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사진기를 꺼내든다. 그 순간을 박제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라지만 소유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 시간을 붙들어놓고 싶다.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이 듀오 음반을 발매한다고 했을 때도 그런 충동이 일었다. 각기 역량이 뛰어난 음악가이며, 인간적으로 가까운 두 사람이 일으키는 음악적 시너지. 이를 음반이란 형태로 소유할 수 있는 기회라니! 첫 듀오앨범 <슈만·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로망스>(데카)를 발매하고 콘서트 투어를 시작한 두 사람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소울메이트,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손열음. ⓒ 이정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쇼케이스 한 시간 전. 리허설은 짧은 담소와 웃음으로 시작됐다. 풍월당에 도착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9)과 피아니스트 손열음(30)은 어질러진 악보에 웃음을 터뜨리곤 주섬주섬 정돈부터 했다. "1번 말고 3번 할래?" 주미 강의 제안에 손열음은 "3번은 누가 (악보를) 넘겨줘야 해"라고 답했다. "1번 하자." 주미 강의 말로 리허설은 시작됐다. 만연했던 웃음기가 사라졌고, 곧장 몰입했다.

"이 음을 너처럼 내고 싶은데 나는 안 돼. 네가 하는 것처럼 그 뉘앙스가 안 나와." 악보를 짚으며 손열음이 말하자 "나는 이런 걸 언니처럼 하고 싶은데... 여기 한 번만 해볼 수 있어?" 주미 강이 부탁했다. "응. 나 여기 엄청 기다려도 상관없으니까 천천히 해." 그녀는 동생이 원하는 부분을 최대한 넉넉하게 받쳐줬다.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 쇼케이스가 1시간인가? 그럼 클라라 슈만으로 오픈을 할까봐." 이 말에 손열음이 "그러자" 답하는 것으로 또 두 사람의 말 없는 연주가 이어졌다. 금세 리허설이 끝났다. 두 사람은 일상의 언어보다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라는 음악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리허설을 진행 중인 두 사람. ⓒ 이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시절 만난 이들은 12년 지기 '절친'이다. 인간적·음악적으로 워낙 잘 통하는 사이라 듀오 음반이 지난 8일 처음 나온 것에 늦은 감마저 든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미 강과 현재 독일 하노버국립음악대학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를 사사 중인 손열음은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자주 만난다. "두 세 달에 한 번씩 보고, 연락은 일주일 안 하면 불안하고요."(손열음) 이번 앨범은 지난 3월 독일 하노버에서 녹음했는데 한 마디로 "되게 편하고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삶과 음악이 별개가 아닌 두 사람이기에, 친밀한 인간적 관계가 음악적으로도 최상의 컨디션에 연결되는 건 당연했다.

레코딩을 부담스러워했던 손열음은 "주미와 함께 이번 녹음을 하면서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이었나?" 싶을 정도로 레코딩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였다고. 작곡가의 마음에 이입해 한 음 한 음 '표현'에 집중할 수 있는 매력을 맛보기도 했다. "녹음하기 전에 며칠 동안 언니 집에 머물면서 티라미스도 만들어 먹고, 자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편하게 준비했어요."(주미 강) 뮌헨에 거주하는 주미 강은 하노버에 있는 언니의 집을 종종 찾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해온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라는 다른 언어(악기)를 씀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제가 어떤 음악적인 말을 던졌을 때 언니가 그것에 대해 비슷한 음악적 언어로 답을 건네줘요. 이런 작용이 말처럼 흔하게 일어나진 않아요. 말로써 해석하긴 쉬워도 말없이 하긴 힘든데 우리는 그게 가능하니까요, 편해요 정말." (주미 강)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신사동 풍월당, 클라라 주미 강이 리허설 연주에 몰입하고 있다. ⓒ 이정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손열음은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다. ⓒ 이정민


2010년 센다이 콩쿠르-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 주미 강,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준우승 손열음. 두 사람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세계적인 솔로이스트다. 리사이틀을 열 때마다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이들이 처음 듀오 무대를 꾸민 건 지난 2011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5분짜리 곡을 함께 했고, 무대서 내려와 "우리 더 긴 곡으로 다시 하자" 소망을 키웠다. 이후 2013년 12월 듀오 콘서트 투어 <판타지 포 투(Fantasy For Two)>를 열어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등을 연주하며 듀오의 꿈을 실현했다.

주미 강은 "연주 할 때마다 교감에서 나오는 해석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음반작업에 큰 매력을 못 느꼈다"며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피아니스트와 하지 않는 이상 음반은 안 하겠다고 했는데 언니가 '예스' 해줬다"고 해맑게 웃어보였다. 주미 강이 2011년 1집 <모던 솔로> 발표 이후 5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배경이다. 주미 강의 말처럼 "나랑만 하기엔 너무 귀한 연주자"인 손열음의 '예스'가 큰 힘이 된 것이다.

