가 아까 기억해 놓은 깡패 한 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샤이론(샤이론). 그리고 경찰에 연행되는 샤이론(샤이론)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쳐다보는 케빈의 모습. 그렇게 PART 2가 끝난다.

[PART 3] 블랙

 영화 <문라이트>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어린 시절 기대고 의지했던, 후안처럼 성장한 샤이론(블랙). 어느 날 케빈에게 갑작스런 연락이 온다.

"나 참 셰프 됐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가게에 어떤 손님이 노래를 하나 틀었거든? 네 생각이 나더라. 언제 시간 나면 한번 들러."

이튿날 곧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달려간 샤이론(블랙). 가게에 가보니, 정말 케빈은 셰프다.

"어서 오세…. 잠깐만…. 너 샤이론이지? 하나도 안 변했네. 뭐 이렇게 갑자기 와. 오기 전에 연락하지."
"어…. 그냥…."

마약상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터프한 마약 거래 1인자인 샤이론(블랙)은 케빈을 본 순간, 그때 그 시절의 샤이론(샤이론)으로 돌아간다.

"셰프 스페셜 요리로 할 거지? 기다려봐. 내가 만들어 줄게."

맛있게 요리를 먹고, 둘을 만나게 해준 노래까지 들은 둘. 시간은 늦었지만 두 사람 모두 헤어지기가 쉽지 않다. 오늘 어디서 잘 거냐는 케빈의 물음에 케빈의 집으로 차를 모는 샤이론(블랙).

"나를 그렇게 만져준 건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케빈의 집에서 케빈을 향해 샤이론(블랙)이 던진 한마디. 둘은 서로에 기대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극 중 배경인 마이애미에 가면,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이런 비슷한 류의 경험을 이야기할 법한 스토리. 이런 스토리도 좋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보이후드와 문라이트는 이 부분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는 걸 하고 영화판에 뛰어들게 한 보이후드와 달리 문라이트를 보고선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니, 역시 나도 철이 좀 들긴 했나 보네.

마약상 말고는 의지할 어른이 없는 꼬마 소년. 별명을 부르는 학교 깡패들에 시달려, 친구의 애정이 담긴 별명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청소년. 진정한 사랑을 느낀 청년. 이 모두가 어찌 보면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짐작을 넘어선 확신. 특히 나라 전체가 두 의견으로 나뉘어, 의견의 다양성은 존중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만 주장하고, 심지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겠다고까지 협박하는 작금의 시대 상황 속 우리 국민에게 문라이트는 더욱 분명한 울림을 준다. 미국도 인종 문제로 온 나라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니, 미국민도 포함해야겠다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다양성의 미학을 이유로 아카데미가 올해 작품상을 주었다고 이야기하긴 힘들다. 보는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소외된 계층에게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강렬한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이다. 숨 막히는 연출과 OST, 각종 미장센과 메타포로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제목처럼, 달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문라이트>. 그나저나 이걸 30대의 나이에 만들었다니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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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세무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입생 첫 수업 과제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감명 받은 바람에,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동기생들과 다르게 프랑스로 떠나, 바게뜨와 크로와상만 주구장창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프랑스 빵이 정말 맛있다는 점과 토마 피케티를 매일 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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