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하루에만 두 번의 비보를 들어야 했다. 지난 17일 LG에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날, 사령탑 염경엽 감독은 돌연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4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KBO의 젊은 명장으로 찬사를 받던 염감독은 계약 기간을 아직 1년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별을 통보했다. 넥센의 미래도 다시 한 번 불투명한 격랑 속으로 빠지게 됐다.

이날 전까지만 해도 넥센의 2016년은 사실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박병호, 유한준, 손승락, 밴 헤켄(시즌 중반 복귀) 등 투타의 주역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며 꼴찌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예상을 뒤집고 3위로 당당히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전력보강에 넥센보다 월등히 많은 돈을 쓰고도 5강 진출조차 실패한 한화, 롯데 같은 대기업 구단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선전이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염경엽 감독은 치밀한 전략과 선수관리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다시 한 번 '염갈량'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넥센은 가을야구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미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LG를 상대로 공수 양면에서 철저히 압도당하며 1승 3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노장인 에이스 밴 헤켄을 시리즈 흐름상 중요한 1차전이 아닌 2차전에 배치했다는 점이나, 4차전에서 4-0의 리드를 지키지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는 등 염경엽 감독의 계산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발진이 허약하고 주축 선수들의 포스트시즌 경험이 떨어지는 넥센 전력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더구나 넥센은 올 시즌 외형적인 성공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이미 여러 가지 불안요소로 인하여 곪아가고 있었다. 올해 넥센은 이장석 대표가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구단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모기업과 야구단의 운영이 분리된 다른 대기업 구단들과 달리, 철저한 야구전문 기업인 히어로즈로서는 구단 운영의 전권을 쥐고있는 대표의 거취가 곧 구단의 미래와 존립 기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검찰 수사 받는 구단 대표에 감독 거취 놓고도 구설

 수십억 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피소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대표가 8일 오전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수십억 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피소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대표가 지난 8월 8일 오전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염경엽 감독의 거취에 대해서도 이미 시즌 내내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염 감독은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넥센과 3년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장석 대표와 염 감독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하다는 불화설은 꽤 오랜 시간 야구계에 떠돌던 루머였다. 이장석 대표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실망하여 염 감독의 교체를 심각하게 검토했고 뒤늦게 이를 알게된 염 감독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후에도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팀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이 대표와 염 감독이 여러 차례 견해 차이를 드러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시즌 후반기에는 염 감독의 타 구단 이적설이 터져나왔다. 염 감독이 올 시즌을 마치고 넥센을 떠나 SK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했다. 올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SK는 2년 계약이 만료되는 김용희 감독과 재게약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후임 감독은 아직 선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하여 염 감독이 직접 이적설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며 "자꾸 흔들면 감독직을 떠나겠다"고 강경하게 항변하기도 했다. 구단 입장에서도 사실여부를 떠나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감독이 자꾸 이적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유쾌할 리 없었다.

일각에서는 염 감독의 준PO 패배 직후 자진사임 발표가 일종의 '선수치기'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어차피 구단과 염 감독간의 사이가 벌어질대로 벌어진 상황에서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은 사령탑 교체를 위한 좋은 명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휴대폰에 간직해온 낭독문을 읽으며 감독직 사임을 발표했다. 처음부터 사임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어차피 결별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고 했을 때 염 감독이 경질당하기 전에 먼저 감독직을 내려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넥센은 계약기간이 남은 염 감독의 사임이 구단과 사전 상의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염 감독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SK행에 대하여서는 분명히 선을 그으며 당분간 휴식을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향후에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아마추어 야구나 전력분석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40대에 불과한 데다 넥센을 수년간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염 감독이 재야로 풀린 만큼 다른 구단들이 언제든 눈독을 들일 가능성은 높다.

한편 넥센은 또다시 변화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최근 몇 년간 강정호-박병호 등 주력 선수들의 유출이 가속화되고있는 상황에서 수년간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염경엽 감독마저 팀을 떠나게 됐다. 올 시즌 팀이 이룬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년 이후의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무엇보다 화려한 한 시대를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감독과 구단의 마지막 마무리치고는 너무나도 아쉬운 모양새였다. 올해 넥센의 성공이 과연 구단 자체의 역량이었는지, 아니면 염 감독의 리더십 덕분이었는지도 결국 내년 이후 서로의 행보에 달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