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영화 <라라랜드>. 뮤지컬 영화의 문법에 거부감이 없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영화<라라랜드>는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를 향한 열정이 있는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꿈과 사랑을 담는다. ⓒ 판씨네마(주)


영화 <라라랜드>의 스토리는 두 남녀의 열정적인 꿈과 사랑의 여정을 그리는 단순하고 현실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그리는 기법에는 비현실적인 동시에 감각적 낭만이 있다. 시각과 청각의 맛이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공감각적인 효과를 낸다. 그로 인해 배우의 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미아'와 재즈피아니스트로서의 올곧은 직업적 신념을 지켜내려는 '세바스찬'의 열망은 더 깊숙이 와 닿는다.

주인공 남녀가 선택한 꿈을 그리는 과정에는 분명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성이 드러나지만, 낭만을 사랑하는 이 영화는 아름다운 감각적 요소들로 불편하고 슬픈 한계를 메우려 한다.

영화가 선택한 시각적 효과 '색'과 귀를 절로 열게 하는 '음악'의 청각적 효과는 서로 겨루는 듯 매번 강렬하게 등장하지만, 절대 상대를 바닥으로 떨어뜨리진 않는다. 아름답게 조화된 '색'과 '음악'은 각기 지닌 일반적인 경계를 넘어서 비현실적인 세계로 관객을 유혹한다. 지금 꿈꾸고 있다면 당장 라라랜드로 오라는 듯 말이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색'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춤을 추며 돋보이는 샛노란 드레스를 입은 미아(엠마 스톤)의 역동적 색채는 까만듯 파란 현실의 밤과 대비된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춤을 추며 돋보이는 샛노란 드레스를 입은 미아(엠마 스톤)의 역동적 색채는 까만듯 파란 현실의 밤과 대비된다. ⓒ 판씨네마㈜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도 배우의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미아'의 삶엔 현실과 꿈이 공존한다. 그녀가 사는 일상은 카페에서 입는 하얀 셔츠같이 단조롭다가도 배우를 향한 열망이 솟구쳐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파격적인 색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떠한 변화 없이 지켜내야 할 현실을 표현하는 '하얀' 유니폼을 벗고, 파랗게 때론 노랗게 차려 입은 그녀의 특별한 의상은 삶의 어떤 간극을 불러 일으킨다.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과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

현실과 이상을 쉴 틈 없이 오가는 미아의 일상은, 무색과 유색의 옷을 번갈아 입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된다. 별이 되고 싶은 그녀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빛깔의 드레스에도, 어두운 밤 크고 작은 빛 속에서 나부끼는 꽃잎처럼 춤출 수 있는 기회가 올까. 하얀 셔츠에 쏟아진 커피얼룩 때문에 좌절하고, 배우 오디션에 수없이 낙방하는 등 자신의 삶이 점점 망가져가는 것처럼 느끼던 그녀. 끊임없이 방황하듯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색' 안에 들어온 고집스럽고 한결같은 세바스찬의 '음악'은 그녀에겐 구원과도 같았다.

'음악'은 흔들림 없는 확신이 되어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열정적인 재즈 연주.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열정적인 재즈 연주. ⓒ 판씨네마㈜


재즈만이 자신의 음악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지망생 '미아'는 우연한 기회에 각자가 가진 꿈을 향한 열정을 서로에게 보이고 만다. 그 동질적인 계기로 둘은 운명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서로를 향한 애정의 힘으로 낭만을 꿈꾸는 현실을 이어간다.

영화는 미아를 통해 '색'이 보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했다면, 고전적인 재즈음악을 지키고픈 한 남자 세바스찬에게서는 절대 변화에 타협할 수 없음을 드러내듯 미칠 듯이 요동치는 심장의 선율을 가져왔다. 어딘가 미쳐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세바스찬의 음악적 고집은 그의 아름답고 완벽한 피아노연주 만큼이나 꽉 차 보인다.

그의 음악은 되는 일 없이 짜증스러운 날들의 구원이 되어 미아에게 다가온다. 배우가 되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 희망과 확신 없는 길 위에서 혼란스럽고 힘겨워 하던 미아. 그녀의 낭만여정에 손을 잡아준, 재즈음악을 향한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걷고 있던 세바스찬. 두 사람의 로맨틱한 사랑의 시작과 끝이 뻔해 보이지 않도록 애쓴 영화의 감각적 기법은, 알 것도 같은 식상한 스토리를 비현실적 상상으로 이끄는 색과 음악이었다.

알 수 없는 재즈의 선율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미아(엠마 스톤)에게 열정적으로 재즈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미아(엠마 스톤)에게 열정적으로 재즈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 판씨네마㈜


재즈 한 곡이 연주되는 과정은 짧고도 긴 인생 여정과도 같다. 극 중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사랑하는 연인 미아에게 고전적인 재즈 음악의 매력에 대해 진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각각의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듯 질세라 질주하며 연주하는 재즈의 선율은, 청중에게 바치는 인생 고해성사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짐작할 수 없는 형태의 음악으로 미친 듯이 이야기하는 재즈연주자들.

단 1초 뒤에 벌어질 일도 전혀 알 수 없이 흐르는 대로 인생을 살지만,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꿈을 채색하며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재즈가 대변한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구원과도 같이 나타난 그와 그녀의 사랑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채로 흘러가 버렸다. 마치 둘 사이의 이어진 끈과도 같았던 재즈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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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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