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의 한 장면.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지난 8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의 한 장면.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 SBS


SBS <사임당, 빛의 일기>(아래 <사임당>)에 따르면 어린 신사임당(박혜수 분)은 천재성을 가졌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남자 이겸(양세종 분)을 만나 혼인을 약속하지만 뜻하지 않게 이겸과 헤어지고,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덧 인자한 인품을 갖춘 여인으로 성장한 사임당(이영애 분)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 탐을 내는 동생들과 달리, 오직 아버지가 즐겨 읽던 책에만 마음을 품는 청렴한 면모를 보인다. 자신과 달리 철없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남편 이원수(윤다훈 분)때문에 어린 자식들과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남편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자신이 생계를 책임질 테니 암자에 들어가 공부에 전념할 것을 권한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다독이는 것도 온전히 사임당의 몫이다.

<사임당>에 등장하는 사임당은 그 흔한 결점 없는 완벽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결혼 직전, 아버지 신명화(최일화 분)를 죽음까지 몰고 간 대형사고를 거하게 치긴 했지만, 사임당의 잘못이 아니라 못된 어른들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비롯된 참사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심지어 자녀 교육까지 완벽한 사임당이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을 비롯한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사로운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임당은 다 잘하고 있는데 그녀의 깊은 뜻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한 술 더 떠 사임당의 재능을 시기 질투하기 바쁜 사람들이 문제다.

아무리 살펴봐도 단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하고 선한 기품을 가진 사임당은 이영애 최고 출세작인 MBC <대장금>의 주인공 서장금과 많이 닮아있다. 이영애라는 동일 인물이 연기해서가 아니다. 사임당과 서장금은 천재적 재능에 뛰어난 인품까지 갖추었지만, 그녀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물들의 방해공작으로 끊임없는 시련과 고초를 당한다. 물론 매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끝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서장금처럼 사임당 또한 그녀를 시기하는 인물들의 시기를 이겨내고 당대 최고의 여류 예술인, 율곡 이이의 엄마로 우뚝 설 것이다.

착하기만 한 사임당

 지난 9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 6회 한 장면. 현시대와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지난 9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 6회 한 장면. 현시대와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 SBS


여기에 <사임당>은 주인공 신사임당이 온갖 고초를 딛고 당대 최고 예술가와 훌륭한 엄마로 성장해가는 스토리만으로는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사임당의 평생 조력자이자 그녀를 일편단심 사랑한 이겸(송승헌 분)의 애틋한 로맨스를 살포시 얹는다.

지난 8일 방영한 5회에서 20년 만에 이겸과 재회한 사임당은 이미 네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사임당을 못 잊어 화려한 싱글로 남은 이겸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혼례식 날, 금강산도를 돌려준 사임당에게 폭발해 혼례식도 취소하고 그녀를 찾아 떠난다. 사임당이 한양으로 이사를 한 이후에도 사임당과 이겸은 또다시 마주친다. 앞으로도 사임당과 이겸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안함, 고마움을 반복하며 예술적 동반자 이상의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현모양처 이미지로만 굳힌 사임당에게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해,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좋다. 하지만 네 명의 자녀를 둔 첫사랑을 잊지 못해, 계속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의 이야기는 순애보로 느껴지기보다, 불륜의 향기로 느껴진다. 지난 9일 방영한 6회에서는 사임당과 이겸의 관계가 불륜으로 비치지 않게 하려는 듯, 이겸을 엄히 꾸짖는 사임당의 정숙함이 강조되기도 했다. 사임당을 잊지 못한 이겸은 1회 오프닝에서 잠깐 보여 줬던 것처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한을 담아 사임당의 초상화를 완성할 것이다.

사임당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는 철저히 <사임당> 제작진의 마음이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만든 드라마라면 최소한 현시대를 사는 시대 정서와 발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사임당>을 둘러싼 혹평을 두고, 결국 재편집에 돌입했다는 <사임당> 제작진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원래 <사임당>은 지난해 10월 초에 주말 드라마로 방영하려고 했지만, 사드 여파 때문에 중국과 동시 방영이 무산되며 편성이 미뤄지다가 지난 1월 26일 첫 방을 내보냈다. <사임당>이 예정대로 2016년 10월에 방영했다고 한들, 시청자들이 느끼는 반응은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온갖 혹평이 난무했지만, 눈에 띄는 경쟁작이 없었던 덕분에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선전한 SBS <푸른 바다의 전설>처럼 대진운이 좋았다면 시청률은 높았을 수 있겠다.

시대정서와 어긋난 고루함

 지난 9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 6회 한 장면. 그저 착하기만한 캐릭터로는 무리가 있다.

지난 9일 방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 6회 한 장면. 그저 착하기만한 캐릭터로는 무리가 있다. ⓒ SBS


그러나 요즘의 시청자들은 착하고 올바르기만 한 주인공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임당>을 제치고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KBS <김과장>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는 것은 주인공 김성룡(남궁민 분)이 가진 양면성에 있다. 살기 위해 악당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의도치 않게 정의의 편에 서게 된 김성룡은 이 시대 수많은 '을'들을 대신해 갑의 횡포에 반격을 날리는 시대의 영웅이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적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아래 <역적>) 또한 갑의 횡포에 참다못해 일어난 을들의 반란을 통쾌하게 다룬다. 이 시대 '을'들을 상징하고 있는 <김과장>, <역적>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저항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방해하는 반동 인물들에게 마냥 당하지 않는다. '착함'을 버린 대신 이 시대가 원하는 정의로운 상식을 갖춘 인물들의 활약은 상식적인 나라를 꿈꾸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면, <사임당>의 사임당은 어질고 인자한 아내와 어머니, 즉 오랫동안 신사임당을 표상해왔던 '훌륭한 아내, 현명한 아내' 이미지 외에 아직 이렇다 할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추후 전개될 내용에서는 예술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신사임당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고 하나, '예술가 사임당'은 이미 수많은 학술 연구를 통해 조명되어 왔다.

2017년을 사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주인공은 도덕적 올바름에 치중한 선한 캐릭터가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에 할 말 다하는 속 시원한 인물들이다. 30부작으로 이미 제작까지 완료된 드라마에서 6부작만 보고 쉽게 판단할 수 없겠지만, 지금 시점으로 봤을 때는 고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임당>의 현 전개가 두고두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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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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