이번 앨범에는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 그리고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의 곡들을 담았다. 세 작곡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클라라 주미 강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신의 이름이 클라라 슈만에서 따온 거라 밝히며, 그래서 클라라 슈만의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사랑들. 이 세 작곡가 안에 너무 많은 사랑과 그 밖의 감정이 담겨있고, 특히 슈만은 음악에 감정을 다 쏟아 부은 작곡가이기 때문에 청중이 들었을 때 감정이 몰려오기도 해요."(주미 강) 평소 슈만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는 "슈만은 자기 세계의 감정에 집중한 반면, 브람스는 자연이나 신 등 세상의 많은 것을 음악에 넣은 작곡가"라며 그 특징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 클라라가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아픈 남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3개의 로망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어요. 그런데 처한 고통에 비해 곡의 분위기가 너무 밝은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클라라가 그런 식으로 남편에게 힘을 주려 한 것 같아요." (주미 강)

"슈만과 브람스는 서로 친했는데, 또한 두 사람만큼 다른 취향을 지닌 음악가도 없는 것 같아요. 양극단이죠. 연주를 통해 그런 점을 많이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슈만은 마이크로(미시적), 브람스는 매크로(거시적)예요. 슈만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미세하게 움직이고, 반면 브람스는 꾹꾹 누르는 느낌이죠. 이런 상반된 느낌을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손열음)

앙상블, 더 없이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말 없이도 말이 통하는 두 사람. ⓒ 이정민


손열음과 주미 강은 서로의 연주를 단지 소리로만 듣고도 다른 연주자의 것과 구별해 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해보진 않았지만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특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라는 추가 질문엔 서로의 개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손열음은 "주미의 연주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저는 주미의 테크닉이 (다른 연주자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주 선천적인 것 같은 테크닉이 있다. 그걸 들으면 맞출 수 있다"며 청음에 자신감을 비췄다. 앞서 오전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손열음은 다음처럼 말했다. "클라라는 장점이 너무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다. 모든 악기 하는 사람의 꿈이 노래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건데 그것을 잘 구현하는 사람이고, 마이크로와 매크로를 넘나드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이어 클라라는 "언니는 언니만의 컬러가 있다"며 "차지면서도 음악에 맞게 그 무게가 매번 다르다"고 설명했다. "모차르트를 치면 모차르트답다. 묵직하면서도 하나하나 음이 살아있다고 해야 하나. 건반에 붙어 다니는 거 같다"고도 표현했다. 오전 간담회에선 "언니는 걸어 나올 때부터 대단한 연주를 할 것 같은,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며 "연주할 때 '큰 그림'을 놓치지 않는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감사도 표했다.

"슈만은 피아노에 치중이 많이 된 작곡가예요. 그래서 피아노가 보여야 매력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피아노가 좀 (소리를) 죽여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죠. 바이올린이 울림통이 훨씬 작으니까요. 그런데 언니는 피아노 특색을 드러내면서도 피아노 소리를 줄여줘서 참 편해요. 피아노 줄이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주미 강)

사랑의 낭만, 음악의 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 ⓒ 이정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리허설 모습. ⓒ 이정민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 슈만. 앞서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낭만적 사랑에 대해 설명해준 두 사람은 정작 현실에서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그 사람의 음악이 내게 말을 걸게 되면 위험해요. 음악 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음악과 사랑을 떼놓을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이 처음엔 별로였어도 그 사람의 음악이 좋으면 그 사람도 좋아져요. 지금까지 음악과 관계없는 사람과 연애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주미 강)

그건 손열음도 마찬가지였다. "음악 하는 사람을 결국 사랑하게 되더라." 비슷한 고백이었다. 이들에겐 음악이 삶에서, 사랑에서 별개일 수 없는 그런 존재인가보다. '음악인' 주미 강과 '인간' 주미 강의 모습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도 손열음은 "다른 게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무대 안과 밖의 모습이 되게 다른 아티스트들도 있는 반면에 저희는 별 차이가 없어요."(손열음) "한 번도 손열음이란 사람을 음악과 음악 아닌 것으로 분리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주미 강)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 ⓒ 이정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지난 2월 독주 앨범 <모던 타임즈>를 발표했다. ⓒ 이정민


두 사람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음악적 절정기, 전성기에는 어떤 연주를 하고 있을까요." 주미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항상 '스토리텔링'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내가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내'가 있어야 하겠죠.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야 그게 진짜니까요. 그걸 채워야 해서요... 그 전성기가 올 때까지 경험도 많이 하고, 항상 음악적으로 할 말이 많은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주미 강)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진짜로. 왜냐하면 예술이란 게, 특히 음악이란 게 추상적이고 또 그것이 탄생하는 과정이나 배경을 살펴보면 온 우주가 도와야 나오거든요. 내가 계획한 대로 안 되고요. 그래서 확실한 이상향을 정해두는 게 의미가 없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순간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게 제겐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손열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그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 듀오. 이날 간담회와 쇼케이스에서 짧게 들려준 연주에서도 이들의 합은 가히 인상 깊었다. 주미 강의 바이올린 활이 현에 닿고 소리가 나는 미세한 타이밍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맞춰 들어가는 손열음의 연주가 묘기처럼 보일 정도. 소울메이트라 가능한 이런 완벽한 앙상블이 지난 10일 마포아트센터 연주회를 시작으로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 전당까지 이어진다.

연주를 통해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게 단 하나의 소망이라는 주미 강은 "지난 3월 녹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곡에 대한 이해의 강도가 더 진해지는 것 같고, 새로운 걸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주미 강의 말처럼 연주회 현장은 음반에 담기지 않은 또 다른 해석과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슈만과 브람스 곡에 담긴 감동, 두 연주자의 연주에서 전해지는 위로, 여기에 더해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이 만들어 내는 인간미가 이 겨울의 길목을 따뜻한 온기로 감싸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손열음. ⓒ 이정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베토벤과 브람스 나머지 소나타도 음반으로 담고 싶다고 밝혔다. ⓒ 이정민



클라라 주미 강 손열음 클래식 슈만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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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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