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야구대표팀 발탁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WBC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팀은 올해 3월 서울 고척돔에서 네덜란드, 이스라엘, 대만과 1라운드를 치른다. 대표팀이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사건사고로 최상의 전력구축에 애를 먹는 가운데 야구계 일각에서 마운드 보강을 위하여 오승환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논란이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오승환은 일단 제외됐다. 실력으로는 당연히 뽑혀야하는 선수지만 2015년 불법 해외 도박에 따른 징계와 비난 여론이 문제였다. 김인식 감독은 일단 여론을 받아들여 오승환을 제외했지만 '꼭 뽑고 싶었다'는 속내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최근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공개적으로 오승환의 발탁을 지지하며 상황이 미묘하게 흐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야구계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발언권을 지닌 원로들이다.

이들은 오승환이 대표팀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며 그의 발탁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며 소신을 드러냈다. 사적으로도 친분이 깊은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전력구상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대대적 엔트리 개편을 앞두고 있는 야구 대표팀

기술위 회의 결과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술위원회를 마친 김인식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이끌 게 된 김인식 감독. ⓒ 연합뉴스


어차피 대표팀은 1월 초 엔트리 개편을 예고했다. 이미 김광현(SK), 이용찬(두산)이 수술로 이탈했고, 정근우(한화)도 무릎 수술로 대회 참가가 불투명하다. 메이저리거 추신수(텍사스), 김현수(볼티모어)가 소속팀의 출전 반대로, 강정호(피츠버그)는 음주 운전 뺑소니 사건으로 대표팀 제외가 유력한 상황이라 큰 폭의 교체가 불가피하다. 자연히 여기서 오승환의 대표팀 복귀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야구계와 팬들의 여론도 두 갈래로 엇갈리고 있다. 오승환 발탁을 지지하는 가장 큰 명분은 역시 그를 대체할 만한 마무리 투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상대를 압도할 강력한 선발투수가 없는 한국은 이번에도 불펜진을 총동원한 벌떼 마운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불펜에 경험과 구위를 고루 갖춘 투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로서 마무리는 불혹을 넘긴 노장 임창용(기아) 정도가 대안이다.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정상급의 기량을 인정받은 오승환이 가세한다면 불펜의 안정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또한 국가대항전은 자국리그 흥행에도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은 벌써부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최상의 전력구성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지난 2013년 3회 대회의 1라운드 탈락을 만회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는 데다 올해 WBC 1라운드는 사상 최초로 국내(고척돔)에서 열린다. 홈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승환 같은 국내 최고의 선수를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오승환의 대표팀 복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팬들의 여론이다. 많은 팬들은 도박 혐의로 KBO 징계조차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오승환이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도덕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KBO 징계와 대표팀 출전은 별개로 볼 수도 있다. 이미 징계를 모두 마치고 대표팀에 합류한 임창용과 마찬가지로, 오승환도 사법적인 징벌은 모두 이수했다. 다만 차이는 KBO의 징계다. 해외파인 오승환이 당분간 국내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 감안할 때 오승환이 KBO 징계를 모두 이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표팀에서도 언제까지 뛸 수 없는가하는 애매한 문제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오승환의 대표팀 출전은 결코 그의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냉정히 말해 축구의 A매치나 월드컵 출전과 달리, 야구의 국가대항전은 선수 입장에서는 크게 이득이 되는(병역혜택이 걸린 대회를 제외하면) 이벤트는 아니다. 개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승환은 이번 대표팀에 뽑히지 않고 비시즌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오승환은 자청해서 대표팀 발탁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오승환의 발탁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표팀에 대한 기여를 일종의 '사회봉사'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원칙의 훼손'이다. 오승환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아무리 야구를 잘하는 선수도 그에 걸맞는 인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지니지 못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 시대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오승환 발탁, 원칙도 실리도 모두 잃을 수 있다

 탈삼진 4개를 기록하며 시즌 11세이브째를 기록한 오승환 (출처: 세인트루이스 구단 SNS)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출처: 세인트루이스 구단 SNS)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에 대한 KBO 징계와 지난 대표팀 제외도 법적 처벌과 별개로, 야구계가 유명 선수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충분히 감안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고 결론을 뒤집는다면 원칙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야구만 좀 잘하면 이전의 잘못이야 어찌됐든 예외를 두자는 것부터 지극히 기회주의적인 발상이다.

오승환의 대표팀 출전을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로 해석한다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최근 음주운전으로 도마에 오른 강정호다. 실력으로 따지면 강정호 역시 대표팀에 반드시 뽑힐 만한 선수고, 실제로 대표팀 발탁에 법적인 제약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표팀의 명예와 권위는 사실상 땅에 떨어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음주운전에 비하여 불법도박은 상대적으로 죄질이 경미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똑같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를 여론의 눈치를 보며 누구는 뽑고 누구는 제외하는 '이중잣대'도 말이 안된다. 만일 오승환의 불법도박 파문이 작년이 아니라, 강정호처럼 최근에 터졌다면 과연 지금 같은 기회주의적인 대표팀 복귀 주장이 통했을지도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봐도 오승환의 출전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오승환의 WBC 출전의 주도권은 대표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구단에 있다. 추신수-김현수 등과 마찬가지로 대표팀 명단에 오승환을 억지로 포함시켰다고 해도 소속팀이 끝까지 출전을 불허한다면 강제로 차출할 근거는 없다. 공연히 원칙은 원칙대로 망가뜨리고 실리도 잃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많은 팬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과연 그렇게까지 원칙을 무너뜨려가면서 성적에 집착해야할 만큼 WBC가 가치가 있는 대회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국제대회 성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2013년 WBC에서의 1라운드 탈락으로 KBO의 흥행에 치명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팬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대표팀이 국제대회마다 근시안적인 성적에만 집착하며 세대교체나 투수육성,전임 감독제 등 한국야구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화두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다. 이번 대표팀의 주력은 30대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오승환 역시 35세다. 다가오는 2018년 아시안게임, 2020년 올림픽에도 꾸준히 활약한다는 보장이 없는 선수들이다.

한국야구계 원로라는 인물들이 고작 눈앞의 대회에서 베테랑 투수 1명의 발탁에만 집착하여 고민하는 사이, 이웃나라인 일본은 올림픽을 대비한 세대교체와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야구계 차원의 장기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 없이 눈앞의 현재에 집착하여 작은 이익에만 연연하는 것이 과연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한 길인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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