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열리는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할 야구대표팀을 둘러싼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김인식 야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4일 오전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코칭스태프 미팅을 갖고 엔트리 일부 개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축 선수들의 합류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최종 엔트리 확정을 둔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팀은 최근 김광현(SK)과 이용찬(두산), 강정호(피츠버그), 강민호(롯데) 등이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팔꿈치 수술을 받는 김광현과 음주사고를 일으킨 강정호의 탈락은 이미 예고된 결정이었다. 다만 포수 강민호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대표팀은 김하성(넥센)과 김태군(NC)을 대체 멤버로 발탁했다.

전력누수는 최종엔트리에서 그치지 앟는다. 김주찬(KIA)과 이재원(SK)도 부상 소식이 알려지며 박건우(두산)와 이지영(삼성)이 추가로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설상가상 무릎수술을 받은 내야수 정근우(한화)와 어깨 상태가 미지수인 좌완 양현종(기아), 김광현의 대체자로 거론되던 류제국(LG) 등도 최종 합류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다시 유보된 오승환의 발탁 여부 결정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스(WBC) 기술위원회를 마친 김인식 WBC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스(WBC) 기술위원회를 마친 김인식 WBC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발탁은 다시 유보됐다. 지난해 해외 원정 도박 파문에 휩싸인 오승환은 아직 여론의 반응이 곱지않다. 더구나 김현수(볼티모어)-추신수(텍사스) 등과 마찬가지로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소속이라 소속팀의 동의 없이는 차출이 쉽지않다.

국제대회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김인식 감독이지만 이번 대표팀 구성에서는 유독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해외파 한 명도 없이 WBC를 치를 수도 있다",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구성이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와 같은 김 감독의 발언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실제로 과거 대표팀에서도 선수구성의 어려움은 항상 있었지만 이 정도로 주축 선수의 줄부상과 사건사고, 해외파 차출 난항 등 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 기회에 대표팀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김 감독은 그동안 "대표팀에서 세대교체나 리빌딩은 함부로 시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중론을 고수해 왔다. 국제대회 성적이 KBO의 흥행에 미치는 파장이나 국민적인 기대감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젊은 선수들을 성급히 기용한다고 그들이 수년뒤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 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국제대회 때마다 선수선발에서는 경험 있는 베테랑 위주로 보수적인 선택을 고수해 왔다. 아직 전임 감독제가 정착되지 못한 한국야구에서 세대 교체는 눈앞의 국제대회에 올인해야 하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김 감독이 당초 목표로 했던 "최상의 전력으로 WBC에 승부한다"는 구상은 사실상 불가능해 졌다. 이미 너무 많은 선수들이 이탈했고 앞으로도 추가로 얼마나 전력누수가 발생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논란의 중심에 선 오승환이나 선수 한두 명 정도가 가세한다고 금새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마지막까지 계속 해야겠지만, 결과에만 지나치게 연연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 어려울 때일수록 순리대로 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차피 상대팀들보다 월등한 전력을 구성하기 어렵다면 이번 대회를 통하여 무엇을 얻을 것인지 목표라도 분명해야 한다. 이번 WBC 1라운드 통과에 올인할 것인지, 아니면 2~3년 뒤를 대비한 장기적인 초석을 가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대 대표팀 중 말그대로 최상의 전력을 갖춰서 성적을 낸 경우는 거의 없다. 2009년 2회 WBC 당시 김인식 감독이 간절하게 합류를 원했던 이승엽과 박찬호는 고심 끝에 대표팀을 고사했고, 마운드의 주축이던 김광현-류현진 등도 모두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은 국내파들의 활약을 앞세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일궜다. 지난해 프리미어 12에서는 심지어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일본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초대 우승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성공이 가져다준 부담감은 오히려 김 감독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김 감독은 국제대회 때마다 항상 주어진 전력 이상 성과를 일궈내며 국민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김 감독은 결코 마법사가 아니다. 전력구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결과만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성적에 집착하여 무리수를 두다가 명분도 싫고 실리도 잃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야구대표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이번 대표팀이 비판받은 부분은 처음부터 선수 선발을 둘러싼 성급함이었다. 애당초 국제대회를 3개월 가까이 남겨놓은 상황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성급히 최종엔트리를 확정한 것부터가 예고된 패착이었다.

되도록 대표팀에 검증된 선수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김 감독의 원칙은 공감하지만 리그에서 실력을 보여줬음에도 뽑히지 못한 선수들도 많았다. 구자욱(삼성)이나 유희관(두산), 김세현(넥센) 같은 선수들이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않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들은 활용하지 못하면서 '없는 선수들'만 계속 찾으며 전력구성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다. WBC 규정에는 자신의 국적과 무관하더라도 조부모나 부모 국적만으로도 해당 국가 대표팀 합류가 가능하다.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대표팀은 이 제도를 활용, 유명 메이저리거들을 대거 발탁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계인 최현(미국명 행크 콩거. 템파베이)이나 타이슨 로스(샌디에이고) 등은 대표팀 승선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들이다. 국내 무대에서 최정상급 활약을 펼친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 메이저리그 경력이 이들보다 못한 선수도 상당수다. 하지만 야구계와 대표팀 코칭스태프에서 이들의 대표팀 기용 가능성을 검토라도 해 봤는지 의문이다.

또한 최근 김인식 감독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은 오승환을 둘러싼 불필요한 시간끌기다. 김 감독은 오승환의 거취에 대하여 애매한 태도만 취하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는 것을 또 회피했다. 계속해서 오승환이 필요하다고 여론몰이만 하면서 정작 발탁은 주저하고 있다. 최종엔트리 확정은 2월 6일까지니 시간적 여유는 남아있지만 이대로라면 오승환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만 장기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오승환을 뽑을 거면서 여론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종엔트리 마감 직전까지 시간을 끄는 게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다. 이는 강정호 같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제외된 선수들과의 형평성이나 기존 대표팀 불펜투수들의 사기 차원에서도 결코 좋지 않은 태도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야구팬이라면 누구든 당연히 야구대표팀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WBC가 한국야구의 존망을 가늠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대회도 아니고, 팬들은 이름값이 아닌 태극마크에 걸맞는 자격과 열정을 더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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