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이던 2001년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발생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당시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그 전쟁을 지지했다. 중동은 비행기로 빌딩을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고, 그리고 미국은 한국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평화를 지켜온 나라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배워왔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전쟁으로 인해 초래되는 희생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내 주변의 머리가 좀 컸다는 남자아이들은 그저 미군의 전투기들과 미사일에 열광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미국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펼쳐졌다. 전쟁에 반대하는 한 가수가 찍은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라크전을 패션쇼에 비유하며,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그 쇼를 구경하고 즐기는 냉혈한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 위로 전쟁의 참상들을 오버랩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쇼에 난입해 수류탄을 던지고 유유히 사라지는데, 문제는 그것을 받은 사람이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였다. 그 가수는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고, 결국 뮤직비디오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이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 영상을 보고 완전히 반전의 입장으로 돌아선 나 같은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내가 마돈나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 시절, 마돈나를 찾은 이유

 마돈나 Rebel Heart Tour 2016 - Sydney

호주 시드니에서 'Rebel Heart Tour 2016'에 나선 마돈나의 모습. 지난 3월 19일 촬영됐다. ⓒ chrisweger(위키커먼스)


사실 그 전까지 마돈나는 내게 그렇게 친숙한 가수는 아니었다. 나는 종종 마릴린 먼로와 마돈나를 헷갈리곤 했으며, 그만큼이나 그녀는 내게 옛날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영어라고는 한 자도 할 줄 몰랐으며, 뭐라고 떠드는지 모를 팝 음악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거기에 나는 진정한 음악이란 로큰롤 뿐이라는, 그 나이면 있을법한 허영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노래라고는 긴 머리를 휘두르며 고음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것만 듣던 나와, 이미 때 지난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 미국 가수와의 접점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돈나의 그 음반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다. 전해져 오는 것은 느낌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 슬픔에 잠기거나 회한에 찼고, 때로는 분노로 가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강직해지길 반복했다. 그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외롭고 불안했다. 내게 학교는 틀에 짜인 채 왜 배워야 할지도 모를 공부만 시키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나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어 있었고, 종종 따돌림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움츠려 들었고,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내가 마돈나를 찾은 건, 수세에 몰린 그녀의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하루하루 살을 에는 파도를 헤치는 것과 같은 시간을 그녀도 살고 있었기에.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길들인 사람

하지만 내가 마돈나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앞서 말했듯 그녀의 노래처럼, 마돈나는 강인함을 잃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뚫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비난과 라디오의 보이콧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로모션을 이어 나갔다. 그해의 VMA(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선 브리티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고 공연 도중 두 스타와 진한 키스를 나누어 화제를 불렀다. 연예지 1면은 온통 마돈나의 사진으로 도배되었고, 마돈나의 연예 커리어에 사형 선고를 내렸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앨범에서 마돈나는 또다시 정점에 오르며 화려한 복귀에 성공한다.

어찌 보면 마돈나의 음악 인생에 새겨진 굴곡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만 섹시해지고 성적 욕망을 대담하게 드러내지 않았다면, 온건하게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고 '눈치'를 보며 말했다면 마돈나에게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모든 것들을, 그녀 자신을 세상에 펼쳐 보였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이제 사람들은 마돈나가 무슨 일을 하면 '그래, 마돈나니까'라고 말하곤 한다. 그녀는 세상에 굴복하는 대신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마돈나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

언젠가 어린 나에게 한 친구는 '네가 조금만 남자 같았더라도 따돌림을 겪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왜 나를 미워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몸이 떨릴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마돈나는 그런 나에게 내가 느끼는 것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갖은 금기를 넘어서고 세상과 싸우며, 그녀는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년배의 한 성 소수자 친구는 마돈나의 콘서트에 등장한 게이 백댄서들을 본 후, 자신도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고 아름다움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여성들이 있다. 마돈나가 마주한 반발과 금기들은 대부분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빌보드가 수여한 '2016 올해의 여성 음악인상(Women in Music)' 수상 소감 연설에서, 여성 연예인으로서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차별과 혐오를 언급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여성은 남성들이 그들에게 해야만 했던 말들 때문에 너무나 억압받아 왔습니다. 여성은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선 그들이 남성을 보조해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와줘야 할 가치 있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남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와 다른 여성들의 가치를 감사해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강인한 여성을 찾아 친구가 되세요, 연대하기 위해, 배우기 위해, 협동하기 위해, 영감을 얻기 위해, 깨우치기 위해."

그리고 마돈나는 긴 시간 거칠게 움직이고, 크게 말하고, 치열하게 생각하며 그것이 가능함을 입증해왔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마돈나의 수상 소식을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수상은 너무 늦었거나 빠른 것이 아니었을까. 팬들도 인정하듯 지금의 그녀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난 이 야심만만한 예술가가 언제고 다시 음악계를 휩쓸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지금의 그녀가 이 상을 받을 필요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던 이가 대통령이 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인을 당하고, '소녀는 왕자가 필요없다'는 셔츠를 입은 이유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삭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성 소수자의 인권 보호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조례가 부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일들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혐오와 폭력의 광풍이 부는 시기, 그것들과 마주해 더 센 반격을 날리고 승리한 사람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돈나는 지금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 이야기되고 기억돼야 할 사람이다.

지난 시간 마돈나의 노래와 함께,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고 맞서 싸울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춤을 출수 있었고,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방영된 'Rebel Heart Tour'에서, 콘서트에 참여한 스태프들에게 마돈나는 이렇게 말한다. '무대에 올라가, 네가 믿는 것을 위해 싸워'.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수상을 축하하며, 마지막으로 마돈나의 노래 'veni vidi vici'의 한 구절을 공유하고싶다.

"나는 북극성처럼 변함이 없었어/ 나는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을 품고 있었어/ 나는 절대 어둠 속에서 싸우길 포기 하지 않았어/나는 왔고, 보았고, 정복했어."

마돈나 빌보드 올해의 여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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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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