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감독 루이스 엔리케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바르셀로나의 감독 루이스 엔리케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 EPA/ 연합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FC바르셀로나의 수장 루이스 엔리케의 시대가 끝을 향하고 있다. 엔리케 감독은 올 시즌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비난에 시달리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파리 생제르망 FC와의 경기에서 0대4의 참패를 당하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재계약과 경질 사이에서 수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엔리케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만료되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시즌 내내 1위에 위치하던 레알마드리드를 2위로 끌어내린 날의 발표된 의외의 결정이었다.

'선수빨'이라는 오명 속에 바르셀로나 감독 커리어를 이어오던 엔리케 감독의 끝이 정해지자 벌써부터 언론은 후임 감독을 추측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팬들 또한 떠난 자리를 어떤 유능한 감독이 대신할지에 대해 고대하고 있다.

과르디올라와의 이별과는 다르게 엔리케와의 작별은 다소 환영받는 모양새다. 물론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 새긴 족적이 워낙 뚜렷하기에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엔리케가 받는 평가가 부당한 것은 사실이다. 엔리케 또한 바르셀로나의 지난 10년간의 성공에 일조한 것은 물론이고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의미있는 유산을 남기고 가기 때문이다.

# 트레블과 8개의 트로피

엔리케를 향한 비난의 정도와는 반비례하게 엔리케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무려 8개의 트로피를 수집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참가한 대회가 10개인 것을 감안하면 트로피 8개라는 수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드러난다. 이러한 성과는 FIFA로부터 2015년 겨울 이적 시장부터 1년간 '영입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아가면서 이뤄낸 눈부신 성과다.

특히 부임 첫 시즌인 2014-2015 시즌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8100만 유로라는 거액에 영입한 루이스 수아레즈가 FIFA의 징계에 의해 10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될 수 있었고, 바르셀로나의 두뇌와도 같았던 사비의 노쇠화가 있었음에도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은 막강했다.

엔리케 부임 이전 중앙 지역에서 활약하던 메시를 다시금 오른쪽 측면에 배치시킨 선택이 결정적이었다. 엔리케 감독은 중앙 지역에 위치해 사방에서 압박을 받던 메시에게 한 쪽에서만 압박을 받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활동량과 수비력이 좋은 라키티치를 메시를 보좌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해 메시에게 수비 부담을 줄여줬다. 엔리케로 인해 완전한 자유를 부여받은 메시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메시의 놀라운 플레이를 중심으로 바르셀로나는 사상 최초의 '한 클럽 두 번째 트레블'이라는 역사를 썼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바르셀로나는 UEFA 슈퍼컵과 클럽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2015년에만 5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는다. 지난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탈락했지만 리그 우승과 스페인 국왕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더블'을 기록했다. 올시즌도 탈락이 거의 확실시되는 챔피언스리그를 제외한 리그와 국왕컵에서는 여전히 우승에 가깝기에 엔리케가 남길 트로피는 8개가 아닌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 MSN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리오넬 메시' 선수.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리오넬 메시' 선수. ⓒ flickr.com


바르셀로나는 물론이고 세계 축구 역사의 가장 깊게 새겨질 공격수 '트리오' 조합을 엔리케가 만들어냈다. 바로 메시(M)-수아레즈(S)-네이마르(N)로 이어지는 'MSN'이다. 지난 10년간 바르셀로나의 성공에는 반드시 공격수 트리오 조합이 존재했다. 호나우지뉴-에투-메시로 구성되었던 'REM' 조합부터 메시-비야-페드로가 만들어낸 'MVP'라인까지 바르셀로나의 공격진은 항상 막강했다.

그러나 MSN을 따라올 수 있는 조합은 없었다. 기록이 말해준다. 이번 시즌 국왕컵 준결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터진 수아레즈의 골로 MSN 세 선수가 넣은 총 득점이 300골을 넘었다. 한 시즌 평균 100골이 넘는 득점 수치다. 유럽 최정상의 클럽을 제외하고는 시즌 내내 기록한 골이 100골 미만인 팀이 대부분인 현실을 알면 단 세 명의 선수가 한 시즌에 100골 이상의 기록하는 파괴력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기록의 밑바탕은 MSN을 구성하는 세 선수의 개인 능력이 가장 크지만, 이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것은 엔리케 감독이다. 세 선수 모두 기존 클럽에서는 물론이고 국가대표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데, 특출난 '에이스' 세 명이 만나면 응당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메시 중심의 전술에 뿔이 난 이브라히모비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엔리케의 지휘 아래 바르셀로나는 '행복셀로나'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로 내분이 없었다. 행복한 팀에게 불화는 없었고 세 선수는 매번 즐겁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전술적으로도 엔리케는 MSN에게 꼭 맞는 옷을 선물했다. 세 선수 모두의 공격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라키티치는 물론이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니에스타도 이전보다 수비에 적극 가담케하여 세 선수가 공격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과르디올라 시절부터 이어오던 짧은 패스 중심의 점유율 축구를 벗어 던지고 직선적인 롱패스와 빠른 역습을 기존 바르셀로나의 철학에 접목했다. 극도의 점유율 축구로 인해 야기되는 상대의 좁은 수비라인이 아닌 빠른 역습 축구가 만들어 내는 넓은 공간 속에 MSN은 '물만난 고기'처럼 상대 진영을 휘저었다.

# 젊은 바르셀로나

젊은 바르셀로나야말로 엔리케가 남긴 진짜 유산이다. 트로피는 이미 과거의 영광이고 메시와 수아레즈의 나이가 30세를 넘겼기에 MSN 또한 이전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젊어진 바르셀로나의 선수단은 엔리케의 진정한 유산으로서 바르셀로나가 맞이할 미래에 큰 버팀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바르셀로나 최후방의 현재이자 미래인 테어 슈테켄 골키퍼가 있다. 지난 시즌까지 컵 대회 위주로 출전했던 슈테켄이지만 올 시즌에는 주전 골키퍼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시즌 초반 셀타비고와의 원정에서의 치명적인 실수 등으로 능력에 의문 부호가 따라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한 발기술과 선방능력이 빛나면서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마스체라노와 알바의 잦은 부상과 알베스의 이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수비 속에서도 바르셀로나가 현재 두 개의 트로피를 가시권 안에 두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슈테켄의 존재감 때문이다.

슈테켄 이외에도 페드로 이후 끊겼던 '라마시아'의 유산을 이어가는 세르지 로베르토와 하피냐 알칸다라는 느려진 바르셀로나 미드필드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또한 올 시즌 새롭게 영입된 움티티는 마스체라노의 공백을 비교적 잘 메우고 있다. 움티티와 함께 영입된 루카 디뉴와 데니스 수아레즈 또한 로테이션 맴버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 대부분 로테이션 맴버로 활용되고 있지만, 모두 만 25세 이하이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기회가 주어지면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축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될 트로피, 현재 최고의 공격력을 뽐내는 MSN, 바르셀로나의 미래가 될 젊은 선수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모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 엔리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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