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1월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주최 '프리미어12'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야구의 명예를 드높였다. 특히 일본전에서 4-3의 짜릿한 역전승은 많은 국민들에게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안겨줬다. 2009년 한화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난 야구 원로로 남았던 김인식 감독은 일약 '국민 감독'으로 재조명받았다.

하지만 당시의 열기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차분히 돌아보면 프리미어12 우승은 한국야구에는 예상치 못한 선물에 가까웠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우리가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해외파와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빠진 대표팀 전력을 놓고 일부 전문가들은 역대 최약체 전력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일전 역전승도 정상적인 야구같았으면 그야말로 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기적의 승부였다. 이겼으니 망정이지, 만일 일본전에 또다시 패하고 프리미어12 우승에 실패했다면 김인식 감독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아야했을 것이다.

프리미어12 우승 후 김인식 감독이 신중했던 이유

기술위 회의 결과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술위원회를 마친 김인식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할 야구대표팀을 이끌 김인식 감독. ⓒ 연합뉴스


실제로 김 감독은 우승 직후에도 국내의 들뜬 여론과 찬사 일색의 분위기와는 달리, 대표팀에 대한 신중론을 강조했다. 프리미어12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일본의 전력이 여전히 더 우위에 있으며, 대표팀 운영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기획과 시스템으로 앞서나가는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는 단기전의 짧은 성과로 한국야구와 대표팀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묻혀져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였다.

프리미어12 우승의 후광을 등에 업고 김인식 감독은 내년 2017 WBC에서도 다시 한 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김 감독의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과 지도자로서의 경륜은 물론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뇌경색 투병 경력까지있는 노장이 '잘해야 본전'인 대표팀 사령탑을 또 맡게 된 것은 개인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프리미어12 우승이 가져온 부작용은 역시 그만큼 대표팀의 현실과는 별개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만 높아졌다는 점이다. 불과 1년여 전 국제대회에서 정상까지 오른 만큼 팬들은 당연히 이번에도 그에 근접하는 정도의 성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내년 WBC는 프리미어12보다도 더욱 어려운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대표팀 전력이 프리미어12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다. 당시는 확실한 선발 에이스의 부재를 철저한 불펜야구를 통한 벌떼마운드로 극복했고, 이대호-정근우 같은 베테랑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며 찬스에서 강한 응집력을 보였다. 국내 선수들이 장기레이스를 마친 시점이라 경기감각이 아직 살아있었고 특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두산 멤버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WBC는 내년 3월에 열린다. 프로구단들의 스프링캠프 기간이라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선수들이 많다. 프리미어12 당시에도 베테랑 의존도가 높았던 대표팀은 주축 선수들이 그때보다도 두 살 더 나이를 먹게 된다. 우완 선발 투수 부재는 여전하고 최대 강점이던 불펜진도 변동이 많았다. 벌써부터 부상자가 속출하며 엔트리 구성에 차질이 우려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최상의 선수 구성이 어려운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대표팀이 세대교체에 의지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대표팀 구성을 살펴보면 여전히 80년대생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지난 WBC 최종엔트리에 1990년대생 선수가 허경민(두산), 임정우(LG) 등 2명에 불과했다. 이미 프리미어12부터 오타니 쇼헤이(니혼햄) 등 90년대생 선수들로 확실하게 세대교체가 진행된 일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를 두고 사령탑인 김인식 감독이 노장이고 현장을 떠난지 오래되어 요즘 젊은 선수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익숙한 베테랑에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대표팀 운영 시스템

하지만 세대교체는 단지 감독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단 야구는 축구와는 달라서 국제대회가 매년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선수들을 소집하여 훈련과 A매치를 치르는 구조도 아니다. 국제대회마다 한정된 선수층 안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표팀으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을 기용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임감독제다. 일본은 2013년부터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 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다. 자국에서 열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감안한 장기적인 포석이다. 지난 프리미어12에서 한국에 패배한 이후 경험 부족이 도마에 오르며 경질설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일본야구는 일단 유임을 선택했다. 김인식 감독도 일본야구의 이러한 연속성과 추진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전임감독이 아니다. 나이도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이다. 감독 개인의 의지만으로 대표팀에 대한 장기적인 구상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감독이 성적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대표팀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그저 지금의 눈앞의 대회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1년에 정규리그만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는 감독이 당장 기량이 떨어져도 재능있는 유망주를 밀어주며 꾸준히 경험을 쌓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속성이 떨어지는 국제대회에서는 구조적으로 대표팀 위주의 인위적인 세대교체는 불가능하다.오히려 당장의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지못한다면 국내야구의 흥행이나 여론에 미칠 후폭풍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해도 막상 눈앞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여론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본의 세대교체가 가능한 것은 이미 자국 NPB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들의 선수층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이는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의 한국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김인식 감독이 "세대교체는 어디까지나 프로 구단들의 몫"이라고 선을 그은 이유다.

물론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필요하다. 팬들과 여론은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김 감독은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리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야구대표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당장 다음 WBC에서 선수 몇 명 바꾸는 수준의 세대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표팀 운영의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변화가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독 개인의 몫이 아니라 한국야구계의 구조적인 비전과 의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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